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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섀도우버스/원/근황/재산 몰수/명언/곤잘레스/프로필 -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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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초대 주석
마윈
马云(馬雲, Mǎ Yún) | Jack Ma
출생
1964년 9월 10일 (57세)
중화인민공화국 저장성 항저우시
국적
중국
직업
기업인
경력
알리바바 그룹 회장 (1999 ~ 2019)
알리바바 그룹 초대 주석
신장
161cm
학력
항저우시 톈수고등학교 (졸업) (-1982년)
항저우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 B.A.) (-1988년)
자산
481억 달러 (한화 약 57조 8,946억원)
정당
중국공산당

 

1. 소개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이며 현재는 알리바바 그룹의 초대 주석이다.
2019년 기준 마화텅과 함께 중국 부자 투톱이며 포브스 표지에 최초로 실린 중국의 사업가다.
서구권에는 주로 영어식 이름인 잭 마(Jack Ma)로 알려져 있다.

 

1.1. 초기 생애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독학을 한 덕에 영어가 능숙했다.
마윈은 '크레이지 잉글리시'로 유명한 리양(李揚)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만나는 외국인마다 말을 걸었다.
당시 그가 살던 곳은 항저우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은 시후(西湖)다.
1982년 고등학교에 졸업했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곧바로 취업을 시작했다.
원래는 호텔 종업원을 노렸는데, 작은 키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몇몇 직종을 전전하면서 다시 대학입시에 도전했지만 수학 때문에 떨어졌다.
삼수생 때도 수학 때문에 전문대에 겨우 들어갈 실력이었지만, 마침 결원이 생긴 덕분에 운 좋게 항저우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옛날부터 능숙한 영어 실력 덕분에 성적도 언제나 5등 이내였다.
항저우 사대에서 학생회 주석으로 뽑혔고, 항저우 학생연맹 주석에도 올랐다.
무명 대학 출신이 주변 일류대를 제치고 학생연맹 주석(회장)을 맡는 경우가 매우 적었기에 대학 후배들 사이에 전설로 남았다고 한다.
재학 도중 더 넓은 환경에서 공부해보고 싶어 하버드 대학교도 10번이나 지원했으나 결국 실패하였고 항저우 사대 1학년 때 만난 장잉과 결혼했다.
1988년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 영어 강사로 들어갔다.
당시 학생들의 회상에 의하면 강좌가 매우 재미있어서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고, 기초가 약한 학생도 영어에 흥미를 느꼈으며 다른 반 학생이 호기심에 보러 올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 영어강사는 박봉이었고, 마윈의 영어 실력이면 과기대 영어 강사보다 훨씬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었으나 당시 항저우 사대 학장이 '네가 교수를 한다고 약속해놓고 그만두면 네 후배들 앞날까지 막힌다.
월급이 적어도 5년만 버텨달라.
'고 청원해서 6년 반을 버티고 다른 대학으로 옮겼다.
밤에는 다른 야간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그때 무역 업계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다.
알리바바 창립 멤버 18명 중 몇몇은 마윈에게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다.

 


1.2. 1990년대

 

1992년 강사 생활을 하면서 하이보(海博)라는 이름의 통역 회사를 통해 첫 번째 기업 경영을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1995년까지 교직에 있었다.
이 해에 항저우 10대 우수 청년 교사에 선정되었지만, 풀타임으로 창업을 하겠다며 안정된 교직을 그만뒀다.
1995년 미국에 방문했다가 친구를 통해 인터넷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맥주라는 단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는데 다른 나라들의 자료는 눈에 보였는데도 중국과 관련된 자료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인터넷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그는 같은 해에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인 차이나옐로우페이지(中國黃頁)를 세웠다.
1995년에 2만 7천 위안의 자본금으로 세운,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회사였지만, 당시에는 중국에 인터넷이 아직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반대로 말하자면 시대에 뒤처질대로 뒤처진 중국에서 혼자만 앞서나갔던 셈이다.
게다가 베이징에는 외국 기업들이 자금력을 내세워 경쟁이 되지 않았고, 고향인 항저우에 내려갔더니 경쟁 상대였던 '항저우전신'이 자금력으로 압박했다.
1996년 3월 항저우전신과 합병하기로 하였으나, 경영 의견에 대한 차이가 있었고, 자본과 권력에서 밀리는 마윈이 사퇴하기로 결정되었다.
야후 창립 멤버인 제리 양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으며 이는 창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1997년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인터넷 네트워크 업무를 담당했는데, 차이나옐로우페이지 시절의 동료들을 데리고 가서 해낸 것이다.
대외경제무역부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 최초의 정부부서였고, 베이징에 '중국 국제전자상거래센터' 회사를 세우고 마윈에게 조직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마윈은 공공기관 특성상 경영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약속은 30% 지분을 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라는 이유로 매우 적은 월급만 주었으며, 정부 관료들은 간부와 외부인 사이에 거리두기를 원했으며 복종, 독점, 통제만을 원했다.
이들이 낸 성과가 항저우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모든 성과는 대외경제무역부 간부들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으며 마윈이 그걸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윈 혼자 홀대를 받았다면 참았겠지만 마윈과 함께 일하던 창업멤버들도 나쁜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1999년 회사를 관두고 알리바바 창업멤버들과 함께 항저우로 떠났는데, 마윈이 그만두자고 하자 5분만에 전원이 동의했다고 한다.
당시 돈만 따져보면 상당한 실패였으나, 대신 14개월치 경험을 얻었다.
중소기업을 위한 전자상거래 B2B 모델에 대한 마윈의 구상은 이 시기(1998년 말경)에 나온 것이다.
영어강사를 할 때는 국제 무역 시장, 생산업체-수출입업체 관계에 대해 몰랐다.

 

1.3. 알리바바 창업

 

1999년 1월 B2B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알리바바라는 사명을 선택한 이유는 거의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알리바바를 알고 있고 천일야화에서 묘사된 알리바바의 착한 성품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의 어떤 기업이 알리바바닷컴의 도메인을 선점하고 있었으나 1만 달러에 소유권을 이전받게 된다.
요즘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50만 위안 자본으로 45평짜리 마윈 자택에 모여 18명의 창업 멤버가 하루 17시간씩 일한 끝에, 1999년 3월에 홈페이지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고 1999년 7월경에는 빚을 내서 월급을 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마윈은 다른 기업들에게 벤처 투자를 받을 때, 자기 회사가 너무 저평가되었다는 이유로 무려 38차례나 투자를 거절했다.
첫 벤처투자 조건이 추가적인 투자 유치를 결정짓기 때문.
마침내 8월경 골드만삭스로 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유명 기업이다 보니 브랜드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2000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마윈을 직접 만난지 단 6분 만에 투자 결정을 내렸다.
투자를 위해 기업가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자리였는데, 마윈에게 설명할 20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손정의가 듣다가 6분만에 말을 끊어버리고 투자를 결정했다.
손정의는 3천만 달러를 제안했지만, 마윈은 이를 거절하고 2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았다.
이 2천만 달러는 후에 알리바바가 상장되면서 578억 달러가 되어 3,000배의 대박을 냈다.
2001년 알리바바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적자를 벗어났다.
중국인 최초로 포브스 표지 모델이 되었다.
2003년 C2C 거래 기업 타오바오를 설립했다.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도 출시했다.
2005년 야후 차이나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금을 받았다.
2006년 경쟁자 이베이를 수수료 무료를 무기로 중국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2007년 홍콩 주식 시장에 상장했다.

 


1.4. 2010년대

 

2013년 홍콩의 명문대인 홍콩과기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알리바바를 뉴욕 주식 시장에 상장하는데 성공했다.
2017년 2월, 알리바바 호주/뉴질랜드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호주를 방문하면서 호주 뉴캐슬 대학교에 2천6백만 호주달러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마-몰리 재단을 설립했다.
기부와 장학재단 설립 이유는 1985년 호주 뉴캐슬에 거주 하던 켄 몰리 씨의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하고 약 한달간 뉴캐슬에 체류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2018년 9월 8일 은퇴하겠다는 외신 보도가 떴다.
기사에 의하면 이후에는 평소의 좌우명인 "50대에는 후배들을 가르쳐줘야한다"라는 걸 실천하기 위해 교육에 힘을 쏟겠다"라고.
그러나 하루만에 알리바바 측이 마윈 회장 은퇴설을 부인하면서 10일 그룹의 승계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8년 9월 10일 알리바바에서 인터넷으로 성명을 냈다.
마윈 회장이 2019년 9월에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하고 현 CEO인 장융(張勇)이 회장직을 이어받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에 세간에서 '중국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은퇴는 내가 10여년 전부터 준비하고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오히려 나에게 미쳤냐면서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사퇴하는 거냐고 끊임없이 물어봤고 나는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고 말하며 정부 개입설을 부인했다.
그런데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단순한 은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룹의 소유권을 포기한다고 한다.
이사회에서도 물러난다.
중국 내에서는 알리바바 그룹 소유 빅데이터를 정부와 공유하라는 중국 정부의 방침 때문에 정부와 상당한 마찰이 있었고 이때문에 그만둔다는 소문도 있는데, 중국 사정상 확인되지 않고 있다.

 

1.5. 앤트그룹을 둘러싼 중국 정부와의 갈등

 

"은행들은 수익의 80%를 가져가고 고객들에게 20%만 나눠줬습니다.
""은행들은 쉽게 돈을 벌어온 탓에 비대해지고 게을러졌습니다.
""규제 기관들은 몇년간 은행 개혁을 이야기해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민간 부문의 경쟁을 통해 은행 개혁을 실제로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앤트파이낸셜을 앞세운 금융 혁신 구상을 밝힌 마윈이 은행 시스템을 비판한 발언들2010년대 후반부터 알리바바의 금융 부문 자회사 앤트그룹(앤트파이낸셜)을 통해 중국 금융 전면 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앤트그룹은 알리바바의 간편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회사로, 서민층을 위한 소액 대출 사업 부문에서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이는 담보와 저당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해주지 않는 기존의 은행 시스템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죽지세의 앤트그룹을 앞세우며 중국의 은행 시스템 전체를 "혁신의 추세에 뒤떨어진다"며 직설적으로 비판해왔다.
이는 '비효율적인 국가'와 '유능하고 빠른 민간 기업'을 대조하여 "중국 정부기관은 제 역할을 못하니 우리 알리바바의 앤트그룹이 앞장서겠다"는, 중국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였다.
당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던 2020년 10월 24일, 상하이 와이탄 금융서밋 연설에서 "좋은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을 두려워한다", "가장 큰 리스크는 리스크를 '제로'(0)로 통제하려는 것", "미래의 시합은 혁신의 시합이어야지 감독 당국의 (규제) 기능 경연 시합이어서는 안 된다", "(중국 은행들의) 저당을 잡는 '전당포'식의 사고방식은 향후 30년 세계 발전에 필요한 금융을 뒷받침할 수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중국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경직된 규제 감독에 치중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날 연설은 왕치산 국가부주석, 이강 인민은행장의 발언 다음으로 진행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정치/경제 당국 최고위급 지도자들의 면전에 대고 중국 금융시스템의 후진성을 대놓고 꼬집은 셈이 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대내외에 비쳐졌다.
11월 3일 중국 당국으로부터 앤트그룹 최고경영진과 함께 호출당해 예약면담을 받았고, 이후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 절차를 전격 중단당하는 초강수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앤트그룹의 기업공개는 345억 달러를 조달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IPO가 될 것으로 주목받았는데, 당국이 이를 취소시켜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식이 폭락했다.
게다가 마윈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사업가 첸펑레이가 홍콩에서 괴한에게 피습당했다.
이 앤트그룹 사건은 마윈의 입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먼저 앤트그룹의 수익모델이 너무나 위험했던 것이다.
앤트그룹은 ABS를 통해서 사업을 확장해왔는데 간단히 말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거의 같은 방식이다.
즉 앤트그룹의 수익모델은 제도금융에서 배제된 저신용자들에게도 대출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만약에 이대로 내버려두다간 마윈이 2008년 같은 금융위기를 중국에서 훨씬 큰 규모로 일으킬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중국 정부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ABS는 금융에서 보편적인 상품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저신용자에게도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준 은행, 유동화채권에 대한 현실적인 리스크 분석을 하지않은 투자은행, 수수방관한 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겹친 것이며, ABS 자체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흔한 방식이다.
다만 알리바바의 자금력이나 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져서 중국 금융당국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상황을 우려한 듯 하다.
여기에 알리페이라는 결제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국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겼다.
사실 앤트그룹은 핀테크를 이용해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화폐발행권에 자신들도 사실상 끼어들려고 했는데, 이는 1910-30년대 중화민국 시절 지방군벌들이 독자화폐를 발행하여 사실상 대륙을 할거했던 중국에서는 실로 민감한 문제다.
지방군벌들은 장제스의 남경정부에 수시로 반항해 결과적으로 공산당이 집권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든 셈인데, 정부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화폐발행권에 도전하는 마윈의 이런 구상에 강하게 제동을 건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는 대규모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는데다가 정부의 금융 통제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마윈의 사업구상을 제지했고, 11월 2일, 감독 기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앤트그룹의 일부를 국영화할 의사를 드러내며 백기를 들었다는 말이 있다.
이후 12월에는 엔트그룹에 대해 고강도의 조사가 감행되기도 했다.
10월 24일의 금융서밋 연설 이후 마윈은 2개월 남짓이 지난 2021년 1월까지도 종적이 묘연한 상황.
이를 두고 야후파이낸스에서는 마윈의 실종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1월까지 자신이 제작을 맡은 기업인 경연 프로그램의 사전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회 촬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2021년 지역 교사들을 위한 강연을 통해 석달만에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다만 화상 강연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 노릇.
연설에서 '국가 봉사', '공동체 번영'등을 언급하며 기업 활동은 국가의 비전에 봉사해야 함을 인식했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실상 중국공산당의 압박에 순응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5월에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해 연례행사인 '알리데이'에 참석했다.
이후, 홍콩에서 가족들과 머물다가 중국의 농업IT 사업을 위해서 유럽에 돌아다니고 있다.
2022년에 다시 중국에 머물고 있다.
결국 2022년 5월 3일 해외 반중(反中) 적대세력과 손잡고 국가 분열 선동, 국가 정권 전복 선동을 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사실이 알려졌다.
덮어쓴 혐의가 혐의인 만큼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해당 뉴스는 루머라는 기사도 있으므로 (해당 혐의로 체포된 마씨 성의 인물이 있는 것은 맞으나, 이름이 3글자라고) 차후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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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타

 

    •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얼굴상이 상당히 독특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원래부터 상당히 왜소한 체구였지만(161cm), 이상하리만치 체구가 더 작게 보인다. 사실 다른 사람들과 멀리서 찍은 사진에서도 충분히 많이 왜소해 보이기에 꼭 얼굴빨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 희대의 사기꾼인 엘리자베스 홈즈를 빌 클린턴과 같은 자리에서 찬양했던 흑역사가 있다. 다만 홈즈에 낚인 사람들이 적지는 않다.
    • 마윈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로 의지, 선견지명, 용기의 부족을 꼽은 후 “30∼40세가 될 때까지 이룬 것이 없어 멸시를 받더라도 누구도 동정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윈의 어록 정리.
    • 소탈하며 부패하지 않은 청년 기업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2015년에 영국에서 귀족처럼 사냥을 했던 사실이 들통나 비난당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특집 인터뷰에서 빅 데이터로 계획경제가 우월해질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실제로 이런 주장은 미래학자들이 많이 하고 있다. 자본주의 본진인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미래학자들도 비슷한 전망을 한 바 있다. 다만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오가스, 사이버신 계획 등 정보기술을 이용한 계획경제 운용 시도를 한 것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 마윈이 알리바바의 회장직을 내려놓은 건 2019년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CEO직을 2013년 내려놓으면서 본인이 없이도 회사가 잘 굴러가도록 경영 구조를 재편했다고 한다.
    • 마윈은 친정부적인 행보를 보이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공산당을 찬양하고 있다. 이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재벌들이 정부에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단 중국의 일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중국 공산당의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재벌들이 정부 비위를 거스르면 큰 피해를 보며, 심지어는 자산이 몰수되고 해체당할 수도 있다. 마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의 재벌들은 정부와 사이가 나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이런 언플도 딱히 마윈만의 것은 아니다.
  • 태극권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기업 경영에도 태극권의 원리를 강조할 정도. 2017년에는 이연걸 감독의 《공수도(功守道)》란 태극권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는 이연걸 이외에도 홍금보, 견자단, 오경, 토니 쟈, 쩌우스밍스모 요코즈나 출신 아사쇼류까지 출연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도장 가서 사사받은 게 아니라 독학으로 익힌 거라서 그를 무술가로 보긴 어렵다.마지막 장면에서 화산파라는 3글자를 보고 쳐들어가서 도장 깨기를 시전했는데 안에서 경찰들이 나와서 연행되었고, 알고보니...출소라는 뒷글자가 나무가지와 잎에 가려져 있었다는 엔딩이다. 대체로는 권력에 머리 숙이겠다는 메세지를 포함한 것으로 해석된다.
  • 좋아하는 작가는 김용이다. 실제로 마윈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김용과 그의 무협소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마윈은 앞서 지난 2016년 2월 24일 김용의 92세 생일을 축하하는 동영상을 직접 제작해 타오바오 크라우드펀딩(淘宝众筹)에 올리기도 했다. 축하 영상에서 마윈은 “김용의 무협 정신은 나와 알리바바 기업 문화에 깊은 영향을 줬다”며 “창업 초창기, 알리바바 창시자 18명 중 16~7명 모두가 김용의 무협소설을 매우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용의 소설은 상상력과 낭만주의, 의협심이 풍부하다”며 “특히 정의를 실현하는 의협 정신은 나와 알리바바에게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했다.마윈 회장의 김용 무협소설을 향한 애정은 알리바바 사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마윈의 사무실은 무협소설 색채가 가득한 ‘도화도(桃花岛)’로, 회의실은 ‘광명정(光明顶)’으로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회의실 내부에는 김용이 친필로 직접 쓴 문구 ‘못에 가서 물고기를 탐내는 것보다 물러나서 그물을 뜨는 편이 더 낫다(临渊羡鱼,不如退而结网)’가 걸려 있다.이밖에도 알리바바 직원들은 모두 무협 또는 판타지 소설에 나올 법한 별명을 갖고 있다. 마윈 회장은 김용 무협소설 소오강호 속 고독한 검객 풍청양을 자신의 닉네임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평소 마윈 회장은 김용 무협소설 속에 등장하는 문장을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마윈은 지난 2014년 김용을 직접 만났던 추억을 회상하며 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중국에서는 관우를 위협하는 재물의 신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 신흥 IT 재벌들은 대부분이 명문대 이공계 출신인 데에 비해 몇 안 되게 스티브 잡스(리드 대학교 철학과 중퇴)처럼 이류대학 인문계열 출신이다. 인간승리의 대표적인 표본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 쑤닝 그룹의 장진둥 회장과 친하며, 사업을 같이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테르 경영진에서 물러나는 에릭 토히르 회장의 주식을 모조리 샀다고 한다.
  • 2019년 4월, 996 근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SNS에 996 근무를 옹호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는데 영락없는 열정페이식 발언이라 논란이 되었다. 심지어 중국 관영매체들까지도 나서서 이 주장을 비판하였다.
  • 상하이시에서 이루어진 일론 머스크와의 대담에서 AI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닌 알리바바 지능(Alibaba Intelligence)의 약자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했다.그리고 온갖 4차원적인 말들로 일론의 어이를 날려버렸다.
  •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의 공동 구단주이며 가끔씩 경기장에서 자기 팀을 관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일본, 이란에 마스크 100만 개를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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