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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걸 정무문 SMI/근황/방세옥 다시보기/태극권 다시보기/정무문 다시보기/의 히트맨/의천도룡기 다시보기/프로필 -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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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걸

이연걸
李連杰|Jet Li
본명
이양중(李陽中)
출생
1963년 4월 26일 (59세)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국적
중국 미국 싱가포르
신체
166cm
직업
영화배우, 무술가
언어
표준중국어, 광동어, 영어
종교
불교 (티베트 불교)
무술
번자권
팔극권
우슈 장권
금나술
솔각
진식 태극권
산타술
학력
베이징 스차이하이 체육학교 (수석졸업)
부모
부 리칭취안(? ~ 1965)
모 장펑란(? ~ 2002)
배우자
황추련(1987 결혼 ~ 1991 이혼)
이지(1999 결혼 ~ 현재)
자녀
슬하 4녀
대표작
소림사
황비홍 시리즈
방세옥 시리즈
정무영웅
데뷔
1979년 영화 <소림사>

 

1. 소개

 

싱가포르 국적의 중국계 액션 배우.
원래 중국 국적이었으나 1989년 중국을 떠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이후에 다시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하여 현재는 단독 싱가포르 국적이다.
미국에서 싱가포르로 국적을 바꾼 이유는 90년대 보수적인 중국 정책으로 인해 미국 국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싱가포르 여권은 중국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는 반면, 미국 여권은 비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세금 문제도있었을 것이다.
이연걸 입장에서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에서만 거주하며 중국이 주 활동무대인데 굳이 세금을 더 내면서 미국 국적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1. 데뷔전: 엘리트 무술가

 

1963년 베이징의 노동자 가정에서 3남 2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2세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
1971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이후 베이징에서 이름난 무술가였던 오빈(吳彬)의 눈에 띄어 베이징 스차이하이체육운동학교(北京市什刹海体育运动学校)에 전학하게 된다.
12세 이후 우슈 선수로 뛰며 대회에서 우승, 이후 5년 연속 우승을 이룬다.
워낙 실력이 뛰어나 베이징 우슈 시범단에 소속되어 중국에서 열리던 국제대회 개막식에서 시연을 하기도 하고,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직접 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무협소설에 익숙한 팬들은 그가 무림에서 무술을 단련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이미 무림 같은 곳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모두 없어지고, 제도권의 체육학교 및 무술학교로 흡수되었다.
이연걸이 나온 베이징 스차이하이체육운동학교는 한국으로 치면 체육영재학교 같은 곳이다.
일단 당시 중국 무술 전수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면,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사사로운 무술 전수는 금지되고, 오직 정부 통제하의 무술학교나 체육학교에서만 무술을 익힐 수 있었다.
1982년이 되어서야 이 금지는 풀리고, 이후에 무술전수나 무술학원 설립이 자유화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정부에 의해 무술전수가 금지되고 무림이 없어졌다고 해서 (여기에 문화대혁명의 영향까지 더해서) 중국무술이 단절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국공내전 이후 각종 유파가 통합되어 무술이 표준화, 제도화되어 체육학교로 흡수되었다.
이렇게 무술 전수의 경로를 정부 통제하에 둔 이유는 이념상의 문제가 아니라 치안의 문제 때문이다.
이 당시 중국의 무림이나 도장은 거의 조폭급의 행태를 보였다.
20세기 중반 중화인민공화국 집권기의 엽문의 일생을 다룬 엽문 2나 일대종사를 보면 이들의 조폭이나 다름 없는 행태를 볼 수 있다.
원래 이런 무술 전수 금지는 공산당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만주족이 대륙을 장악한 청나라 시기부터이다.
소수인 만주족이 한족이 무술을 익혀 반란세력이 될까 두려워하여, 사사로운 무술전수를 금지한 것이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 청조의 힘이 약화되면서 이런 금지령도 유명무실되었다.
그리하여 대륙에 우후죽순처럼 무림 및 유협집단이 생겨났다.
이어 모택동이 1949년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거의 100여년간 중국 전토를 이런 집단이 할거하면서 공식적인 정부 이외에 또다른 정부노릇을 했다.
이렇게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무림 같은 곳은 쉽게 유협집단, 즉 우리말로 하면 조폭의 소굴, 더 나아가 반란 세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새로집권한 공산당 정부가 철저히 규제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제도권으로 편입되지 않은 무술들이 소실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소실된 것은 아니며, 그 제도권에서 키워진 무술가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제도권 무술가들이 투로나 동작만 강조하여 수련을 쌓다보니, 실전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MMA와 같이 전문적으로 실전만 단련한 선수끼리의 대결에서는 당연히 그럴지 몰라도, 이렇게 동작 및 투로만을 수련한 무술가들조차도 일반인에 비해서는 넘사벽의 격투기 능력을 가진다.
게다가 그런 투로를 연습한다는 무술인들조차도 실전을 겸비하기 위해 격투기인 우슈 산타를 익히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다만 영화 출연에는 뽀대나는 동작을 보여주는 것은 투로 위주의 전통권이 더 낫기도 하기 때문에 이연걸이 영화배우가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 무술은 문화대혁명보다는 무림이 한족부흥을 내세운 반란세력이 될 것을 우려한 청조 때 대부분 유실되거나 실전되었다.
다시 이연걸의 얘기로 돌아와서, 이연걸은 우슈 대회에서 투로만 우승한 게 아닌 격투부문도 3연속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실전 능력도 겸비했다.
우슈를 하는 이들 가운데서 산타를 익히는 이들도 의외로 많으며, 동문인 견자단 역시 산타를 익혔다.
의외로 중국정부 내에서 강건한 기풍을 장려하기 위해 무술인들을 많이 양성했는데, 이연걸과 견자단 외에도 남권 챔피언이었던 구건국 등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연아나 차범근과 같이 실제로 워낙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내로라하는 5인에게 일일이 그들의 비전을 전수받기도 했다.
일례로 가장 유명한 게 견자단의 스승이기도 한 오빈 사부 밑에서 이연걸이 동문수학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연걸은 대륙의 엘리트 체육학교에서 우슈 장권을 비롯해 번자권, 진식태극권, 금나술, 솔각 그리고 팔극권 고수인 스승 ‘왕식권’으로부터 팔극권을 배우는등 우슈와 다양한 전통권을 체계적으로 배웠으며 투로 및 실전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무도가임은 부인할 수 없다.
1979년 전국운동회(중국판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5개를 딴 이후 무술계를 은퇴한다.

 


1.2. 1980년대 초반 데뷔

 

소림사 시절의 이연걸 이연걸의 영화 《소림사》 출연시의 무술 시범 모습1980년 영화 《소림사》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당시 기지개를 펴던 대륙-홍콩 합작 영화로 대륙이 무대와 배우를 제공하고 홍콩의 스탭이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소림사 시리즈도 배우들은 모두 대륙인이지만, 제작사는 홍콩의 대 스튜디오인 쇼브라더스였고, 감독 및 제작자도 홍콩인이었다.
홍콩에서 1982년에 개봉 했으며 당시 죽의 장막 뒤에 가려 있던 실제 소림사를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그 이전만해도 홍콩영화는 북중국을 배경으로 한 사찰신은 한국에서 로케를 할 정도였는데, 이 작품은 실제 소림사를 배경으로 찍었기 때문에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작의 흥행에 힘입어 1983년 《소림사 2》(원제 소림소자)에 출연했고, 1986년 《소림사 3》(원제 남북소림)가 나온다.
이 소림사 3은 한국에서 개봉된 최초의 중화인민공화국 제작의 배경 영화로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만리장성이 나온다고 화제가 되었다.
이 소림사 시리즈는 연작 같지만 사실 배경이 소림사이고 이연걸이 주연, 호견강(胡堅强)이 동료, 우해(于海)가 사부로 나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연관성도 없다.
이연걸이 맡은 주인공의 이름도 1, 2, 3편 모두 모두 각원(覺遠), 삼룡(三龍), 지명(智明)으로 다 다르다.
세 작품을 별개 작품으로 보는게 속편하다.
소림사 시리즈는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사실 플롯은 너무 단순했다.
이연걸의 화려한 액션 뿐만 아니라, 배경으로 진짜 소림사와 만리장성, 자금성이 나오고 수많은 엑스트라급 무술연기자의 집단 전투신 등, 이전의 홍콩 무협영화들보다 볼거리는 훨씬 풍부했지만 "권선징악 및 복수"라는 무협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반복했기 때문에 영화사적으로 이연걸의 데뷔작이라는 것 이외에는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렵다.
그만큼 세 시리즈에서 이연걸의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한편《소림사 3》를 감독한 유가량(1934-2013)은 홍콩의 유명감독인데 그의 아버지 유심은 유명한 황비홍의 제자였고 동생인 유가휘도《소림 36방》의 주연으로 활약 하는 등 무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수많은 액션영화에서 무술을 지도하거나 직접 출연해서 뛰어난 무술실력을 선보이기도 하며 홍콩영화계에서 무술감독으로서의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유가량이 무술지도를 맡고 직접 출연까지 한 마지막 작품은 의 칠검(2007)이었다.
.

 

1.3. 1980년대 말: 거듭된 실패

 

소림사 시리즈로 이름이 알려진 이연걸은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해 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1986년에 영화《중화영웅》(中華英雄)에서 주인공과 감독을 겸직하는 무리수를 던졌다.
이 영화는 중일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소대원 출신 이연걸이 전쟁후 악독한 미군들과 맨주먹으로 맞서 싸워 이긴다는 내용인데 형편없는 스토리는 그렇다쳐도 액션장면이라도 멋졌으면 좋았을텐데 이연걸 답지 않은 어정쩡한 격투씬들로 인해 결국 영화는 망했다.
이때의 실패가 뼈 아팠는지 이연걸은 두 번 다시 영화감독을 하지 않았다.
1988년에는 주성치와 공동출연한《용재천애》(龍在天涯)를 찍었지만 다시 망했다.
이 영화에서 미스 홍콩 출신 여배우 리지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이연걸은 무술학교 동문이자 아내였던 황추연 에게 "당신에게 느낀 건 사랑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준 연민이었다"고 사실대로 고백했고 그 얘기를 들은 황추연은 이혼을 해주었다.
황추연은 이연걸과 이혼 후 영화계를 은퇴했고, 중국웹의 썰에 의하면 이후 미국으로 이민가서 미용실 사업을 하던 중 재혼을 했는데, 그녀의 남편은 한국 화교 출신의 중국계 미국인 왕모씨라고 한다.
1989년 이연걸은 중국을 무단으로 이탈하였고, 서방에서는 이를 망명으로 보도했다.
천안문 사태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본인은 "좀 더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금전문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980년대 초반의 중국은 원리주의적인 사회주의 체제가 지배하던 나라였고, 소림사 시리즈를 찍을 때 배우들은 기본적인 숙식제공에 일당으로 하루 고작 1위안(.
) 정도의 푼돈을 받았고, 홍콩영화사와 합작으로 얻은 많은 수익들도 국가(정확히 말하자면 공산당 간부들)가 모조리 가져갔다.
만약 이연걸이 이때 홍콩에서 활동했었다면 수백만 위안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국영 영화사에 소속된 배우였기에 푼돈 정도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을 무단이탈해 홍콩에 갔던 것이다.
1990년대 초 이연걸이 중국에 영화촬영차 다시 입국했을 때 체포되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어떻게 잘 무마한 듯 하며 중국 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 당시만 해도 중화권에서 조금 이름이 알려진 배우였을 뿐 월드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에서도 소림사 시리즈가 1, 2, 3편 다 극장개봉했으며 중고생 단체관람이 많아 1편의 경우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2, 3편의 경우 그냥저냥한 수준의 흥행성적을 내면서 더욱 이름이 없었다.
1989년에 중국 이탈 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단신 처리되었을 정도였다.
.

 


1.4. 1990년대 초: 서극과의 만남 및 배우로서의 대성공

 

그러다가 1991년 홍콩의 명제작자인 서극과 정소동을 만나며 재기한다.
이후로 서극의 영화에 계속 출연하게 되는데, 서극이 제작과 감독을 겸직한 《황비홍》이 히트를 치며 이연걸은 다시 한 번 흥행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이연걸의 외모나 연기가 황비홍이라는 캐릭터속에 너무나 잘 녹아들었으며 황비홍 1편과 2편은 그를 중화권 액션스타로 만들어주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서극과 정소동은 중화영웅에서 거칠고 날렵한 액션만을 구사하던 이연걸을 화려하고 우아한 동작을 구사하는 무협소설속 무림고수의 이미지로 재탄생시켰다.
때마침 김용과 고룡등의 '신무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홍콩 무협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이 무렵부터 이연걸의 인지도가 올라가며, 국내에서도 성룡의 인기를 서서히 따라잡게 된다.
이소룡이 길거리 싸움을 보는 듯한 액션을, 성룡이 코믹하고 기발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연걸은 무협소설에서나 등장하던 허공을 내달리며 무공의 초식들을 멋지게 시전하는 무림고수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이연걸은 배우 이전에 어린 시절부터 배운 전통무술의 동작들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무술의 예술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이보다 완벽한 인물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서극과 정소동이 제작한《동방불패》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했고, 왕정 감독의 소림오조에서는 냉정한 무사역할을 잘 소화해 냈으며, 원규 감독의 코믹액션 방세옥 시리즈, 정무문, 태극권 등과 현대 액션물인《》등으로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와 같은 연속적인 성공으로 이연걸은 홍콩 영화계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계보를 잇는 중화권의 대표적인 액션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다만 이 당시 매년 2~3편 이상의 다작을 했고 과격한 액션장면이 많은 작품들에 연속적으로 캐스팅되어 활동하다 보니 몸이 성할 날이 없었고 훗날 신체적으로 부상후유증을 겪게 된다.
황비홍 1편에서는 찻집에서 사하파 악당들과 싸우는 장면을 찍다가 큰 부상을 당했고, 정소동 감독의 모험왕을 찍을 때는 발목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사실 인력풀이 비교적 좁고 위험천만한 액션장면들이 난무하는 홍콩 영화계의 특성상 스타급 배우라도 쉬지 않고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다보니 부상후유증이 심한 편이다.
이런 면에서 데뷔 이후 꾸준한 몸 관리로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며 활동했던 견자단 같은 경우는 홍콩 영화계 내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홍콩은 아니지만 역시 날렵하고 우아한 액션으로 이름난 여배우 유역비도 시대극에 출연하면서 잦은 와이어 연기로 인해 만성적인 요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초중반은 홍콩영화의 전반적인 침체기로 성룡과 주윤발로 대표되는 기존 배우들은 침체기에 있었지만 이연걸은 그 와중에도 홍콩 및 중화권의 확고한 액션스타로 자리잡았으며 이를 밑천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1.5. 이후: 월드 액션 스타로의 도약

 

1998년 《리쎌 웨폰 4》에 캐스팅 되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악역으로 허무하게 죽는 배역이라 중국 팬들은 무척 불쾌해했다.
이때는 영어 구사 능력이 딸렸는지 거의 중국어로만 대사를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답게 압도적인 무술 실력으로 주인공들을 흠씬 두들겨 패지만 어이없게 AK-47에 벌집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무리 뛰어난 무술가라도 총탄세례를 받고서 살아날 순 없으니까.
마지막에는 철근에 가슴이 꿰뚫린채로 수장된다.
그러다가 2000년에 주인공으로 나온《로미오 머스트 다이》가 대박이 난다.
2,500만불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9,100만불의 수익을 냈는데 미국계 동양인이 아닌 중국 본토 출신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이 작품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얻은 이연걸은 할리우드에 안착하게 된다.
《미이라 3》나 《더 원》같은 범작영화에 나오기도 했지만 이후로《익스펜더블》시리즈 같은 액션영화들에 꾸준히 출연했다.
이외에도 홍콩영화 대신 중화권 영화의 맹주자리를 차지한 중국영화에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장예모 감독과 작업한 영웅(2002) 같은 경우는 화려한 액션이나 미장센은 볼만했지만, 주제면에서는 진시황을 미화하는 메시지가 너무 강해 서방평론가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2010년대 들어서는 나이와 그동안의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액션강도는 낮아졌다.
2020년작 뮬란에서는 황제 배역을 맡았지만 액션장면은 딱 한번 나오고 출연하는 장면들 대부분은 자리에 앉아있거나 묶여있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2. 영화 목록

 

1982
소림사
1983
소림소자(소림사 2)
1986
남북소림(소림사 3)
1988
중화영웅, 용재천애
1989
용행천하
1991
황비홍
1992
동방불패, 방세옥, 황비홍 2
1993
의천도룡기, 황비홍 3, 태극권(영화)
1994
소림 쿵후, 정무문, 보디가드, 소림오조
1995
(이연걸의) 영웅, 모험왕, 탈출
1996
흑협
1997
황비홍 서역웅사 - 황비홍 6
1998
히트맨, 리쎌 웨폰 4
2000
로미오 머스트 다이 - 한 싱
2001
키스 오브 드래곤 - 류 건(劉健), 더 원
2002
영웅
2003
크레이들 2 그레이브
2005
더 독 - 대니
2006
무인 곽원갑
2007
, 명장 - 방청운
2008
포비든 킹덤 - 손오공/목승, 미이라 시리즈 황제의 부활 - 황제 한
2010
익스펜더블, 해양천국
2011
백사전설, 용문비갑
2012
익스펜더블 2
2013
불이신탐
2014
익스펜더블 3
2016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
2020
뮬란

 

3. 영화 리뷰

 

  • ‘리셀웨폰 4’는 헐리우드에 처음으로 진출한 이연걸이 악역을 맡았던 영화인데 그의 배역은 상당히 간지나는 데다가 엄청난 실력으로 주인공들을 갖고 노는 ‘말도 안되게 강한 악당’ 기믹이라, 이연걸의 존재를 북미시장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또한 이연걸 특유의 선하고 순박해보이는 얼굴이 사악한 캐릭터와 결합하면서 은근히 시너지 효과도 불러왔다. 사실 이 배역은 성룡한테 가장 먼저 제의가 갔었지만 성룡은 악역은 하지 않는다며 거절. ’러시아워 1편’에서 ‘상’을 맡았던 켄 렁 또한 고려했었으나 결국 이연걸이 하게 됐다.
  • ‘황비홍2’ 는 이연걸과 견자단의 대결로 화제가 됐던 영화이다. 봉술 대 봉술, 장대봉술 대 봉술, 양손봉술 대 양손봉술, 봉술 대 포곤 등 이연걸과 견자단의 다채로운 봉술대결이 눈을 즐겁게 한다. 영화상에서 두명의 최종보스가 등장하는데 사이비종교 교주가 최종 보스로 보였지만 클리어 후에 진짜 최종 보스는 견자단이었다는 설정 때문에 마치 두편의 무술영화를 본것같아 좋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진짜 최종보스인 견자단이 사용하는 '포곤'이라는 무기가 정말 매력적이다. 이것은 물먹인 천을 채찍처럼 사용하는 독특한 무기로 견자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이후에 1995년 TV시리즈 '견자단의 정무문' 에서도 이 무기가 등장한다. 황비홍 2 촬영당시에 견자단은 영화계에 몸을 담았지만 흥행이 신통치 않고 좋은 평가를 못 들어서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그때, 서극 감독이 무술감독인 원화평에게 이연걸의 라이벌을 찾는다고 말하자 원화평은 주저없이 견자단을 떠올리며 그를 추천했다. 결국 '황비홍 2' 에 캐스팅된 견자단은 '납란원술' 역으로 맹활약하며 역대 황비홍 시리즈중 '가장 강력한 최종보스' 라는 평을 들었다.
  • ‘키스 오브 드래곤’은 '뤽 베송'이 이연걸을 초빙하여 만든 영화로 이연걸이 직접 원안을 쓰고, 뤽 베송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크리스 나혼이 감독을 맡아서 제작했다. 뤽 베송과 이연걸은 '레옹'과 '정무문' 을 섞은듯한 영화를 제작하기로 협의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레옹과 정무문을 오마주한 장면이 많다. 무술액션은 중국무술 보다는 격투기 스타일로 연출했다. 프랑스 파리(프랑스)로 날아간 이연걸의 액션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 영화는 프랑스 자본에 의해 일부 미국 배우들을 기용해서 프랑스에서 찍은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의 슬럼가, 암흑가를 배경으로 부패 경찰들의 비리와 첩보원들의 애환까지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홍콩 이외에 서양권에서 찍은 이연걸의 작품 중 재미 면이나 완성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인데, 레옹, 테이큰, 13구역의 뤽 베송(제작, 각본) 특유의 히어로 액션 스릴러물과 이연걸의 무술 실력이 만나 걸작이 탄생했다.
  • ‘이연걸의 정무문’은 이소룡 주연의 '정무문'을 원작으로 다시만든 작품인데 이연걸 이전부터 이미 여러차례 리메이크 되었다. 이연걸의 대표작하면 꼭 들어가는 작품으로 동, 서양 액션 팬들이 꼽는 홍콩 액션영화 베스트 10에 한번씩은 꼭 들어가는 걸작이다. 이연걸은 기존의 무술배우들과는 달리 이소룡의 상징인 상의탈의, 괴조음, 쌍절곤을 사용하지 않았고 일본을 절대악으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비판을 받았었다.
  • ‘태극권’ 은 이연걸 주연의 홍콩 영화로, 원제는 태극장삼풍(太極張三豐)이다. 그의 영화 중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으로 이 영화로 인해 기존의 태극권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엇보다 태극권이 정말 멋지게 연출되었는데 주인공인 이연걸의 실력덕분이다. 권법이 소재인 영화지만 등장인물이 다양한데다 계속 무기를 바꿔가며 싸우는 관계로 이런저런 무기술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검, 대도, 쌍도, 동추, 도끼, 장봉, 쌍봉, 창 등 무협물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무기들이 거의 다 등장한다. 천보 역을 맡은 전소호는 태극권뿐만이 아니라 이듬해 개봉한 정무문에서도 이연걸과 재회한다. 여기에서도 이연걸이 분한 진진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사형 역할이다. 그래도 결국 진진과 화해하고 선역인 조력자로 활약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연걸과 합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실력있는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 ‘의천도룡기’ 는 김용의 소설 의천도룡기의 영화판으로 왕정이 감독하고 이연걸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라는 한계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축약과 각색이 있지만, 의천도룡기의 분위기를 상당히 잘 살려낸 편. 의천도룡기의 절정부인 광명정 전투는 좋은 음악과 함께 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돼서 화려하며, 무당산의 싸움은 긴장감있는 액션과 유머를 잘 버무려서 엄청 재미있다. 어렸을 때, 현명신장을 맞아서 무공을 전혀 쓰지 못하던 장무기 역의 이연걸이 화공두타에게 구양신공을 배우고 복수를 다짐하며 절규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 ‘동방불패’ 는 1980년대 초를 끝으로 코믹 액션과 홍콩 느와르에 의해 맥이 거의 끊겼던 홍콩 무협영화 장르를 완전히 되살린 영화로 국내 무협팬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를 통해 서극 감독과 이연걸은 그렇지 않아도 높았던 인기에 가속도가 붙었고 동방불패 역을 맡았던 임청하는 이 작품으로 인해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 ‘동방불패2’ 에서도 ‘원안 대본’ 대로라면 이연걸, 관지림, 이가흔 등 전작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연걸, 이가흔이 ‘방세옥’ 촬영차 북경에 있었고 그곳에 발이 묶여서 홍콩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서 제작사의 압박이 거세지자 ‘서극’ 은 하는 수 없이 ‘동방불패2’ 원안 대본을 폐기하고 급조한 각본을 쓴 뒤 ‘정소동’ 에게 넘겨주고 제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방불패2’ 는 전작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액션에 있어서는 전작보다 스케일이 더 커지고 또한 임청하와 왕조현의 미모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 ‘영웅(1995)’ 은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 과는 국내 개봉 제목만 같고 실제로는 다른 영화이다. 원제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給爸爸的信). 소림오조에서 이연걸의 아들역할로 나왔던 소년 액션배우 사묘가 여기서도 이연걸의 아들로 나오는 부자액션 영화. 후반부 경매가 벌어지는 배안의 대결씬에서 이연걸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톤파’ 기술을 선보인다. 그리고 악역은 우영광, 노혜광, 예성 3명이나 된다. 우영광이 최종 보스인 조직 두목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선글라스가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 참고로 우영광은 철마류, 국내영화 무사, 성룡의 뉴 폴리스 스토리, 드라마 삼국의 관우 역으로 나온 바 있는 액션배우. 얼굴을 찾아보면 "아 이 사람?" 하게 된다. 의외로 이 양반도 무술 실력이 출중하며 전국 무술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목면가사’ 라는 영화를 보면 전성기 때 무술 실력을 확인 할 수 있다. 다만 영웅에서는 본문에 있다시피 사나 죽으나 선글라스를 껴서 우영광을 잘 모르는 사람은 알기 쉽지 않다.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됐던 당시 영화 중간에 이연걸의 어린아들이 적의 아지트에서 우영광에게 폭행당하는 장면때문에 개봉 극장마다 관객들의 눈물바다가 됐었다.
  • ‘소림오조’ 는 당시 자주 만들어지던 천지회 홍희관을 주인공으로한 무협 액션물. 작중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하고 어둡지만 왕정감독 특유의 코미디 센스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림사가 숨겨놓은 보물지도를 노리는 청나라 조정과 싸우는 이연걸을 그린 작품으로 그의 신기에 가까운 창술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아들을 동반한 검객을 표절한듯한 내용이 많다. 유일하게 독창성 있는 것이 아역 배우를 많이 출연시켜 코믹하면서도 화려한 액션을 연출했다는 것. 그 외에 구숙정과 엽덕한의 개그 콤비 연기도 볼만한다. 이연걸과 사묘의 합동창술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하다
  • ‘흑협’ 은 신체 개조를 한 인간병기들로 구성된 용병단이 있는데 그 용병단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주인공 이연걸이 용병단을 나와 자유롭게 살다가 용병단에 다시 휘말리고 그곳에 돌아가길 거절하자 이 때문에 용병단과 싸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연걸이 착용한 가면디자인은 '그린호넷', 의상은 '배트맨'에서 차용했다. 이제는 이런류의 영화를 많이 만들지만 영화개봉 당시만해도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신선한소재의 영화였다. 특히 무협스타 이연걸이 홍콩판 수퍼히어로 영화에 출현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이야기들

 

  • ‘베이징 스차이하이 체육학교’ 재학시절에는 선수와 코치를 겸임했으며 이후 ‘수석졸업’ 으로 학교를 마쳤다.
  •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인데 한때 출가해 티베트 승려가 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로 출가할려고 방문했으나 주위의 만류하는 조언을 듣고 포기했다.
  • ‘포비든 킹덤’ 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중국정부의 티베트 유혈진압사태에 대한 시위로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자들이 봉송되던 성화를 끄려고 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묻는 서양 기자의 질문에 ‘성룡’ 은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자가 성화봉송을 방해할 경우 가만두지 않겠다. 시위자가 나(=성룡)을 건드릴 경우 중국의 쿵푸로 본때를 보여주겠다. 시위자들은 내 옆에 다가서지 않는 것이 좋다” 고 티베트 독립운동 반대의사를 밝히며 경고했다가 국제적으로 엄청 욕을 먹었다. 반면에 같은자리에 있었던 ‘이연걸’ 은 티베트 사태나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서양기자의 질문에 인터뷰시간 내내 대답없이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말해 성룡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보인것이다. 당시로써는 이연걸이 할수 있는 최선으로 티베트를 향한 양심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연걸 본인이 처음에 중국 국적이긴 했지만, 나중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현재는 싱가포르 국적이기 때문에 굳이 중국 관련 발언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 견자단은 실제로 만났던 무술배우들중에 가장 무술을 잘하는 이가 이연걸이라고 밝혔다. “이연걸은 특히 병장기에 능하고 나는 맨손격투에 능한데 영화 황비홍2, 영웅 두번 다 이연걸과의 대결은 병기로 싸우는 장면이라 아쉬웠다”고 말했다.
  • ‘리셀웨폰4’에 이연걸과 같이 출연한 영화배우 ‘멜 깁슨’ 은 "이연걸은 정말 빠르다. 너무 빨라서 카메라가 그의 동작을 쫓아가기에 벅찰 정도다. 도너 감독이 다소 액션속도를 줄이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그의 쿵푸는 무술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라고 평을 했다.
  • CCTV(China Central TeleVision)의 ‘예술인생’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이연걸은 자신의 사업과 인생에 대한 감회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의 인생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MC의 질문에 이연걸은 “기공을 할 줄 아는 양어머니”라고 대답하고 양어머니의 특이공능으로 병을 치료하는 등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도움을 받았다며 몇 가지 사연을 이야기 했다. 특히 이연걸은 1988년 영화촬영중, 중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양의사와 한의사들이 모두 그를 치료하지 못했으며 결국 양어머니의 기공치료로 효험을 봤다고 말했다. 당시 이연걸은 여러번에 거쳐 양어머니에게 등에 안마를 받고 대량의 검은 피를 토한 후 완쾌됐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CCTV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방송된 후 중국당국으로부터 ‘미신을 선전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방송될 예정이었던 후속편은 방송금지 조치를 당했다. CCTV의 한 직원은 “이연걸이 말한 내용은 방송에 나가지 말아야 했다, 우리가 실수했다”며 “당시 MC를 맡았던 주쥔(朱軍)이 중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중국정부의 지시를 받았던 당시 중국 언론은 일제히 이연걸의 양어머니로 밝혀진 자오췬쉐(趙群學)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이연걸에게도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며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자오췬쉐는 1980년대, 중국 민간에서 여러 가지 기공이 가장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을 당시 특이공능으로 병을 잘 고쳐 유명해진 기공사였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은 자오췬쉐가 ‘사기꾼’이라는 죄명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 2년 갇혔다가 풀려난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하면서 ‘인간쓰레기’라고 입을 모았다. 이연걸이 출현한 ‘예술인생’ 프로그램은 사실 정치와 무관한 프로그램이었고 양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연걸의 고백도 아무런 정치적 목적이 없는 솔직한 이야기였을 뿐이었지만 그의 발언에 중국 정부는 극도로 과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 중국정부는 이연걸이 출연한 일부 영화에 대한 중국내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이연걸은 블로그를 통해 불만을 터뜨리며 성토했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 ‘더독’, ‘보디가드’, ‘로미오 머스트 다이’, ‘키스 오브 드래곤’이 중국에서 상영금지 됐다며, ‘더독’은 이연걸이 차고있는 개목걸이가 중국인을 모욕했다는 이유, ‘보디가드’는 중국본토의 보디가드가 현실적으로 홍콩으로 출국하지 않는다는 이유, ‘로미오 머스트 다이’는 마피아를 다루었다는 이유, ‘키스 오브 드래곤’은 중국요원이 해외에서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중국 이미지에 먹칠했다는 이유로 각각 상영금지 됐다고 밝혔다. 중국정부 당국의 현실성 주장에 대해 이연걸은 “영화는 반드시 현실적일 수 없다. 영화는 원래 수많은 비현실적 요소가 존재하며 사실을 근거로 찍은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영화의 폭력성에 대해 ‘더독’을 예로 들며 “만약 영화를 보고 폭력만을 배운다면 동물과 구별이 없지만 ‘더독’은 우정, 음악 등 따뜻한 인간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술영화에는 일반적으로 선역과 악역이 있는데 만약 마피아역을 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떤 배역을 맡아야 하는가? 또 국내인이 출국해도 안 되고 외국인이 입국해도 안된다면 옛날 복장만 입던가 미래 배경으로 찍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고대 중국의 설화들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 SBS 예능프로그램 ‘강심장’ 에서 가수이자 연기자인 박정아가 이연걸을 만났던 사연을 털어놨다. 방송에서 박정아는 "아버지가 전문 산악인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눈을 녹여 라면을 끓여 먹고 침낭에서 취침은 기본이었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녀는 아버지와 설악산 등정에 나섰는데 "어느 날은 너무 일찍 일어나서 텐트 근처를 산책하고 있는데 바위 꼭대기 위에 웬 도인이 수련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연걸이었고 자양강장제 광고를 촬영 중이었다" 라고 말을 이었다. 박정아는 "몰래 숨어서 지켜봤지만 결국 촬영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스태프에 의해 쫒겨났다. 하지만 최고 액션스타인 이연걸을 설악산에서 만나 정말 신기했다"라고 털어놔 좌중을 폭소케 했다.
  • SBS ‘한밤의 TV연예’ 에서 여배우 하연수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녀는 ‘이상형이 누구냐’ 는 질문에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을 좋아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상형이 있었는데 바로 이연걸이다. 이연걸 시리즈물을 다 좋아했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챙겨봤다. 그리고 그는 손을 빠르게 움직이는 번자권을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말을 들은 리포터 권혁수는 즉석에서 번자권을 시전해 큰 웃음을 줬다. 덧붙이자면 번자권은 원래 한국에서는 잘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무술이었다. 그러다가 이연걸의 전공무술임이 밝혀져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덩달아 이 무술의 인기도 높아져 국내에서도 한때 큰 화제가 됐다.
  • ‘황비홍’ 촬영당시 후배 이연걸의 무술실력에 감탄한 원표가 농담으로 그를 사부로 모시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다. 즉 실제 제자가 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연걸을 인정해주려는 표현을 우스갯소리를 빌려서 했던 얘기이다. 원표는 이연걸의 존경을 받는 영화계의 대선배로써 가화삼보 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액션배우이다. 그런인물을 감히 제자로 받는다는건 현실적으로 있을수 없는 일이며 업계에서 매장당할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연걸은 원표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정중히 거절했으며 촬영내내 원표를 대선배로써 깍듯이 모셨다.
  • 한국에서 외화 더빙은 홍성헌(SBS), 김승준(KBS), MBC에서는 김도현, 안지환이 연기했다. 이렇듯 많은 성우들이 이연걸을 연기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특히 홍성헌 성우의 목소리가 이연걸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명 ‘이연걸 전담 성우’로 불리며 이연걸의 출연작 25편 이상에서 더빙을 맡았다. 일본에서는 이케다 슈이치가 전담 성우인데 재미있는 건 그의 아내 타마가와 사키코는 관지림 전담 성우이다. 그래서 실제로 황비홍 시리즈에서 연인 역할로 더빙한 적이 있다. 그리고 데이다라로 유명한 성우 카와모토 카츠히코도 이연걸의 더빙을 맏고있는데 주로 방세옥을 연기한다.
  • 초기작에서 연기한 캐릭터는 밝고 똘똘한 컨셉이다. 특히 소림사 시리즈의 주인공 "지명"은 만화에서나 자주 나오는 사고뭉치 무술소년 역을 잘 해냈다. 이 당시 얼굴을 봐도 빼어난 무술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마스크가 크게 어필했다.
  • 그런데 홍콩에 진출한 이후 과거 이소룡마냥 과묵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엔 무술 배우가 아닌 정극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으로 액션영화 일변도였던 노선을 역사극 계통으로 바꿨다. 선한 이미지를 버리고 악하고 독한 배역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영화 《명장》(원제 《투명장》)에선 야망을 위해 인륜도 져버리는 맥베드형 인물로 탈바꿈했다. 북경어 더빙으론 잘 모르지만 실제 목소리 자체가 독한 편인데, 그 목소리가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지도 모른다.
  • 1989년 중국을 무단으로 떠나 한동안 무국적자로 지내다가 2003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2009년에 다시 국적을 싱가포르로 변경하였다. 이런 복잡한 국적 때문에 중국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 싱가포르도 인구 중 70% 가량이 이연걸과 똑같은 한족 화교들이 대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2021년 9월 중국 당국(국가광전총국)에서 국적제한령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대만언론을 통해 나오는데, 대만언론들의 대륙소식은 마치 한국언론의 북한 소식처럼 부정확한 것이 대부분이라 두고 봐야 알 듯.
  •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황비홍으로 분장하고 나온 이경규가 무대에 올라와서 엉터리 중국어를 구사하며 대드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그걸 보던 이연걸이 "지금 일부러 웃기게 움직이고 있지만 저 분은 무술을 배운 사람이다. 몸에 벤 보법에서 티가 난다."이라고 말했던 일화가 있다. 괜히 공인 쿵후 4단이며 무달 형님 소리를 듣겠는가. 지금이야 이경규는 그저 배나온 아저씨지만 실제 그는 부산의 우슈 관원 1호로 젊은 시절 다년간 우슈를 수련했다. 우슈 사범들이 이경규에게 따로 인사를 할 정도라고. 그 당시 이연걸은 영화 <정무영웅>(이소룡 주연인 <정무문>의 리메이크 작) 홍보차 출연했었다. 특이한 점은 그 당시 홍보차 나온 프로그램에서 시연한 무술이 팔극권이었다(영화상에선 미종예로 표현했으나, 대팔극 투로). 이경규는 코믹하게 무술 동작을 취했으나 몸에 익은 동작을 감추는 건 쉽지 않고 프로의 눈은 못 속인다.
  • 두 번 결혼해서 네 딸을 두고 있는 딸부자 양반이다. 1987년에 동료배우 황추연(黄秋燕)과 결혼하여 이사(李思), 이태밀(李苔蜜) 두 딸을 얻었지만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1988 용재천애에서 만난 여배우 리지(利智)와 만나게 되고 10여년간의 구애 끝에 1999년에 결혼하여 두 딸이 태어났다. 연상녀를 좋아하는 듯, 와이프 모두 두 살 연상이다.
  • MBC 서프라이즈가 주장한 것에 의하면, 원래 육상부를 하고 싶었으나 등록이 잘못되어 무술 쪽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잘못 들어간 부에서 왕따를 당했지만 선생님의 설득으로 노력은 해보았다고. 그렇게 그는 엘리트가 되었다.
  • 키가 168cm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작은 듯. 165cm 정도로 추정된다.
  • 나이가 들어갔음에도 실력은 녹슬지 않았는데,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참혹한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도 가족과 이웃들을 직접 구출해서 돌아와 놀라게 했다. 2010년 4월 18일 중국 칭하이 지진 참사 현장에 도착해 구호활동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고산병에 걸려서 중도에 내려와야 했다. 기사
  • 은근히 오덕끼가 있어서 울트라맨 인형을 모으는 게 취미라고 한다. TV 인터뷰나 집안 공개 때 몇번 언급했다.
  • 의외로 일본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데, 일본에서는 이연걸 주연 영화 중에 개봉된 것이 몇 개 없거니와 성공작도 거의 없다. 한국에선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 등에서 질리게 틀어준 《태극권》은 아예 일본 개봉 및 정식 출시도 하지않아 일본인들 대부분은 모른다. 그나마 개봉된 작품들도 대부분 이연걸이 할리우드 진출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다. 성룡같은 배우는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도 초히트를 치고 한때 붐까지 일었지만, 우리가 몇십 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이연걸을 일본인들은 주로 2000년대 이후 작품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만화 등에서 성룡과 이소룡 패러디는 많지만 이연걸 패러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그러한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19세 때 영화 '소림사' 홍보차 일본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방송 유투브 링크. 소림사가 일본 개봉 당시 흥행 10위 안에 들 정도로 대박을 거두긴 했지만 하도 오래 전의 일인지라 일본에서는 잘 기억되지 않는다.
  • 이연걸에게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의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었지만, 조연이었기 때문에 거절하고 대신 더 원의 주연을 맡았다는 얘기가 있다. 매트릭스 2의 배역은 오라클의 보디가드인 세라프였는데, 결국 예성(지금은 본명인 '추조룡(Collins Chou)'으로 불림)에게 배역이 돌아갔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촬영 자체는 3개월이었지만 촬영팀과 9개월을 함께하며 자신의 모든 무술 동작을 디지털 자료로 보관한다는 촬영 조건에 동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이어 말하기를 자신들 무술가들은 평생에 걸쳐 수련하고 발전해오는데 그것들이 모두 저장되어서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고 또 재사용된다는 조건은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 명장(원제: 투명장)을 촬영하면서 이연걸이 문맹이란 보도가 나왔는데 함께 출연한 유덕화는 이를 부인했다.
  • 같은 무술의 스승과 제자로 번갈아 출연했다. <소림오조>에서 홍가권의 창시자 홍희관을 맡더니 <방세옥>서 (홍희관의 사제였다는)방세옥 역, <황비홍>서는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간 제자 황비홍 역. 태극권에서 무당태극권의 창시자(물론 야사일 뿐)인 장삼풍 역, 의천도룡기에서는 장삼풍의 제자 장무기 역. 무인 곽원갑에서 정무문 설립자 곽원갑 역, 정무문에서 곽원갑의 제자 진진 역 등...
  • 많은 액션 스타들의 경우 작품 내에서 상의탈의하거나 아예 대놓고 옷이 찢어지는 연출로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연걸은 초기작인 소림사를 제외하면 작품에서 절대 상의탈의하지 않는다. 특히 정무문의 경우 이소룡, 견자단 등이 상의탈의한 채 액션을 펼치는데 반해 이연걸은 액션씬에서조차 아주 단정한 차림으로 나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몸에 문신을 새겨서 그렇다는 등의 여러 루머가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 영화 《익스펜더블》에서도 건재한 액션을 보여주었다...만 작중 취급이 매우 안습하다는 평가다. 1편은 근접전 전문가라면서 저격수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익스펜더블 2》에선 초반에 맹활약하는데 그 이후에는 이탈해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1에선 중간보스와 싸워서 일방적으로 우세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거기다가 킬수는 근접전이 아니라 수류탄으로 죽인 게 더 많다. 그리고 3편에서도 비중이 2편과 비슷한 정도로 적었는데, 앞에서 설명된 갑상선 질환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 때문인 듯하다.
  • 익스펜더블 2에서 본인의 대역 스턴트 배우가 폭발신을 찍다 사고로 사망한 것에 대해 비밀리에 유가족에게 한화로 환산 시 8억 4천만 원 액수의 돈을 전달했다고 한다.
  • 온라인 게임인 구음전경 PVP 대회 현장을 찾은 이연걸은 e스포츠에 대한 개념있는 칭찬들을 해줘 게임팬들의 호감을 샀다.
  • 영화 포비든 킹덤 홍보 당시 국내 개봉을 맞이하여 성룡과 함께 연예가중계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리포터가 "두 분 다 무술 배우로서 최고로 쳐주는 분들인데 실제로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나?"라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에 잠시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연걸이 재빨리 "성룡 형님이 형님이니 아마 저한테 양보해서 져주실 것 같다."며 농담하며 선수를 쳐버렸다. '이 형님이 대인배셔서 져주실 거임' 이라면서 치켜세워 주며 한 말이다 보니 성룡은 뭐라고 대꾸할 거리도 생각이 안 나고 해서 그냥 같이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넘어갔다.
  • 견자단이 연기했던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치루트 임웨 역에 캐스팅 될 뻔 하였다.(이연걸은 1000만 달러의 출연료를 요구하여 캐스팅이 무산되었고, 400만 달러의 출연료로 견자단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문전사급의 동안의 소유자였다.키아누 리브스:?? 하지만 어리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이 악역 연기를 할 때는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미이라(영화 시리즈) 3탄에서 황제(미이라 시리즈)역으로 출연했을 때 실제로는 자기보다 겨우 1살 많은 양자경에게 첫눈에 반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연걸이 너무 동안이다 보니 일부 네티즌은 양자경이 그의 이모뻘로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을 지경. 덕분에 저 황제는 무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도 있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에 많게는 한해 3-4편씩 워낙 다작을 한지라 그 후유증이 2010년대 나타나고 있다. 위의 동안은 2012년까지의 모습이고, 안타깝게도 쉰 쯤 되자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걸려 치료하는 과정에서 노화가 진행되었고, 설상가상 척추부상까지 당해 살이 많이 빠져서 여러 팬들이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장박동을 조절해야 하는 병이기 때문에 의사가 운동도 못 하게 했다고. 뿐만 아니라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영향으로 안와감압술까지 받은 상황이다.
  • 갑상선 질환의 후유증 때문에 급노화가 된 모습을 자주 보여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원래부터 호르몬질환에 걸리면 외모의 급노화는 자주 온다. 갑상선 호르몬이 너무 많이 분비되어 급격한 노화가 왔으며, 여기에 액션 촬영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50대에도 30대로 보이는 동안의 소유자였는데 50대 중반부터 갑자기 노화가 와서 70대로 보이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모습도 티베트의 라싸의 한 티베트 사찰을 방문했을 때 찍힌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건강한 사진을 올리고 사진이 잘못 찍힌 것이라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하였다. 친구인 견자단이 지금까지도 건강한 모습과 10년 전과 다름없는 동안을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2017년에는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공수도(功守道)라는 태극권 홍보용 단편영화에 출연했는데 많이 늙긴 했지만 아직 정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 부상 누적으로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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