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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한채아/보증인/와이프/미페/등번호/신혜성/더쿠/재혼/프로필 -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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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인.
차미네이터, 미스터 아우토반, 라디오 실사판 강백호, 차이콘 등의 별명을 가졌다.
차범근의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이며, 최고의 축구 집안에서 자라 아버지인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도 진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가 2013년 K리그 클래식 FC 서울로 이적하였고 2015년 10월 31일 FA컵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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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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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표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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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플레이 스타일

 

국제 대회는 물론 유럽과 한국에서 뛰는 동안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경합 상황에서 밀리기는 커녕 오히려 웬만하면 피지컬로 이길 수 있었다.
이 막강한 세계 최고급의 피지컬 덕분에 차이콘, 폭주기관차, 차미네이터,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인간흉기, 인간 수류탄, 차두라리스크, 발업 질럿, 차드로이드 등의 별명이 있다.
현재는 역시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죽하면 2002 월드컵 기간에 상대 선수와의 충돌 대비 훈련 도중 이영표가 차두리에게 부딪혀 부상을 입고 조별예선 2경기에 결장하기까지 했을까.
이 무지막지한 몸은 아버지 차범근이 어릴 적 잘 먹지 못했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자식들만큼은 잘 먹이고 싶어 어릴 때부터 고기를 잔뜩 먹여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급 수준의 피지컬과 무시무시한 스피드, 가공할 순간돌파력을 갖춘 선수였다.
2002 월드컵 히딩크호 선수들 중 30m와 100m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고 한다.
측정된 기록으로는 30m 기록은 3.
8초, 100m 기록은 11.
2초로, 최고속도는 대략 35km/h 안팎으로 추정된다.
비록 은퇴 직전이긴 했지만 독일 최강의 하드웨어로 손꼽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도 리그 경기에서 차두리를 상대하다가 벌렁 나자빠질 정도.
그야말로 신체 능력은 가히 월드 클래스.
하지만 기본기가 떨어져서, 어느 순간 공과 따로 놀거나,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문제가 있다.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나,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윙 포워드로 내려가다 윙어까지 내려가 뛰기도 했다.
개인기와 경기 조율 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 써먹기가 참 애매한 선수였다.
아버지 차범근 감독이 자신이 바빠서 어렸을 때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드웨어가 워낙 좋다보니 감독들이 차두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이 수비 라인에서 치고 올라가는 윙백 전향을 권유하기도 했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었다고 한다.
1.
FSV 마인츠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가르침에 의해 수비수로 전향한 후 그의 진가가 드디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비수 전향한 뒤에는 타고난 철벽같은 몸으로 센터백이 잠깐 비었을 때 빈자리도 훌륭히 메꿀 수 있고 엄청난 순간 가속으로 인해 공격도 가담할 수 있는 라이트백으로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포지션 변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공격수 시절보다 상대편의 견제를 덜 받게 되었고, 수비수로서의 경험이 쌓이자 공격수 시절보다 더 안정적인 크로스와 드리블을 더욱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짐으로써 오히려 수비수가 되면서 공격력이 상승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인 무대에 데뷔하고 몇년이 지난 이후에야 포지션을 변경한 탓에 수비력은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본인의 부족한 수비력을 속도와 피지컬로 커버했다.
만약 이러한 포지션 변경을 선수 커리어 초기에 했다면 안정적인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가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 수준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역시 너무 늦은 나이가 문제.
하지만 분데스리가를 그만두고 FC 서울로 이적해 K리그 무대를 밟으며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등 입지를 다지다가 은퇴 직전 올라탄 슈틸리케호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게 되어 측면파괴자로서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말을 제대로 증명하고 떠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수비수로 뛰었다면 대표 팀의 고질병이었던 라이트백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차두리 선수한테 포지션 전환을 권유한 위르겐 클롭 감독은 어쩌면 1.
FSV 마인츠05 시절부터 명장으로서 기질을 드러낸 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건 클롭만이 아니라 차두리를 지도했던 많은 감독들이 시도했던 것이며, 히딩크 시절에도 포지션 변경을 권유 받았지만 거절했던 것으로 보아 공격수로서 잇따른 실패로 인한 본인의 심경 변화가 포지션 전환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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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전력분석관

 

2016년 10월 27일 국가대표 전력분석관으로 선임되었다.
원래 슈틸리케 감독도 차두리를 코치로 쓰고 싶어했고, 여론도 상당히 우호적이나 차두리가 아직 대표팀 코치에 필요한 A급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고 한다.
계약기간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까지이며, 재계약은 추후에 논의한다고 한다.
독일어에 능통하고 불과 1년 전까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차두리의 선임으로 이란 전 이후 침체에 빠진 국가대표팀에 활력을 넣을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듯 하였으나.
돌연 2017년 4월에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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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신태용호 코치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의 경질 이후 새롭게 부임한 신태용 감독의 강력한 추천과 설득으로, 2017년 7월 12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경기 분석관을 맡아 기자석에서 헤드셋 무선 교신 장비를 이용해 1차전과 3차전에서 실시간으로 신태용 감독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과 함께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차두리도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대표팀 코치에서 물러난 후,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로 단기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오노 신지 선수와 만나기도 했고, 구성윤 선수에게 멘토를 해주기도 했다.

 

2.1. FC 서울 U-18 오산고 감독

 

2019년 11월, FC서울 사정에 밝은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차두리는 서울 산하 18세 이하(U-18) 유스팀인 오산고 감독에 내정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평소 축구 유스 육성 시스템에 관심이 컸었던 만큼 상당히 이상적인 선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2019년 12월 5일, 오산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오피셜이 떴다.
부임한 첫 해, 오산고를 이끌고 K리그 주니어 A조에서 8승 2무, 최다 득점 및 최소 실점으로 무패 우승을 이끌었다.
팀 성적보다는 선수들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두며 팀을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평가가 좋다고 한다.
차두리가 감독을 맡은 이후 졸업한, 혹은 재학 중이나 준프로계약로 콜업된 강성진이나 이태석, 백상훈 등 오산고 출신 선수들이 2021시즌 들어 FC 서울에서 프로로 데뷔하면서 거의 매 경기마다 선수들을 보러와서 K리그 중계카메라에 잡힌다.
그리고, 2021년 10월 14일 경북 구미 낙동강 체육 공원에서 열린 제102회 전국 체육 대회 결승전에서 전북 현대 U-18 팀인 전주 영생고를 2-1로 꺾고 우승했다, 지도자로서의 안정적인 커리어도 기대해볼만 한 상황.
그러나 11월 27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각종 언론은 차두리가 P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 서울을 잠시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2.2. FC서울 유스 강화 실장

 

그러나 2021년이 지나기도 전인 12월 27일, FC 서울의 유스 디렉터로 부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오산고·오산중 등 유스팀을 총괄하는 역할이며, 이는 박지성 전북 현대 모터스 어드바이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할이다.
박 위원이 전북 1군과 유스팀을 오가며 조언을 한다면, 차 감독은 유스팀에 집중할 예정이다.
12월 28일, FC 서울 유스강화실장 선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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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타

 

    •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킨헤드 머리스타일로 다니다 보니 간혹 탈모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탈모가 아니고 그냥 본인이 편해서 밀고 다니는 것이다. 고대 시절 제라드의 머리를 따라하려는 의도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을 때부터 삭발을 했는데, 이게 너무 편해서 이후로도 계속 삭발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머리를 민 것이 딱 차두리가 유명해질 시점이었다 보니 오해가 생긴 듯하다. FC 서울 활동 중 잠깐 머리를 길렀던 모습이 있었다.
    • 2001년 월드컵 대표팀이 고려대와 연습 경기를 끝마친 후,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 선수 하나가 계속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일러주었는데, 선수는 '난 지금 고려대 선수니까 우리 감독의 말을 듣겠다'며 훈련을 계속했다. 이 당돌한 선수가 누군가 싶어 물어보니, "차두리라고 그 유명한 차붐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차두리를 월드컵 대표 선수로 발탁했다.
    • 2003년 말에 굿데이 기자를 폭행했다고 모함을 당한 김병현을 옹호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올리기도 했다. 이 글에선 "저는 야구를 잘 보지도 않고 김병현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기자들이 워낙 엉뚱하게 기삿거리를 만들다 보니 억울하게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 이때 유달리 욕으로 악플을 달던 이가 있었는데, 이걸 본 오마이뉴스 기자가 IP를 추적했더니 그 신문사가 나왔다고 한다. 이 보도에 당시 굿데이는 물론 부정했지만, 당연히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6개월 만에 망해버렸다. 사실 며느리 사정은 동서가 안다고, 차두리 역시 스포츠 신문 기레기기자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거절하자 다음날 '어린 놈이 좀 잘나간다고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훈계 조 기사가 났다고 한다.역시 기레기들이 문제
    • 2010년 6월 29일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스코틀랜드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따로 탔다. 이유는 경기 종료 후 이틀 뒤 스코틀랜드 팀으로 러브콜이 들어와서... 그 때문에 바로 비행편을 잡고 대표 팀과 인사를 나눈 뒤 탑승 게이트로 들어가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김남일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바로 러시아 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과 2년 계약을 맺었다.
    • 셀틱으로 이적할 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뛰려면 영국 노동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최근 2년 간 A매치의 75% 이상을 뛰거나 혹은 보증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차두리의 A매치 출전 횟수가 기준에 못 미치다보니 결국 보증인밖에 길이 없었고, 다행히 아버지와 절친하다는 어느 아저씨가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축구계 레전드 올타임으로 꼽히는 프란츠 베켄바워. 보증인의 격이 황당하리만큼 높아서 지금도 잊을만하면 회자되곤 한다.
    • 한때는 축구 선수가 아니라 스포츠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자 친구들처럼 축구를 잘 아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의 고려대 시절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였으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아버지가 겪은 일을 본 후로 정나미가 떨어져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이런 이력 덕에 운동 선수답지 않게 각종 시사 상식과 지식이 풍부한 편이며 언변도 수려해서 아버지와 함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해설을 맡아 호평을 들었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어려서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덕에 독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대표 팀 초년에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도 독일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둘은 통역 없이 직접 독어로 대화했다고 한다. 일상 언어로도 독일어가 조금 더 편해서 해설 할 때 메모를 할 일이 있으면 독일어로 한다고 한다. 2014 월드컵에 해설로 나섰을 때는 파트너 배성재가 커닝이 안 된다며 장난스럽게 불만을 제기했다고. 또한 독일 국가대표 팀 경기를 해설 할 때는 장난스럽게 독일을 응원하기도 하고 독일 선수 라인업을 본토 발음으로 소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대표 팀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와도 독일어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소프트웨어 기본 언어가 독일어라 독일 감독 또는 독일어를 할 줄 아는 감독 외에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 못한다 카더라차두리의 독일어 인터뷰 재밌게도 아버지 차범근은 꽤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음에도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부자가 함께 참여한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가 나와 차두리가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렇게 못 할 수가 없다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차범근은 나는 축구로 잘했잖아라고 일축해 웃음을 주었다. 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누나인 차하나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서 일했다고 한다.
    •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국적설정이 독일과 한국 이중국적으로 되어있다. 물론 이 경우는 차두리의 출신지인 프랑크푸르트 때문에 자동적으로 독일 국적도 추가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 FM에서는 우리나라의 이중 국적 금지를 반영하지 못한 게 크다.
    • 고교 시절의 축구부 동기 중에 연예인이 있었는데, 바로 개그맨 노우진. 축구부의 분위기 메이커였단다. 그러나 차두리의 어머니는 노우진을 싫어했다는데, 노우진이 차두리에게 같이 개그맨을 하자고 해서 그렇다고...
    • 2009년 한 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일에 쫓겨 어린 아들을 제대로 코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던 차범근은 손자가 태어나면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그 후 1남 1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다.
    • 2013년 4월 3일, 이혼 기사가 떴다. 아내가 오랜 해외 생활을 견디지 못해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고 이에 차두리가 먼저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혼 여파인지 경기에 출전도 제대로 못 하였고, 결국 독일 소속팀과 재계약하는 것을 포기하고 K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의 팀인 수원에서 함께 뛰고 싶어 했다는데 차범근은 이미 2010년에 수원 삼성 감독에서 사실상 불명예 퇴진으로 물러났던 터라 무산되었고, 차범근의 대표팀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서울로 이적하였다.
    • 성격이 좋아서 훈훈한 일화들이 여럿 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예선 첫 경기인 바레인전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국가대표 초년병 시절 잉글랜드 대표 팀과의 경기에서 교환 요청을 하다 거절 당한 경험이 떠올라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유니폼을 건네줬다고 한다. 이란 전에서도 연장전에 터진 윤빛가람의 골로 1:0으로 패배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란 선수를 위로하는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트위터 유저다. 아이디는 robot두리22.
    • 국가대표 축구 팀 주치의 송준섭 유나이티드 병원장은 차두리가 타고난 신체라는 것을 설명하며 "로봇 심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심장 근육 벽이 일반인보다 두꺼워지는 심장 비대(肥大)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극심한 운동에 몸이 적응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차두리의 심장은 기능이 원래 뛰어나서 심장 벽의 두께가 두꺼워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반인과 별 차이 없다고 한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처참한 경기력으로 광탈하고 왔음에도 홍명보가 유임되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는 의미심장한 트윗을 올렸다.여기 이후에 쿨함 브라질 마지막 칼럼에서 밝히길 "그 입 다물라!"는 차붐의 엄명이 떨어졌다고 한다.
  •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방영된 차범근, 차두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신이 박지성이나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차범근은 반대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아들이 힘들어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후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걸 보면 워낙 성격이 좋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살아오며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음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사실 차두리가 이만큼 해온 것도 대단한 것이다. 이름 없는 선수의 아들이 유명선수가 되거나 유명 선수의 아들이 별 볼 일 없는 선수가 된 사례는 정말 수도 없이 많지만 유명한 축구 선수의 자식이 아버지 따라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에서도 꽤 드문 케이스다. 기껏해야 파올로 말디니 정도. 비록 차범근이 이룬 커리어에 비해 많이 부족해 보이는 차두리이나 차범근이 워낙 대단한 것이지 한국에서 차두리만한 커리어도 드물다. 충분히 차범근의 아들로서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차범근도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독일에 가면 현역시절 동료들에게 아들이 국가대표라고 자랑하면 다들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몇번씩 했다. 前 키커 편집장이던 라이너 홀츠슈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분데스리가를 통틀어도 차붐 부자처럼 대를 이어 왕성한 활약을 보인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고, 트란스퍼마르크트는 차붐 부자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역대 부자 랭킹 3위로 올렸다.
  • 팬들은 차두리가 활약을 보일 때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기량이 많아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종의 관용구인데 위에서 서술한 독일전 전설적인 3-1 승리 때 필립 람과 스피드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송재익 캐스터가 친 멘트에서 유래. 왜 기량이 '많아졌'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어색하면서도 묘한 어감 때문에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 인테르와의 평가전 태클항의
  • 아이돌 가수 선미가 차두리의 팬이다. 이상형으로 차두리를 뽑은 데다 '24시간이 모자라' 활동 시절에는 같이 안무 추고 싶은 남자로 엠블랙의 이준과 함께 그를 뽑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유행할 적에는 다음 상대로 차범근, 차두리, 그리고 차두리의 동생 차세찌 씨를 지목했다. 차두리 역시 자신을 지목해준 선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아이스 버킷에 가담했다.
  • 안티가 없는 대표적인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대개 유명 선수들은 그 선수가 소속된 팀의 안티팬들이 엮이거나 축구 외적인 면으로 구설수에 올라 까이거나 아니면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기량으로 비난을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지 잘나간다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먹거나 하는데, 차두리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드문 케이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런데, 누가 봐도 "언제나 많이 뛰고 잘 뛴다." 그리고 표정둥글고 사고 안 치니 그 다음은 기용한 감독의 영역.
  • 고려대학교 동기인 이택근과 친구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가 없는 날엔 이택근의 초대로 목동 야구장을 찾는다던지 경기가 없는 날엔 서로 만난다던지 하는 친분을 과시했고, 이택근의 동료인 박병호가 50홈런을 쳤을땐 축하한다는 인스타를 남기기도.
  • 세스크 파브레가스,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같이 왼손잡이-오른발잡이로 주로 쓰는 손과 발이 다르다. 하지만 차두리는 글을 쓸때는 오른손으로 쓴다.
  •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칼럼 '차두리의 유로話'를 연재하게 되어 스포츠 기자의 꿈에도 한발 가까워지게 됐다. 차두리 본인이 해외축구계에 정통하고 해설 경력까지 갖춘 만큼 필력도 좋고 분석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선한 사람됨이 잘 드러나는 글을 쓰고 있는데 따뜻한 칼럼들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이유들로 칼럼니스트로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영국에서 기성용 응원차 방문해서 새우를 먹었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고 한다.
  • 이미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시절부터 스타 선수인 차두리는 2010년 짱구는 못말려 10기 - 염색을 해요- 편에서 짱구(박영남 성우)가 염색을 하고 스스로 베컴, 차두리 라고 언급했다. 반삭 헤어스타일은 차두리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당시 2010년은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 해였기에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과 차두리로 로컬화 했다.

 


3.1. 로봇설

 

1. 아무도 그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2. 고되고 힘든 훈련 사진에서도 혼자 웃고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3. 차두리가 볼을 잡으면 차범근이 조용해진다.(차범근은 이 때 조종 중)
4. 차두리 유니폼 뒤에 새겨진 이니셜 D R CHA가 Dr. CHA의 변형이다.(차 박사가 만들었다는 의미!)
5. 차두리의 등번호는 11번인데, 콘센트 모습과 같다.(백넘버로 위장함. 현재는 등번호 22번으로 110V에서 220V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6. 차두리는 머리가 자라지 않는다.(태양열 발전 판이라는 추측이 있다.)
7. 차두리는 전진, 후진 밖에 못 한다.
8. 차두리의 경기를 보면,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힌다고 볼 수 없다.
9. 아르헨티나 전에서 그토록 한국이 열세였음에도 그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르헨전이 치러진 경기장의 해발 1700미터의 기압과 온도에 의해 기계 오작동이 생겨서다

 

3.2. 딸과 관련된 문신

 

V I I . I I . M M X → 7.2.2010 → 2010년 2월 7일
X I I I . I X . L X X V III → 13.9.78 → (19)78년 9월 13일
  • 왼쪽 옆구리차두리 로봇 설을 증명하는 시리얼번호왼쪽 옆구리의 문신은 로마 숫자 표기법으로 된 숫자이며 2개의 날짜를 의미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구분을 위한 점이 찍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 오른쪽 팔

 


3.2.1. 부전자전 외모

 

아버지 차범근과 여러모로 판박이 외모.
'부전자전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차씨네 가문 3세.
일단 우는 표정은 아빠를 닮은 듯.
참고로 5살 아래 동생 차세찌도 차두리와 매우 닮았다.
오죽하면 쌍둥이 아니냐는 평이 있을 정도.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쪽이 차두리.
그 외 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2살 위(1978년생) 누나 차하나.
차하나는 부친보다는 모친을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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