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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프로필/마리텔 무편집/마리텔 FULL/리즈 더쿠/SELLY/탈모약/나이/프로필 -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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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안정환
安貞桓 | Ahn Jung Hwan
출생
1976년 1월 27일 (46세)
경기도 파주군 (現 경기도 파주시)
국적
대한민국
신체
178cm, 85kg, AB형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해설위원, 방송인, 사업가
학력
서울대림초등학교 (졸업)
남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아주대학교 (경영학 / 학사)
종교
개신교
프로 입단
1998년 대우 로얄즈
주발
양발
등번호
8번, 9번, 10번, 11번, 19번,
26번, 30번, 36번
소속 클럽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 (1998~2002)
AC 페루자 (2000~2002 / 임대)
시미즈 S펄스 (2002~2004)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4~2005)
FC 메스 (2005~2006)
MSV 뒤스부르크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부산 아이파크 (2008)
다롄 스더 (2009~2011)
국가대표
71경기 17골 (대한민국 / 2001~201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해설위원
/ (2014년~ )
소속
리혜원 라이프스타일컴퍼니 (대표이사)
MCP 엔터테인먼트
부모
어머니 안금향
친척
사촌누나 안희정
배우자
이혜원(2001년 결혼 ~ 현재)
자녀
안리원(2004년 5월 3일생)
아들 안리환(2008년 12월 25일생)
부모
어머니 안금향
친척
사촌누나 안희정
배우자
이혜원(2001년 결혼 ~ 현재)
자녀
안리원(2004년 5월 3일생)
아들 안리환(2008년 12월 25일생)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이자 現 축구 해설위원, 방송인이다.
현역 시절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중앙에서 좌우로 열어주는 정확한 패스, 반 박자 빠르고 정교한 슈팅으로 데뷔 때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여 판타지스타라고 불리는 선수였다.
이러한 활약과 더불어 도저히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까지 갖춰 수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때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선 1차전에서 박지성이 1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었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2차전과 3차전에서 손흥민이 2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평생 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고 여겨지는 몇 안 되는 선수가 되었다.
더불어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을 상대로 A매치 득점에 성공했다.
.

 

2. 생애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을 때 오렌지를 처음 먹어봤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외가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가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건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얘기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한다.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한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진다.
한번은 축구부원 수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세 시간 동안이나 구타했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한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는데 당시 목동역 건설이 이뤄질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한번은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에 진학한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된다.

 

3. 축구인 경력

 

안정환
(安貞桓, Ahn Jung-Hwan)
포지션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번호
19번, 8번, 9번, 10번, 26번,
30번, 36번
소속
선수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 (1998년 ~ 2002년)
AC 페루자 (2000년~ 2002년 / 임대)
시미즈 S펄스 (2002년 ~ 2003년)
요코하마 마리노스 (2004년 ~ 2005년)
FC 메스 (2005년 ~ 2006년)
MSV 뒤스부르크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년)
부산 아이파크 (2008년)
다롄 스더 (2009년 ~ 2011년)
해설위원
MBC (2014년 ~)
국가대표
(1997년 ~ 2010년)
71경기 17골

 


3.1. 지도자 경력

 

2014년 기사에 따르면 파주 NFC에서 이운재와 함께 A급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A급 지도자 과정을 거치면 성인 팀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조만간 감독 안정환을 볼 수 있을 듯 싶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생방송 중, 5년만에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사실을 공개했다.
조진호 감독이 대전 시티즌 감독직을 사임하고 신태용호의 최문식 수석코치가 공식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국대 수석코치직을 하차하게 되었다.
이 빈 자리를 안정환이 대신 맡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으나 대한축구협회에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일축하였고, 전경준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코치가 이 빈 자리를 맡게 되었다.
축구 선수들의 재기를 다룬 KBS 2TV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절친 이을용과 함께 감독을 맡게 되었다.
2,300명이 각축을 벌여 1차 테스트에 500명이 통과해 22명의 선수들이 최종 선발되었다.
안정환은 "이 친구들을 데리고 웃기고 싶지 않다.
힘든 도전을 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을 뿐"이라고 이야기 하며 진지하게 임할 것을 밝혔다.
안정환이 청춘FC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그리고 진짜 진지하게 참가자들을 다그치며 지도하기 시작했다.
어슬렁거리며 뛰는 이들에게는 짐 싸줄 테니 그대로 집으로 뛰어가라고 말하는가 하면, 벨기에 전지 훈련을 갔을 때 들떠서 작업을 하거나 하라는 휴식은 안 하고 게임하는 선수들을 호되게 꾸짖기도 했다.
다만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선수의 인생을 좌우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공부도 더 해서 하겠다는고 한다.
부산 아이파크가 윤성효 감독을 경질하고 새 감독을 물색할 당시 안정환에게 제의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위에서 말했듯이 아직 프로팀 감독을 맡을 자격이 안 되므로 그냥 설에 불과할 뿐이었다.
2016년 11월 14일, 정정용 감독과 더불어 U-20 대표팀 감독 후보로 올랐다.
다만, 코치 경력은 초짜나 다름없으니 그냥 루머로 밝혀졌다.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을 때 P급도 준비할 거라고 밝혔다.
JTBC의 뭉쳐야 찬다에서 조기축구팀 감독을 맡았다.
이 팀의 멤버는 이만기, 허재, 심권호, 양준혁, 여홍철, 이봉주, 진종오, 김동현 등 스포츠계 전설들.
문제는 다들 축알못 아재들이라 첫경기에서 11:0의 대패를 당하며 안정환 감독의 속을 뻥뻥 터뜨려놨다.
그래도 오합지졸에 축구에 축자도 모르는 선수들을 가지고 점차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이며 1년이 지난 지금은 왠만한 조기축구팀 실력을 가진 팀으로 변모해 비록 예능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뭉쳐야 찬다.
대화의 희열에서 밝힌 야사에 따르면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홍명보가 안정환을 코칭스태프에 합류 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의 졸전과 땅보 사태가 겹치며 홍명보는 국대 감독에서 해임된다.
이때 홍명보가 안정환을 술자리에서 만나 아쉬움을 토로하며 "대한민국이 날 버렸다"고 하자 안정환은 "전술을 좀 잘쓰지 그랬어"라며 뼈를 때렸다.
.

 

4. 안정환에 대한 말, 말, 말

 

이탈리아 골대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를 왜 빼겠는가?안정환은 여러모로 호마리우를 닮았다.
건드리면 반응한다.
나는 그런 선수를 좋아한다.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정환은 마치 5단 기어와 같은 선수이다.
거스 히딩크안정환은 폴란드 수비진을 마치 뒷마당에서 어린 동생 데리고 노는 듯했다.
플라넷 풋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직후 인터뷰)정말 아름답다.
안느는 아름다운 플레이어다.
BBC (우디네세 칼초와의 경기에서 혼자 두 골을 몰아치는 안정환의 경기해설 중에서)마치 필리포 인자기와 같았다.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안정환은 기술적인 면에서 페루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당시 AC 페루자 칼초 사무국장 알렉산드로 가우치한국 선수들이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특히 미드필드와 공격 쪽에 좋은 선수가 많은 것 같다.
안(안정환)은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선수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前 스페인 국가대표안느는 우리에게 후이 코스타를 대신할 선수다.
안느가 유럽 출신이였다면 그는 후이 코스타처럼 되었을 것이다.
당시 ACF 피오렌티나 구단주 디에고 델라 벨레내가 인테르의 첫 훈련에 들어갔을 때 인테르의 코치진이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은, 내가 아니라 전 동료 안느의 계약사항이었다.
나 또한 그와 플레이하길 바라고 있다.
마르코 마테라치안느는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를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많은 기회를 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세르세 코스미 (당시 페루자 감독)왜 한국의 부산 아이콘스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그의 완전 이적을 두 번이나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가 완전한 페루자의 일원이 된다면 난 주저없이 그를 주전으로 활용하겠다.
세르세 코스미 (당시 페루자 감독)안정환이 방출된 후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영리한 선수였고, 우리는 구단주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상대팀 선수로서 우리를 상대로 중요한 골을 넣었지만 그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
수줍음이 많은 선수였지만, 우리는 안정환을 훌륭한 축구선수로 생각했다.
파비오 그로소페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insane) 의식이 지배하는 팀이다.
분명히 그런 부분이 안정환을 궁지로 내몰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에서 온 유일한 세리에 A 선수 꼬레아노 안을 훌륭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토토 스포르트지, 비토리오 오레시아 기자방한기간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코리아인들이 자신의 판타지스타인 안느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안느는 유럽에서 파울레타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의 화려한 커리어가 보이지 않는가? 아무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 골을 넣을 수는 없다.
HELDER Marino Rodrigues Cristovao 파리 생제르맹 FC 수비수안의 플레이를 보면 그의 출신지역이 아시아인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 아시아에서 그런 유연한 몸놀림을 슈팅력을 보일 수 있는 스트라이커는 없을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수준 급에 속하는 유연함과 슈팅력이다.
볼을 조금 끄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점들이 충분히 커버해주고 노력한다면 고쳐질것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골들은 그가 한국축구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는 아마 다음 월드컵에서도 한국 대표 스트라이커로 뛰게 될 것이다.
그때는 과연 안이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가 된다.
만약 2006년 독일 월드컵 후에도 이러한 글을 부탁받는다면 그를 순위에 올리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요한 크루이프안정환의 슈팅은 정상적인 궤도보다 15도 정도 오른쪽을 향해 골키퍼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태리 RAI 스포츠 TV 해설자안은 헤더를 전혀 하지 않았던 선수에서 1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멋진 헤더 골을 만드는 선수가 되었다.
ESPN 유럽리그 이 주의 골 중에서.
그는 그의 능력에 비해 좋은 팀을 만나지 못했다.
루이 사하테크니션 그 중에 판타지스타 성향을 가진 선수를 여럿 봤다.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팀 플레이에 맞춰지는 단순한 플레이에는 호흡을 맞출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판타지스타는 감독이 활용할 줄 모르면 미움을 받거나,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과 경기를 했을 때 AC 페루자에서 뛰고 있다는 안느를 봤다.
우리 팀의 델피에로와 무척 닮았더라.
그러나 저 선수를 다룰 만한 감독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반니 트라파토니스코틀랜드전에서 인상 깊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치오를 맡았을 때 만났던 선수다.
안정환은 유럽 수준에 근접한 선수로, 앞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스벤예란 에릭손 前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년 방한 당시)스코틀랜드전에서 두 골을 넣었던 긴 머리 선수가 인상깊었다.
그의 두 번째 슛인 로빙슛은 정말 일품이었다.
호나우두 前 브라질 국가대표 안정환을 위해 350만 불의 이적료를 준비했고, 마지막까지 워크퍼밋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안정환이 드와이트 요크와 함께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길 원했는데 무척이나 아쉽게 됐다.
블랙번 로버스 FC 관계자 (워크퍼밋 최종 반려 이후)안느! 우리에게 와라! 우리에겐 판타지스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당신을 열광적으로 맞아줄 서포터가 있다! 라치오로 간다면 너는 인종차별에 울어버릴 거다!ACF 피오렌티나 서포터즈 걸개 현수막그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주전을 확보했다.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 가능성이 많다.
안느는 지난 1년 동안 발전속도가 놀라운 선수이다.
AC 페루자 칼초 동료, 브라질 前 국가대표 제 마리아 선수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내한 당시) "안정환은 정말 헌신적인 선수다.
팀의 공수 밸런스와 볼흐름을 위해 경기내내 정말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포르투갈전 이후)"안정환은 내가 본 역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요한 크루이프를 보는 듯했다.
"펠레"안정환의 기술을 흉내내고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테크닉면에서는 완벽한 선수였다.
"박지성"초등학교 4학년때 했었던 한일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선수로서 꿈을 키웠고 어릴적 나의 영웅이었다.
"손흥민"축구선수로서 동작할때 선이 정말 아름답다.
경기장에서 몇 번이고 넋을 놓고 봤었다.
"이영표"안정환은 전형적인 판타지스타 성향의 선수이다.
내게 기회가 있었다면 난 그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다음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정환을 어떻게 활용하는 데에 한국의 월드컵 운명이 달려있을 것이다.
그는 마치 후이 코스타와 같은 플레이를 할 줄 안다.
나에게 가장 욕심나는 한국 선수를 뽑으라면 그건 단연 안정환과 이관우다.
그들이 포르투 출신이라면 이미 그들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움베르토 코엘류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안정환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심지어 같은 위치에서 뛰는 델피에로도 원톱으로는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쓰리톱을 사용한다면 조재진과 이동국을 최전방에 포진하고 차라리 중앙의 안정환을 쳐진 스트라이커로 놓겠다.
박지성과 안정환 중 프리롤을 선택하라면 나는 안정환을 선택하겠다.
박지성은 세계적인 선수지만 안정환만큼 아름다운 플레이를 할 수는 없다.
"움베르토 코엘류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한국과의 경기(5월 31일)에서 보여준 안정환의 플레이가 아직도 머리에 많이 남아 있다.
안정환은 후반 교체 투입된 뒤 짧은 시간을 뛰면서도 찬스가 올 때마다 과감하게 슛을 날리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안정환같은 적극적인 마인드 없이는 패배가 되풀이 될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그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 지쿠 前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동아시안컵 당시) -"정환이는 팀 기여도가 높은 선수이다.
우리가 월드컵에서 이기려면 안정환이 필요하다.
"홍명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종엔트리 발표에 관한 질문에서"어차피 승부를 거는 상황이라면 안정환이다.
" 딕 아드보카트 2006 FIFA 월드컵 前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현재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정환이 기억에 남는다.
안정환의 테크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개인 드리블 능력과 슈팅능력은 그 당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테크닉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티에리 앙리 프랑스 前 국가대표 (EPL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 누가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한국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안정환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안정환의 스타일은 한국을 대표했던 스트라이커 차범근, 황선홍 등과 다르다.
'새로운 스타일'이란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치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와 달리 현란한 기술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플레이메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이는 형태를 말한다.
안정환이 국제무대에서 많은 경기(32경기 8득점)를 뛰지는 않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프로 데뷔 2년차인 1999년 21골 7도움으로 MVP에 선정됐고, 세리에 A의 페루자로 이적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결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 AFC 풋볼 아시아 BREAKING THE MOULD (형식을 파괴하라) 중에서.
"솔직히 안정환이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수준으로 경기할 줄은 몰랐다.
나는 그의 주목할 만한 기술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그것을 표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 페루지아에서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안정환, 다시는 돌아오지마!" 사람들은 마치 배신자 취급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 훌륭한 골을 뽑아냈고 최선을 다했다.
" 지오반니 테데스코 (2002년 당시 AC 페루자 칼초 주장)"같은 아시아권에서의 플레이어를 떠올리면 한국의 안정환이 인상에 남는다.
물론 그 역시 내가 목표로 삼는 선수는 아니다.
단, 그가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다.
" 알리 카리미 이란 前 국가대표"안정환을 주목해서 봤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이탈리아에 패배를 안겼다고 해서 소속팀 페루자가 결국 그를 이적시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말 페루자는 어리석은(stupid) 짓을 했다.
현재 나카타, 나카무라 등 기술 좋은 일본 선수들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안정환은 기술과 체력을 함께 겸비한 훌륭한 선수였다.
"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지, 알베르토 세루티 기자"안정환은 키가 크지는 않지만, 공중볼 장악에 뛰어나고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어쩌면 하츠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레인저스 사령탑을 맡았을 때는 그를 몰랐지만, 만약 알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계약을 했을 것이다.
" 딕 아드보카트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사람들은 안정환에게 골 결정력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언제나 결승골의 주인공은 안정환이다.
"박항서"한국의 미디어는 안정환의 부드러운 면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강한 선수이다.
나는 그의 강한 면을 좋아한다.
"라디보예 마니치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동료)"안정환은 영웅의 기질을 가진 선수이다.
그의 한 골 한 골은 각본이 있는 드라마와 같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진다.
" 일본의 한 축구전문지"어느 나라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판타지스타를 소유하고도 활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그를 평범한 선수로 만들고 있다.
" 휴 사토시"아시아 선수 중에 정말 이런 선수가 있었나? 그는 나에게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중압감을 줬다.
나는 경기 내내 마치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분명히 델피에로는 우리팀인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 릴리앙 튀랑"지금 생각해도 안정환만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 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처럼 조기 유학도 없었고, 제대로 축구를 배울 시스템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안정환은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노력도 많이 했지만 정말 천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안정환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축구를 제대로 배웠다면,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됐을 것이다.
"부산 대우 로얄즈 사무국장 김석현"안정환은 지난 66년 북한의 박두익에 이어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BBC이 문단은 2018년 10월 6일 방송된 '대화의 희열' 안정환 편에서 진행자 유희열이 핸드폰으로 나무위키를 참고하며 '안정환에 대한 코멘터리'를 소개하는 중 TV 방송에 언급되기도 했다.

 

5. 멘탈王 & 대인배

 

  • 1999년 부산 대우와 계약 조건에 명시된 (리그 MVP 먹으면 유럽 진출을 위해 전적으로 돕는다는 조항) 약속된 조항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가면서 라리가 진출을 (라싱 데 산탄데르) 막고, 팬들과 언론에서도 현대산업개발을 크게 비판했지만, 잠을 못 자서 이틀 정도 휴가를 냈을 뿐, 다시 훈련장에 복귀, 꾹 참고 한 시즌을 더 뛰었다.
  • 페루자가 2001/2002 두 번째 시즌에 주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6개월치 3억 4천이 넘게 밀렸는데도 아무 내색도 안 하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국제소송 때 가서야 밝혀졌다.
  • 국제소송크리 맞고 안종복 & 현대산업개발에 처절하게 배신당하고 혼자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안종복의 몹쓸 짓으로 인한 FIFA의 판결로 안정환은 2002년 7월 21일자로 개인 빚만 35억이라는 빚더미에 올랐는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어느 인터뷰에서도 당시 현대산업개발 수뇌부들이나 안종복에 대한 언급을 일절 안 하고 자제하고 있다.
  • 블랙번 로버스에 못 가고 35억이나 빚진 상태로 일본 연예기획사이던 프로페셔널 매니지먼트 주식회사(현:저팬 스포츠 마켓팅 주식회사)에 팔려가 3년 동안 착실하게 조용히 노예 생활을 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해서 연예인 스케줄을 이행했음에도 일본에서 97경기 50골이나 넣고, 심지어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우승까지 시켰다. 참고로 이 때 블랙번은 안정환을 팀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는 물론이며 가족들에 대한 자료까지 모아서, 어느 지역에 집을 마련해줄 것이며 근방의 마트나 학교 등 시설까지 상세히 설명해주는 등 영국에서의 생활 패턴까지 짜서 안정환과 접촉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 나고야 그램퍼스에서의 연봉 29억 제의를 단념하고, 30살이 넘어서 연봉 8억원에 프랑스 하위권 팀인 FC 메스로 유럽에 복귀했다. 우디네세 칼초의 코스미 감독의 러브콜에도 우디네세 & 리보르노와 협상 차 이탈리아에 가있을 때, 직접 국경을 넘어 8시간 운전해온 메스 구단주의 정성에 감동먹고 FC 메스로 갔다.
  • 프랑스 리그앙 시절 당시 에이전트에 2억 원 대 사기를 당하고도, 6개월을 참고 살다가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내색하지 않았다. 결국 참고 참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국내로 돌아가 조용히 소송을 제기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군 경기 당시 FC 서울 팬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정작 본인은 욕도 안 하고, 관중석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천만원 벌금을 냈다. 오히려 안정환이 사건 당일 서울팬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일명 권오크 사건으로, 안정환은 욕 한마디도 안 했는데 언론에서 삐처리하면서 욕한 거처럼 포장한, K리그 대표 비하사건 중 하나로 아주 악질적인 언론 왜곡이다. 엄연히 이 사건은 안정환 부인을 모욕한 팬의 잘못이다. 신해철은 이 사건에 대해서 가족을 생각하는 안정환의 행동을 매우 극찬했다.
  • 다롄 스더에서 인품의 탁월함을 드러냈다. 연봉의 일부를 고아 및 어린이 병원에 기부하고, 매달 한 번씩 찾아가서 봉사도 했는데 그것이 팀 차원에서의 행동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구단 용품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한테 공짜로 뿌리기도 했는데 비용은 안정환 자신의 사비로 충당했다고 하며, 동기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라고 한다.
  • 은퇴 이후 K리그 홍보대사 지원금은 0원. 모든 것을 사비와 개인 운전으로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고 상주에 갔을 때는 상주 스탭 및 팬들과 저녁 늦게까지 막걸리 파티를 하고 상주시내 모텔 일반실에서 하루 묵고 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본인이 즐기기에 가능한 것이다.
  • 홍보대사 이후에도 내셔널리그까지 홍보하기 위해 지방 이곳저곳으로 직접 운전해서 다닌다고 한다.

 


6. 외모

 

선수 시절 안정환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어마어마하게 수려한 외모였다.
대표 별명인 테리우스 역시 이런 스타성을 반영한 것이다.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곱상하고 조각 같은 꽃미남 비주얼 덕분에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할 때가 많았는 데 이천수는 안정환을 처음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상이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으며 이영표 역시 안정환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그 잘생긴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을 회상할때 외모가 아름다웠다는 증언을 했다.
전성기 시절 안정환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레전드급으로 한국 운동선수를 전부 통틀어서 가장 잘생긴 선수였다는 것에 토를 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한국에도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미남 운동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정환을 능가하는 미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예능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그냥 미중년 상의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으나 현역 선수 시절에는 연예인들마저 씹어 먹어버리는 미모를 자랑했다.
리즈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들인 현빈, 김재원, 한고은 등 수많은 인기 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다.
그리고 그런 연예인들과 비교하여 밀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잘생긴 외모를 보여주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셋이 일본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적어도 그 방송에서만큼은 안정환이 둘을 압도하는 외모 클래스를 보여줬다.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사진이다.
4분 30초부터 그렇게 의류, 화장품, 향수, 스포츠 용품 등 안 찍어본 cf가 없었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함께 찍은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이미 전설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얼굴이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각종 해외 투표에서 외모로 최상위권을 차지한 설문조사가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칼같은 미남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정반대여서 옛날 말투, 아재개그를 자주 시전했다고 하며 굉장히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팀 후배선수가 외모와 실력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다가 아침식사때 안정환이 숭늉을 마시면서 "야, 누룽지가 들 우러났어.
이거" 하는것을 보고 "저 선배도 보통 사람같은 면모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현역 은퇴 후 쌍꺼풀선이 생겼는데 본인 말로는 살이 쪄서 생긴 거라고 한다.
살찌면 쌍꺼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이런 잘생긴 외모는 자녀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들 리환 역시 잘생겼다.

 

7.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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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에서 헤더로만 두 골을 넣어 헤더 잘 하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헤더를 잘 못한다고 한다.
  • 한국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꼽힌다. 축구 실력은 뛰어나서 더 높고 화려한 무대에서 뛸 수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이해 관계와 상황이 겹치며 이후 커리어가 발목을 잡힌 비운의 선수다.
  • 유럽 진출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가 선수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의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적응력이 좋지 못했던 것이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블랙번 로버스에 이적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계약 문제로 고소미를 먹고 패소하여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담감을 받아서였다. 일본 생활이 끝난 이후 바로 말도 안 되는 유럽리그 하위권 팀에라도 문을 두드리고, 그것마저도 실패하여 무적으로 남았을 정도로 유럽에 미련이 큰 선수가 뭣하러 일본에 오래 머물렀을까? 진짜로 다른 거 없고 이 문제 때문에 빚 갚을 돈 벌려고 일본 소속사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본인도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 안정환은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골을 넣어주는 영웅 본능이 있다는 인식이 있다. 보통 팬들이 기억하는 국가대표 안정환은 2002년 미국전 동점골, 이탈리아전 결승골, 2006년 토고전 골 등 중요한 경기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 1998년 9월 18일자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온 적이 있다. 당시 그룹 베이비 블루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안정환의 첫사랑이었다. 이 방송에서 베이비 블루 멤버(이혜민, 이상순, 황선영)가 나왔다.
  • 잘생긴 외모 덕분에 1999년 밴드 야다의 곡 '이미 슬픈 사랑'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 황선홍 이후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들의 숙명이었던 폭풍까임에서 그나마 열외가 되었던 유일한 선수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해준 임팩트가 먹어준 게 가장 컸다. 가장 욕먹기 쉬운 약체팀과의 경기에 상대적으로 적게 출장한 것도 한몫했다. 13년이라는 축구 인생과 그동안 대표팀에서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70경기라는 A매치 출전 횟수는 그다지 많은 출장 횟수라고 보기 어렵다. 당장 박지성과 이영표가 비슷한 시기에 뛰었지만 둘 다 100경기 넘게 출전했고, 이래저래 많은 잡음으로 인해 2000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했지만 2008년 이후 국대에 전혀 뽑히지 못한 이천수가 79경기다. 리그 경기로 욕하려고 해도 팀이 워낙 막장이라 욕을 못하거나, 중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중국 슈퍼 리그, 일본 J리그에서 활동했었다.
  • 트로이카의 한 축이었던 이동국과는 묘하게 대칭되는 선수 생활을 했다. 국대에서 누구보다 빛났지만 그로 인해 클럽 커리어 자체가 완전히 꼬여 버린 안정환, 반대로 소속 클럽 팀에선 항상 정상급 위치에서 뛰었지만 이상하게 국대만 오면 꼬여버리는 이동국. 히딩크는 자서전에서 이동국을 수비 가담과 압박, 개인 해결 능력이 아쉬워서 제외했다고 언급한 반면에 안정환을 무려 호마리우나 피에르 판호이동크에 견주며 그를 극찬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안정환이 호마리우만큼 축구를 한다는 게 아니라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히딩크는 안정환이 호마리우처럼 자극을 주면 반응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며 그것이 특급 선수들의 자질이라고 여긴다고 하는데, 반대로 이동국에겐 그런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평가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을 때에 주사를 맞으면서 뛰었다고 한다. 사실은 경기를 뛰고 싶어서 그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 2002 FIFA 한일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하고 난 지 10여 년이 흘렀을 때에 KBS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이을용으로부터 "지도 못 넣었으면서..."라는 핀잔을 들었다.
  •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을 때 모습
  • 2006 FIFA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와중에 이동국과 볼 트래핑 연습을 하던 와중에 안정환이 실수하자 이동국이 몹시 화난 표정으로 "아유! 진짜!!!"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MBC 스포츠 뉴스의 보도 장면에 나와서 많은 국민들에게 웃음을 줬다. 아이스크림 내기라도 했나? 그랬던 이 둘은 15년 후 뭉쳐야 쏜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단 축구가 아닌 농구로.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직전에 박주호와 잠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박주호 나이를 물어보고 "생각보다 많구나"라며 놀렸고, 군문제로 고심 중인 박주호에게 자기도 군대 갔다 왔다고 겁낼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4주 기초훈련만 받았다며 자랑하듯이 놀렸다. 이때 박주호의 표정은 참으로 난감하고 복잡했지만 박주호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특례를 받았으니 안정환이 놀린 것도 나름 추억거리가 될 듯 하다.
  • 박지성, 손흥민과 함께 타임지 표지모델로 임명된 3명의 축구선수 중 1명이다.
  • 을용타 이을용과는 동갑내기로 상당히 친하고, 선배 최용수와는 티키타카하며 서로를 뜯고 뜯기는 애증의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는 안정환이 생애 처음 고정 MC로 프로그램을 맡았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최용수가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들의 관계가 알려졌다. 후배쪽으로는 김남일과 친하다고 한다.
  • 농구쪽으로는 의외로 현주엽과 상당히 친한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만나고 나서부터 친해졌다고 한다.
  • 그동안 방송인으로서 출연한 모습들에 따르면, 수준급 요리실력에 덧붙여 일손까지 야무진 듯하다. 은근히 손재주가 있는 듯. 안싸우면 다행이야에 따르면 집도 뚝딱 짓는다.
  • 가족으로 세 살 연하의 아내 이혜원과 딸 안리원, 아들 안리환이 있다. 아내인 이혜원과의 연애 스토리가 꽤 재미있다. 안정환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대뜸 남자친구가 있느냐 물었고, 없다는 대답을 듣자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약속을 잡은 뒤 소개팅 자리에 자신이 직접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와 사귀게 되었으나 아내는 당시 서울에 거주하며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그때 안정환이 뛰던 팀의 연고지는 부산이었던 터라 시즌 중엔 자주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한번은 안정환이 데이트를 하다가 헤어지기 싫어서 팀 훈련까지 불참하는 사고를 쳤는데, 그 때문에 구단에 벌금도 적잖게 내고 선배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혼이 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정환은 아내를 자주 못 만나다 보니 그녀에게 신용카드를 선물하며 자신이 없을 때 이걸로 맛있는 걸 많이 사 먹으라고 했었는데, 아내는 그 카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돌려줬다고 한다. 다만 만약에 카드 요금 청구서가 자기 연봉만큼 나왔었다면 법정까지 갔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다.
  • 은퇴 후 아내 이혜원의 사업을 도우면서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으로 영입되었다. 물론 정식 직원은 아니고 보통 말하는 홍보대사 개념인데 그보다 훨씬 더 열심히 뛰겠다고 홍보팀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전국의 K리그 팀 경기장을 돌며 홍보를 하였고, 2002 월드컵 10주년 기념 K리그 올스타전을 성공적으로 홍보하고 개최하며 이번 시즌 K리그 최고의 영입은 안정환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이후로도 K리그를 위해 꾸준히 활동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은퇴한 스타 선수들이 말은 K리그를 사랑하자고 하면서 정작 행동은 보여주지 않았던 반면에, 안정환은 정말로 발로 뛰면서 K리그를 위해 일하고 있기에 팬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한편, 안정환의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 취임 얼마 후 K리그 공식 쇼핑몰이 열렸는데, 거기서 부인 이혜원이 하는 화장품도 같이 판다.
  • 히카루의 바둑의 최종보스로 등장하는 고영하의 외모 모델이다. 작가가 안정환이라고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한국의 장발 미남 축구 선수에게서 따왔다고 밝혔으며, 고영하가 등장하기 시작한게 2002년 정도인데, 당시 한국의 장발 미남 축구선수는 안정환 밖에 없다.
  • 2015년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두세 개의 팀으로부터 선수로 뛰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2016년 1월 3일 마리텔에서 직접 밝혔다.
  • 해외에서 뛰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했다. 그 당시 바조는 노장이어서 한 물 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경기를 보는 순간 왜 바조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참고로 바조는 이때 한참 회춘 모드에 돌입하는 시기였다. 다만, 바조를 기용 안 했다가 2002년에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폭망했다고 하나 어차피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 크리스티안 비에리, 필리포 인자기 등 미친 것 같은 라인업이긴 했다.
  • 인복이 없는 건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순박한 건지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했다. 부산 시절의 안종복이나 페루자의 가우치도 그렇지만,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에이전트의 일처리 솜씨 부족으로 무적 신세를 지거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파급력으로 블랙번 말고도 원하는 구단이 있었는데 주변인들의 뽐뿌질에 구태여 비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블랙번을 택하거나, 이탈리아 마피아의 협박에 완전 겁을 먹는다거나, 또 FC 메스에 이적할 당시, 이탈리아 우디네세 칼치오에서도 오퍼가 오는 등 갈 곳이 없는 게 아닌데도, 멀리서 구단주가 운전해서 왔다는 이유로 전력이 후진 FC 메스 행을 택하거나, 분데스리가가 안 맞는 걸 알면서도 곰가방이 월드컵 보내준다니까 가기 싫으면서도 독일을 가는 등 뭔가 좀 어리숙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 선수 시절에는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계속 시도하며 진화했다. 유럽에 가서 헤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헤더 기술이 확 늘은 것도 있지만 대우 로얄즈 시절에는 이영표처럼 고속 헛다리도 리그에 통용될 수준으로 썼었고, 커브를 많이 차다가 갑자기 무회전 슛을 계속 차고, 땅볼 횟수가 늘고, 슛 각도를 바꾸는 등 다채로운 시도를 했다. 헤더도 여러 각도로 시험했고 나중에는 다이빙 헤더까지 했다. 일본 시절에는 라보나 킥도 썼는데, 방송에서 본인이 말하길, 라보나 킥 관련으로 위험도가 높은 기술을 써서 감독에게 욕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안 썼다고 한다. 참고로 라보나 킥은 정확히 성공해서 골로 이어지는 데 일조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찹 비슷한 기술도 쓰는 등 시도할 수 있는 기술은 계속 시도해 본 경우인데, 참고로 어느 리그를 가든 그 리그에서 통용될 수준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역시 영혼의 기술은 백숏과 크루이프 턴, 그리고 무회전 슛. 특히 그의 전매 특허 기술인 이른바 안느턴은 펠레가 요한 크루이프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안느턴이 잘 될 때는 정말 수비수를 형이 동생 데리고 노는 수준으로 구사했다. 하지만 드리블을 하다가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라 무릎에 큰 무리가 갔기에 지금 그의 무릎 연골은 거의 없다고 한다.
  • 슛을 쏘거나 패스를 하면서 무너지는 자세가 많이 나왔다. 균형 감각이 나쁘다기보다는 중력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서 공을 차는 느낌으로, 자세가 무너져도 정확도에는 문제가 없는 걸 보면 버릇 혹은 나름대로의 연구 결과로 보인다.
  • 2016년 1월 27일, FIFA 월드컵 트위터가 그의 4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게다가 FIFA의 공식 트위터도 이 글을 리트윗했다. 이 글에는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던 순간의 사진도 함께 올라왔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20년 1월 27일에도 미국전 동점골 영상과 함께 44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 2017년 1월에는 뭉쳐야뜬다 촬영을 위해 스위스에 있는 FIFA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안내하러 온 직원이 안정환을 알아보고는 먼저 악수를 청하고, 2002 한일 월드컵 코너에 걸려있던 삽화에서는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등장했으며, 직원이 이 코너에 있는 안정환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심지어 2018년 5월에는 한 독일팬이 안정환을 알아보고는 먼저 찾아와 사진촬영을 요청하는 등, 이탈리아는 몰라도 FIFA나 타 유럽 국가에서는 그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여럿 나왔다.
  • 2021년 3월 17일, FIFA 월드컵 인스타그램이 팔로워 1천9백만(19million)명을 넘긴 기념으로 역대 월드컵에서 19번을 사용했던 선수들 중 12명이 어깨동무를 하는 뒷모습 일러스트를 올렸는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선수들 중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안정환이 꼽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리오넬 메시, 마리오 괴체, 폴 포그바, 차비 에르난데스, 윌리안, 야야 투레, 디에고 코스타, 프레디 린콘, 안정환, 유세프 엔네시리, 라힘 스털링, 세르히오 아궤로다.
  • 방송에서 "자신이 살을 안 빼는 것뿐이지, 뺀다면 금방 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하는 얘기인지라 유머 정도로 넘긴 이야기인데 화장품 광고 촬영 이후 재계약되면 다이어트를 한다고 선언했고 진짜로 화장품 광고의 재계약이 성사되자 엄청난 속도로 살을 빼서 과거의 미남 시절로 돌아갔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인 오쿠보 요시토가 제일 존경하는 선수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은퇴한 안정환의 근황을 알아보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근황을 보고 충격을 먹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 어렸을 때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던 경험 때문인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절대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하며, 지금도 외적인 요인으로 끼니를 거르게 될 경우 상당히 민감해진다고 한다. 방송에서 아내에게 밥투정을 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같이 해설을 했던 김성주는 "안정환이 밥을 굶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했는데, 안정환 왈, "어릴 때 하도 굶었기 때문에 이제 굶는 건 지긋지긋하며, 돈 벌었으면 먹는 데 써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 때문인지 안정환은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뒤로 살이 꽤 찐 모습이다. 또한 왜 살을 빼지 않냐는 질문에 남들에게 눈치를 보이지 않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했다는 증거.
  • 캐논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빵 터졌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성화 장내 봉송주자로 뛰었다. 특히 최종 봉송주자 중 유일하게 올림픽 커리어가 없는 선수인데도 안정환이 나온 것은 대한민국에서 열린 대표적 메이저 스포츠 대회 중 하나인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고 월드컵 엔트리 23인 중 올림픽 비출전자로는 가장 유명한 선수가 그이기 때문이다. 즉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을 연결시키는 핵심 고리 역할이 안정환이란 의미. 박지성도 있지만 올림픽 출전 기록이 있어서 누가 봐도 월드컵과 연계시켰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역설적으로 올림픽 커리어가 없는 안정환이 더 낫다. 여기서도 그의 대인배적인 모습이 보이는데, 원래는 최종 봉송주자로 성화대까지 뛰어올라가 김연아에게 성화봉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내정되어 새벽에 비밀 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남북 선수가 같이 올라가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안정환 입장에서는 실컷 연습한게 뻘짓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선수가 나란히 손잡고 긴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로 아래에서 혼자 지켜보는데 울컥하더라고 하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내가 올라가는 것보다 이게 더 좋은 것 같다며 그 변경에 대해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고 밝혔다.
  • 예능을 통해서도 히트를 쳤지만 그래도 본업인 축구, 그리고 해설위원의 모습과는 천지차이다. 예능에서는 웃기고 본업인 축구 해설위원으로썬 축구인이자 선배로서 강한 쓴소리를 남기는 완벽주의자다.
  • 2018년 6월 6일,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김성주보다 김정근과 함께 중계할 때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김정근이 워낙 정직한 스타일이라서 신뢰감이 있다고. 예능이니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한 얘기고 현재 MBC 중계진이라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 안정환의 현역 시절 주 스킬이 바로 수비수들을 페이크 동작으로 태클 유도해서 제치고 골을 넣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멕시코전에서 뛰었던 장현수의 태클을 태클은 무책임한 회피일 수도 있다며 꼬집어서 지적했다.
  • 방송에서 밝히길 은퇴 이후 몸 상태는 오랜 선수 생활 동안 몸을 혹사한 탓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특히 무릎의 연골은 전혀 없는 상태. 은퇴 이후 수술을 받으려고 봤더니 연골이 다 닳아서 작은 조각밖에 남지 않아있었고, 이 상태로 두면 몸의 다른 곳으로 뼛조각이 흘러가서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의사가 제거를 권유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와의 이러한 대화를 하반신 마취만 한 상태로, 자신의 무릎 뼈를 직접 보면서 주고받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물론 화장실 변기에도 오래 앉아있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 2019년 3월부터 신규 치킨 프랜차이즈의 홍보모델이 되었다. 브랜드 명이 '안정환 치킨선수'로, 이름만 보았을 때는 안정환 본인이 운영하는 브랜드로 착각되기 쉬워, 이와 관련하여 안정환이 해당 브랜드의 공동대표다, 사외이사다 하는 루머가 잠깐 있었다. 하지만 2020년 6월 28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분에서 치킨 사업가라고 밝혔고, 절친 현주엽에게 창업 조언을 해줬다.
  • 과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을 지지했으며 유세도 나왔는데 이때 허재도 같이 있었다.
  • 뭉쳐야 찬다에서 진행한 건강진단에서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 보통 중년 나이에 지방간이면 사실상 당뇨 전단계라 몸 관리가 중요해질 것이다. 사실 안정환은 골초에 주당인지라 병이 없는게 이상하다.
  • 배달해서 먹힐까?에 출연하면서 인터뷰하기로는 "축구선수를 안했다면 셰프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요리를 꽤 좋아한다고.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김성주, 송종국과 함께 브라질 생활 당시 직접 요리를 전담하여 두사람을 아침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송종국은 안정환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 발사이즈는 255mm로 키에 비해 작은 편이며 손흥민과 발사이즈가 같다.
  • 2021년 4월 1일 만우절날 안정환 FC 라는 축구에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담겠다는 취지를 계기로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다. 평소 민트색을 좋아한다고 밝혔으며, 유튜브 채널의 공식색으로도 정해졌다. 채널명 추천을 받았는데 안정환 19로 결정할듯 하다.
  • 예능 클래식은 왜 그래에서 MBTI 검사를 진행하였으며, ISFJ로 나왔다.
  • 2021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언젠간 한국이 월드컵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봤을때 당연히 힘들지만 축구인으로써 한번쯤은 품는 소망인 듯 하다.

 


7.1. 친모의 채무불이행 사건

 

"안정환 뒷바라지한다며 빌리더니 20년 간 고통 속에 살았다"안정환의 어머니에게 빌려준 억대의 채무 때문에 20여 년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한 사업가의 폭로가 나왔다.
이에 대해 안정환은 "낳아준 어머니이지만 언제 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제게는 연락도 없이 ‘안정환’이라는 ‘빚투’ 보도가 나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고 이야기를 했다.
오래 전부터 안정환의 가정사와 굴곡진 인생이 잘 알려진 터라, 여타 빚투 문제와는 다르게 여론은 오히려 안정환에 동정적이다.
실질적인 성장은 동작구 흑석동에서 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내 이혜원과 같이 출연한 승승장구에서 돼지감자를 먹고, 흑석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말했다.
뭉쳐야 찬다 31회에서 177.
9cm로 측정되었다.
사실상 178로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아빠! 어디가? 시절 측정된 키는 178cm이었다.
뭉쳐야 찬다 31회에서 90kg로 측정되었으나, 뭉쳐야 찬다2 0화에서 85kg이라고 밝혔다.
선수 시절에 체중은 73kg 정도였다고 한다.
다음 프로필 기준.
세컨드 스트라이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황선홍을 제외하면 마땅한 원톱이 없어서 원톱의 위치에 서긴 했지만 수행했던 롤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웠고, 포스트 플레이는 좌측 윙포워드였던 설기현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대신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트레콰르티스타에 가깝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본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중계영상 및 정보영상엔 MF로 표기.
K리그 베스트11만 봐도 MF로 표기.
안정환은 2선에서 1선으로 치고들어가는 플레이에 능했지, 1선에서의 플레이에는 능하지 않았다.
포워드로 뛸 때도 2선에서 1선으로 들어가는 플레이가 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공격 포인트가 0.
5를 넘은 이유는, 탁월한 온 더 볼 + 오프 더 볼 능력과 슈팅 기술에 힘입은 결과다.
치킨 사업가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절친 현주엽에게 창업 조언을 해줬다.
어쩌다FC 1, 2대 감독.
왜 체육특기자가 경영이냐면, 그때까지만 해도 체특자는 합격만 하면 학적은 원하는 곳으로 넣어주는 때였다.
물론 수업은 졸업 필수과목 외에는 아무도 안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주대는 당시 대우그룹 재단 소속으로 부산 대우 로얄즈 입단을 앞두고 입학해 경험을 쌓았다.
이전에 정형돈, 성시경과 함께 나왔던 연예가중계에서 성시경이 리포터 옷을 보고 스님 옷 닮았다는 애드리브를 쳤고 정형돈이 그걸 보고 안정환에게 "저런 순발력 멘트를 해야한다고!"라고 했을때 안정환이 "난 기독교야~" 라면서 받아친 적 있다.
참고로 저 첫번째와 두번째 링크에서 스님 옷 애드리브를 쳤던 성시경은 불교 신자다.
JTBC 뭉쳐야 뜬다에서 김용만과 함께 사원 참배를 하지 않았고, 채널A 사심충만 오!쾌남에서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 근처를 방문하기도 했다.
오른발잡이라 페널티킥은 오른발로 차지만 그 이외 프리킥, 코너킥에서도 왼발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2002년 이탈리아전 후반 프리킥에서 박지성이 밀어준 볼을 왼발로 슈팅한것.
데드볼에서도 약한발을 사용하는 선수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데, 한국에서는 안정환 이외에도 이관우나 백지훈도 데드볼에서 양발을 사용한다.
참고로 원래는 왼발을 잘 안 썼으나 오른발에 부상을 당한 이후로 왼발을 미친듯이 연습해서 양발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다비드 비야와 비슷한 케이스.
8번은 아주대학교,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아이콘스, AC 페루자 칼초, 부산 아이파크에서의 번호.
9번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번호.
10번은 AC 페루자 칼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의 번호.
11번은 2000 CONCACAF 골드컵에서의 번호.
19번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FC 메스, MSV 뒤스부르크, 다롄 스더에서의 번호이며, 예능프로 뭉쳐야 쏜다 상암 불낙스에서 사용했던 번호다.
26번은 시미즈 S펄스에서의 번호.
30번은 다롄 스더에서의 번호.
36번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의 번호.
2014년 1월, MBC와 전속 해설위원 계약을 체결했다.
뭉친프로젝트라는 뜻의 약어이며 김용만, 안정환, 김성주, 정형돈이 설립한 엔터 회사이다.
대표는 김용만.
과거 출연한 CF에 실명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빚투 운동'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MBN 보이스트롯에서 언급하였다.
유튜브 소비더머니를 진행하는 조현용기자가 만든 영상이다 소비더머니 안정환편 13:33 실제로 로베르토 바조와 플레이 스타일이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받았고, 프란체스코 토티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고 평가된다.
당시 대우 로얄즈 단장이었던 안종복은 안정환을 스카우트하려 대학경기에 왔는데, 안정환을 보고 두 번 놀랐다고 자신의 저서 '비상'에서 적었다.
한 번은 실력에 놀라고, 외모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현재는 AFC로 넘어온 호주의 팀 케이힐이 5골로 최다 기록.
허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은 OFC 소속으로 출전한 거라 대회 당시 넣었던 2골을 제외하면 3골로 동률이다.
그리고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1골,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1골로 총 4골로 1위로 올라섰다.
손흥민은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2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전 버전에선 전 대륙 상대 대한민국 최초 득점에 성공했다고 서술되었으나, 잘못된 사실이다.
전 대륙 최초 득점 선수는 황선홍(1988.
12.
6 일본(아시아), 1989.
8.
13 미국(북중미), 1990.
2.
4 노르웨이(유럽), 1994.
2.
26 콜롬비아(남미), 1994.
5.
4 카메룬(아프리카), 2001.
6.
3 호주(오세아니아), 전 대륙 상대 대한민국 최초 득점에 성공)이다.
참고로 이동국과 박주영도 전 대륙 상대 득점자다.
실제로 안정환이 본인의 유투브 채널에서 사실이라고 직접 이야기를 하면서 인증했다.
나무위키에 적힌 본인의 문서를 직접 읽어보면서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을 때 오렌지를 처음 먹어봤다.
이런 과일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나나도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씨를 따른 안정환은 어린 시절 후레자식이란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그의 어머니는 나중에 도박중독자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안정환의 생애 내내 민폐를 잔뜩 끼쳤다.
안정환이 축구 선수가 되고 프로 입단을 한 뒤에도 안정환이 축구선수라고 떠벌리면서 도박판을 돌아다녔다가 빚이 엄청나게 불어난 통에 안정환이 뒷처리를 하느라고 이래저래 맘고생을 해야 했으며, 안종복이 어머니 입장에서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안정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했으며, 이 때문에 안정환과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기사 참고.
물론 차두리는 차두리 대로 아버지가 차범근이라는 부담감을 은퇴때까지 안고 살았으며 차범근이 차두리의 은퇴식에 '이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난거 후회 안하지?'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고등학교 진학 에피소드도 의리의 상남자임을 알 수 있는데, 상위 랭크의 명문고에서 스카웃하기로 했는데 안정환이 뽑혔다.
하지만 같이 동고동락한 친구들과 같이 하기 위해 스스로 명문고 스카웃을 포기했다고 한다.
의리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여기서 감독이나 학부모의 입김까지를 추론하는 건 사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현재도 이런 경우는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그 동기는 어린 선수의 착한 마음에 기인한다.
최소 3년을 매일같이 얼굴보고 같은 훈련과 목표를 가지고 동고동락했으니 이들은 사실상 이 시점에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다.
예체능계 19살 청소년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해, 쓸데없이 감독이나 학부모의 입김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타 대학에 들어가면 타 대학 감독의 산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고등학교 감독의 입김도 우스운데 학부모의 입김은 거의 소설 같은 얘기다.
모 예능에서 목동역을 갈 일이 있었는데 본인이 여기 내가 지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같은 2002년 대표팀인 최태욱과 비슷하면서 대비되는 일화이다.
최태욱의 경우도 축구가 즐거워서 하지 않았고 맞으면서 했기 때문에 싫었다고 하며 스스로를 재능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안정환은 본인의 승부욕과 더불어, 최소한 축구적 능력은 이끌어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을 만났다.
2002년 땐 황선홍을 제외하면 마땅한 원톱이 없어서 원톱의 위치에 서긴 했지만 수행했던 롤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였고, 포스트 플레이는 좌측 윙포워드였던 설기현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대신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본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중계영상 및 정보영상엔 MF로 표기.
K리그 베스트11만 봐도 MF로 표기.
안정환은 2선에서 1선으로 치고들어가는 플레이에 능했지, 1선에서의 플레이에는 능하지 않았다.
포워드로 뛸 때도 2선에서 1선으로 들어가는 플레이가 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공격 포인트가 0.
5를 넘은 이유는, 탁월한 온 더 볼 + 오프 더 볼 능력과 슈팅 기술에 힘입은 결과다.
19번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FC 메츠, MSV 뒤스부르크, 다롄 스더에서의 번호.
8번은 부산 아이파크, AC 페루자 칼치오에서의 번호.
9번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번호.
10번은 AC 페루자 칼치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의 번호.
26번은 시미즈 S펄스에서의 번호.
30번은 다롄 스더에서의 번호.
36번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의 번호.
이 중에 한때 K리그에서 뛰었던 한동원이 있었지만, 최종 선발 발탁에는 실패했다.
몸 관리가 안되어 있는 상태였고, K리그, 올림픽 대표를 모두 해본 선수는 기회를 받아낸 선수라고 생각해 제외시켰다.
실제 이 프로그램은 나이키 이벤트처럼 선수가 잘한다고 상금을 받거나 K리그 구단에 입단하는 약속은 없다고 한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선 피식이지만, 듣는 선수 입장에선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말이다.
일반인 버젼으로는 '너 해고'와 비슷한 말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에서 왜 안정환을 교체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투정환 전술로 칩샷으로 골을 넣은 스코틀랜드전 직후 인터뷰 안정환이 AC 페루자 칼초 시절에 유벤투스 FC와 경기하여 MOM을 차지했을 때.
이때 필리포 인자기도 유벤투스에 있었다.
다만 안정환은 인자기보다는 로베르토 바조와 흡사한 판타지스타에 가깝다.
여담으로, 안정환은 본인의 유투브 채널에 펠레가 직접 자신을 극찬하는 이 문서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고 좋아하면서 "펠레는 지구 최고의 선수" 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뭉쳐야 찬다에서 가끔 욱하거나 빈정상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선수 시절 그렇게까지 욱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다.
본인 피셜로 선수 시절 싸운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상술된 각주에 있듯이 안정환 책임이라고 여길 만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안종복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분명히 비정한 행동거지를 보였지만, 안정환에게 고의라고 판단되는 귀책사항이 없었다면 저 엄청난 빚더미를 개인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안정환은 당시 안종복을 비롯한 다른 계약 관계자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한 부분이 있으므로 일방적 배신이라기보단, 사회에 어둡고 순진한 젊은 축구 선수들이 저지르기 쉬운 뼈저린 실책이라고 보는 편이 맞는다.
이 사건이 조용히 넘어가게 된 것은 안종복이 안정환에게 아버지처럼 여겨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안정환 본인이 그 자신의 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꼬임에 홀려 계약을 어긴 것도 사실이다.
안종복은 물론이고, 안정환 본인 역시 본인의 포텐을 망치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게 계약조건이었다.
빚을 청산해주는 대신 계약금은 지급하지 않음+연예계 활동을 군말없이 할 것.
야구해설가 마해영이 지은 책 '야구본색'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굉장한 주당이다.
뭉쳐야 찬다에서 지방간 판정을 받고 술을 줄이고 있다.
여담으로 이천수를 처음 봤을 때는 안정환과는 다른 의미의 충격이였다고 한다.
그나마 안정환과 어느 정도 외모 대결이 되는 운동선수로 축구의 정승원, 배구의 문성민, 농구의 우지원, 야구의 이대형, 심수창 정도가 있다.
이들 역시 전부 출중한 외모와 훌륭한 실력의 소유자들이지만 안정환만큼의 외모와 스타성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중론.
과거형인 이유는 은퇴 이후 살이 찌면서 아저씨 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중년이라 불릴만 하다.
그래도 위대한 배태랑을 통해 살을 감량해 다시 날렵한 외모로 돌아오기도 했다.
사실 살쪄서 슈퍼마리오 소리 들을 때도 리즈시절과 너무 달라져서 그렇지 미중년 느낌이 났었다.
반면에, 이천수는 해외 투표로 못생긴 축구선수(.
) 설문조사에서 1등을 한다.
사실, 이것은 한국의 이천수 안티들과 일본, 중국에서 다같이 몰표를 해준 것이다.
그래도 유럽 나이트 얘기도 풀어주는 등 이탈리아인들과 제법 어울렸으니, 비슷한 나이대인 이동국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편이었다.
이와 비슷한 이미지로는 동갑내기 야구선수인 이승엽이 있다.
공통점이 1999년도에 자기 종목에서 MVP를 받았고 앙드레김 패션쇼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이승엽은 알다시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마쓰자카 상대 2타점 2루타, 2006 WBC 5홈런 맹활약,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결승에서 홈런을 터트려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유명하다.
특히 이승엽의 베이징과 안정환의 이탈리아전은 묘하게도 겹친다.
부진하다가 결정적일때 한방으로 기억에 남는 활약을 펼쳤다.
단군 이래 김일성 다음으로 욕을 많이 먹었을 거라는 말을 본인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했다.
한때 개발 공격수의 대명사로 황선홍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정도다.
AC 페루자 칼초(사실 이쪽은 팀 전력보다 구단주가 문제된 케이스), FC 메스, MSV 뒤스부르크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누가 더 활약을 못했냐?"라면서 서로 장난스럽게 주고 받은 디스전에서 나온 이을용의 촌철살인의 한마디.
실제로 안정환과 이을용은 서로 절친한 사이다.
기사 이 시기에 평가전을 한다고 훈련소에서 구르고 있던 안정환을 국가대표로 차출하기도 했다.
물론 경기에 뛸 만한 컨디션은 아니었기에 벤치만 지켰지만, 안정환 본인 입장에서는 "꿀 빨았다.
"고 할 만하다.
남들 2년 군생활 하는 거 4주 단축하는데, 그 와중에 휴가까지 받았다.
실제로 슛포러브에서 음료수내기라고 밝혔다.
예술체육요원, 면제로이드 문서에서 설명했듯이 면제도 아니고 4주 기초군사훈련만 받는다고 끝이 아니며 규정 기간이 끝나면 예비군훈련 대상이 된다.
운동선수들 중에 해당 법령에 나온 규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정환이 빠른 76년생이라 75년생들과 친구 사이다.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은 것과 주전 경쟁에서 우디네세보다 메츠가 나을 것이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월드컵이 아무나 가는 곳도 아니고 월드컵을 간다고 하면 그 누구라도 저런 선택을 했을 것이기에 순박하다고 보긴 좀 어렵다.
이는 사실 어리숙한 게 아니고 그만큼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만일 그에게 제대로 된 에이전트라든가 히딩크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더라면 안정환 본인의 인생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 대화의 희열에 나와 밝힌 바에 따르면 거스 히딩크는 이영표와 박지성을 데려가기 전 안정환도 자신이 거두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안정환 본인도 당연히 너무 좋다고 했지만 당시 치솟아 있던 안정환의 몸값을 히딩크의 팀 아인트호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뭉쳐야 쏜다에서 조금만 무리하면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무릎 상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참가했던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당시에 나온 프로그램이 현재 그가 고정 MC로 활동중인 냉장고를 부탁해였다.
오쿠보는 자신의 영웅이 현재 한국에서 예능 방송 MC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아내 말로는 아침은 잘 안 먹는다고 한다.
나머지 봉송주자들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과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 리스트 전이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금메달 리스트 박인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멤버인 대한민국의 박종아와 북한의 정수현.
마지막으로 성화 점화자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일설에 의하면 원래는 박지성으로 계획되었으나 당시 박지성이 모친상을 당한 직후인지라(불과 한 달밖에 안 지났었다.
) 안정환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지성은 개최국 첫 번째 주자로 성화봉송을 하였다.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안정환이 성화대로 뛰어올라가는 훈련 장면이 있다.
실제 상호명은 '치킨선수'이나, 간판에는 버젓이 '안정환 치킨선수'로 표기하고 있어 안정환 본인이 사장인 듯한 이미지를 준다.
이만기도 고지혈증 확진 판정 및 지방간 전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안정환이 축구선수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친모가 안정환을 찾아갔고, 안정환이 친모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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