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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프로필/혈액형/비서관 김한규-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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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제3대 국민의힘 원내대표
권성동
權性東 | Kweon Seong-dong
출생
1960년 4월 29일 (62세)
강원도 강릉시 교동
거주지
강원도 강릉시 교동 롯데캐슬1단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현대아파트
본관
안동 권씨
현직
국민의힘 원내대표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강릉시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민이 힘나는 선대위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부모
아버지 권승옥, 어머니 최복순
형제자매
남동생 권우동, 권호동, 권계순
배우자
김진희
자녀
1남 1녀
학력
중앙국민학교 (졸업)
경포중학교 (졸업)
강릉명륜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법학 / 석사 수료)
병역
대한민국 해군 중위 전역 (군법무관)
종교
무종교
신체
178cm
지역구
강원 강릉시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8, 19, 20, 21
소속 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경력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제17기 사법연수원 수료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검사
법무부 인권국 인권과 검사
광주지방검찰청 장흥지청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장
대통령실 법무비서관
제18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한나라당)
제19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새누리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제19대 전반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제19대 후반기)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제20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새누리당)
새누리당 사무총장 겸 혁신비대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제20대 전반기)
제21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라임옵티머스 권력형 비리게이트 특별위원장
국민의힘 탈원탈북원전 진상조사 특별위원장
국민의힘 문재인 정부 땅투기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장
제4대 국민의힘 사무총장
제3대 국민의힘 원내대표
부모
아버지 권승옥, 어머니 최복순
형제자매
남동생 권우동, 권호동, 권계순
배우자
김진희
자녀
1남 1녀
학력
중앙국민학교 (졸업)
경포중학교 (졸업)
강릉명륜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법학 / 석사 수료)
병역
대한민국 해군 중위 전역 (군법무관)
종교
무종교
신체
178cm
지역구
강원 강릉시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8, 19, 20, 21
소속 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경력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제17기 사법연수원 수료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검사
법무부 인권국 인권과 검사
광주지방검찰청 장흥지청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장
대통령실 법무비서관
제18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한나라당)
제19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새누리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제19대 전반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제19대 후반기)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제20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새누리당)
새누리당 사무총장 겸 혁신비대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제20대 전반기)
제21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 /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라임옵티머스 권력형 비리게이트 특별위원장
국민의힘 탈원탈북원전 진상조사 특별위원장
국민의힘 문재인 정부 땅투기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장
제4대 국민의힘 사무총장
제3대 국민의힘 원내대표

 

1. 소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자 국민의힘의 원내대표이며 , 강릉의 4선 의원이다.
2009년 10월 재보궐선거로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후 강원도 강릉시에서 19-21대 국회의원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였으나, 보수정당의 잦은 당명 변경으로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의 대표적 중진 정치인이다.
발음이 편하다는 이유로 '권선동'으로 오기되거나 불리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윤핵관'은 당초 부정적 용어로 시작되었으나, 최근 대선과정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며 권성동이 단순히 측근인사가 아니라, 당선인에게 직언과 쓴소리를 했던 인물로 재평가받고 있다.
2022년 1월 초 후보 메시지팀을 전원 2030으로 구성하고, 센세이션했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윤석열 후보의 페이스북 단문 메시지 탄생을 주도하였다.
2022년 4월 5일,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출마할 것을 공식 선언하며 "윤석열 당선인에게 민심 전달하고 할 말을 하는 원내대표가 될 것"이라는 뜻을 밝혔고,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2. 생애

 

1960년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서 태어나 강릉중앙초등학교, 경포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지역 명문고인 강릉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아버지 권승옥이 교편을 잡고 있던 강릉명륜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80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고시공부를 할 당시 지금의 배우자 김진희를 만났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같이 고시공부를 했던 중앙대 동문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법학과 82학번)가 있다.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 17기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동기이다.
해군 중위로 전역하고 이후 검사가 되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광주지검, 대검찰청 등에서 근무하였고 광주지검 장흥지청장을 역임했다.
수사부서 외에도 법무부 인권과에 근무하며 ‘국가인권위원회법’제정에 실무자로 관여하였다.
2006년 인천지검 특수부장검사를 마지막으로 검사직을 사임하고 1년 남짓 짧은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법무비서관에 임명되었다.

 

2.0.1. 초선의원 시절

 

최욱철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8대 국회 중간에 들어왔음에도 초선 2년 4개월 동안 4개의 상임위원회, 3개의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10개의 인사청문회, 4개의 대정부 질문을 하는 등 초선의원으로서는 이례적인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였다.

 

2.0.2. 재선의원 시절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초선의원 때 보인 남다른 전투력과 논리력을 인정받아 재선의원 임기 4년 내내 여야의 갈등이 가장 첨예한 법제사법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그 외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진상규명 국정조사, 국정원 댓글의혹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해외자원외교 국정조사의 간사를 맡아 활동하는 등 간사 전문 의원으로 당내외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19대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김무성-유승민의 새누리당 사이의 갈등이 커지며, 청와대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에 몰입하였고 2015년 7월 8일 유승민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직후 김무성 대표는 7월 15일 당대표가 임명하는 당직 가운데 서열 2위이자 20대 총선의 선거전략을 책임지는 전략기획본부장으로 권성동을 임명한다.
이 때가 권성동을 아직까지도 비박계 핵심, 친무 대표라 평가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2015년 하반기는 이른바 안심번호 여론조사 위주로‘상향식 공천’을 내세우는 김무성 대표와 ‘5대 불가론’을 내세워 20대 총선 공천을 위에서 찍어누르려는 박근혜 청와대 사이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시기였다.
결국 총선 공천룰을 정하기 위한 계파간 논의가 필요하게 되었고, 권성동은 2015년 12월 새누리당 공천룰을 정하는 ‘공천특별기구’에 비박계 대표 중 하나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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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제20대 총선 공천과 보수몰락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공천 시작 전부터 최경환, 홍문종, 이장우, 민경욱 등 소위 ‘진박 감별사’ 등이 등장하며 박근혜 청와대에 줄을 서는 여당 의원들의 행보가 언론에 다수 보도되며 민심에서 멀어져갔다.
본격적인 공천 과정에서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청와대의 오더를 받아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비박계 인사들을 공천학살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공관위 회의 전마다 이한구 위원장이 청와대 현기환 수석을 만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결국 이한구 공관위는 유승민을 비롯해 유승민과 가깝다고 평가되는 류성걸, 김희국, 이종훈, 민현주, 권은희 등을 단체로 공천학살하였고, 비박 정치인들인 이재오, 주호영, 장제원, 안상수등도 공천에 탈락하였다.
이 때 친박 핵심이었던 윤상현도 함께 공천에 탈락하고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다.
당시 권성동은 비박계의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상대적으로 큰 고생을 하지 않고 공천을 받았고, 강릉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초재선 시절 새누리당과 강릉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해온 것과 달리, 20대 국회에서는 보수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권성동의 정치인생도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2.0.4. 제20대 총선 패배 이후 비대위 사무총장 시절

 

총선 패배 이후 새누리당은 김희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었고, 권성동은 6월 2일 새누리당 신임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권성동은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당 기획조정국과 함께 총선 패배의 충격에 빠져있던 당을 개혁하는 작업에 나선다.
첫째, 20대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총선 백서’ 발간을 추진하였다.
대국민 표적집단면접(FGI) 등을 활용해 총선 패배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고 앞으로의 당 운영에 반영하려 하였으나, 일각에서는 백서를 발간할 경우 ‘진박(진실한 친박계) 후보’ 논란에 따른 청와대의 개입과 책임론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에 친박계가 이를 저지하려 한 정황이 있다.
당시 친박계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은 “총선에서 진 것은 누가 누구를 탓하는 방식으로 어느 한 쪽의 책임론으로 귀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총선 패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하였다.
권성동의 사무총장 사퇴 이후 발간된 총선백서는 많은 부분에서 민감한 부분이 수정되었고, ‘맹탕 반성문’이라는 비판을 듣게 되었다.
둘째, 전당대회에서 모바일투표 도입을 추진하였다.
지금은 정당에서 모바일투표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특히 보수정당 계열에서 모바일투표는 도입되지 않았고, 체육관 투표라 불리는 현장투표로 당 지도부 선거를 하였다.
권성동은 “모바일 투표 도입 시 30%대 투표율이 50·60%대로 상승할 것”이라며 당원의 참여율 향상을 위해 이를 적극 추진하였으나, 친박 진영에서는 조직력과 동원력이 친박계보다 약한 비박계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지금은 태극기 세력의 거두인 조원진은 “지난 총선에서도 생소한 상향식 공천을 한다고 당이 아주 혼란스러웠는데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가 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느냐”는 발언을 하였다.
셋째, 총선 공천에 탈락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주호영, 윤상현, 장제원, 안상수, 이철규, 강길부 등 7명의 일괄 복당을 관철시켰다.
이 때 청와대와 친박은 유승민이 포함된 일괄 복당은 절대 안된다며 청와대의 뜻으로 앉힌 김희옥 위원장을 통해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비대위에 안건을 올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던 사무총장 권성동이 총대를 메고 이를 상정하였고, 당시 원내대표인 정진석과 함께 일괄복당을 의결하였다.
이에 격앙된 친박계는 유승민 복당의 취소를 운운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왼쪽부터 권성동 새누리당 사무총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러한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권성동은 친박계의 거센 사퇴 압박을 받게 되었고, 결국 임명된지 3주 만인 6월 23일 자진사퇴의 형식으로 경질되었다.
권성동이 비대위 사무총장 시절 추진한 안건들이 제대로 실현되고 당내 불협화음 없이 마무리되었다면, 이후 보수몰락이 없었거나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총선 패배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한 총선백서가 나왔다면 당원과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고, 모바일투표를 도입했다면 당장 그 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2016년 8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이정현이 4만4421표를 얻어 당대표로 당선되었고, 정병국·김용태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비박계 단일후보로 출마한 주호영은 3만 1946표를 얻어 2위에 그쳤다.
주호영은 당선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기대되었고, 합동연설회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4번타자 퍼포먼스를 하였으나 이정현 돌풍에 고배를 마셨다.
또한 강성 친박인 조원진·이장우의 최고위원 당선으로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친박계가 당을 장악하게 되었다.
결국 모바일투표는 수년 뒤 도입이 되었고,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모바일투표 100%로 치러져 45.
36%라는 역대급 투표율을 기록하며 이준석 당대표 탄생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온 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복당에 성공한 유승민, 주호영, 장제원 등은 이 때 권성동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되었고 이후 바른정당 창당 동지로 함께하게 된다.
20대 총선 결과가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단 1석 차이였기 때문에 원구성 협상 전에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이 되었다면,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 되어 국회의장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박계의 반대로 미뤄지게 되었고 결국 민주당 정세균이 국회의장을 맡게 되어 새누리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잃는 큰 원인이 되었다.

 


2.0.5.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박근혜 탄핵 소추위원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통상적으로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가져가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민주당이 가져갔어야 하나, 이 때는 민주당이 제1당으로 국회의장을 가져갔기 때문에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이 가져가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2016년 가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12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이 소추위원이 되었다.
헌법재판소법과 국회법상 탄핵 심리 과정에서 검사 역할을 하는 국회 측 소추위원을 국회 법사위원장이 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했던 변론에서 청구인 좌석에 항상 앉아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탄핵 심판에서 박근혜의 파면선고를 이끌어내기까지 여야 법사위원들과 잘 협조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추위원장직을 책임 있게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왼쪽부터 김관영 전 의원(국민의당), 권성동 법사위원장(새누리당), 이춘석 전 의원(더불어민주당)한편 언론에서는 ‘탄핵소추위원장’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데, 엄밀히 말하면 법에는 근거가 없는 표현이다.
헌법재판소법 제22조 제1항에 의하면 “탄핵심판에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이 소추위원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소추위원의 중책을 수행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권성동은 이후 태극기 부대 등 강경 우파지지자들로부터 '탄핵5적'으로 불리며 소위 집토끼로부터 비토를 당하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2.0.6. 바른정당 창당

 

2016년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가칭)개혁보수신당에 합류했다.
개혁보수신당은 창당작업을 거쳐 2017년 1월 바른정당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창당과정에서 권성동은 김세연과 함께 정강정책·당헌당규팀장을 맡아 신당의 기틀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였다.
주로 정강정책은 김세연이 현재 국민의힘 대표인 이준석 등과 함께 논의하여 개혁보수의 가치를 담았고, 당헌 당규는 권성동이 신당으로 넘어온 전직 새누리당 사무처 요원과 함께 만들었다.
2017년 5월 2일 다른 비유승민계 국회의원들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에서 자유한국당 복귀를 선언했다.
5월 6일 홍준표 대통령 후보가 당헌당규상 당무우선권을 근거로 이들의 복당을 지시한 것을 두고 당내 작은 내홍을 겪다가,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이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하였다.
5월 12일, 마침내 동반 탈당한 11명의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복당 절차가 완료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권성동은 바른정당계에 포함되지만, 나중에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합당하여 탄생한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이 다시 분화된 새로운보수당 계열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개혁보수의 가치에 동의하지만, 대선승리를 위해 보다 큰 정당과 지지율이 높은 후보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른정당에서 활동하는 동안 지역구 강릉에서는 3선에 성공한 최명희 시장이 자유한국당의 당협위원장이 되었고, 권성동의 지역 내 정치적 라이벌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2017년 12월 홍준표 전 대표가 ‘현역의원 우선’ 원칙을 천명하며 강릉시 당협위원장에 권성동을 복귀시켰고 최명희는 이에 반발하여 당원 1004명을 데리고 집단탈당을 단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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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황교안, 나경원 지도부 체제

 

2018년 12월 12일 나경원이 김학용을 꺾고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나경원은 원래 비박계로 분류되었지만, 탄핵정국 당시 새누리당에 잔류하며 무계파를 주장하였고 2018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친박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 당선에 성공하였다.
이 때 권성동은 당내 신망이 두텁고 국회 법사위원장을 하며 대여 투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유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후술하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사건에 얽혀 출마를 포기하였다.
2019년 2월 27일 황교안이 오세훈을 꺾고 자유한국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전당대회의 여론조사는 오세훈 50.
2%, 황교안 37.
7% 였으나, 당원투표를 합산한 전체 결과는 황교안 50.
0%, 오세훈 31.
1%, 김진태 18.
9%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역대급으로 벌어진 전당대회로서 이후 자유한국당은 황교안-나경원 지도부 체제하에서 급격히 오른쪽으로 치우친 노선을 가게 된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수시로 광화문에서 집회를 개최하였는데, 때로는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 인사들이 개최한 집회와 참석자들이 겹치면서 국민들에게 극우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되었다.
국회에서는 4+1 협의체가 밀어붙인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아무런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내용으로 하는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등을 여당이 원하는대로 모두 내주게 된다.
이 때 권성동은 협상주의자로서 공수처법이나 검경수사권조정법은 바른미래당과 조율하여 독소조항을 뺀 절충안을 낼 것을 제안하였고,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은 내어주더라도 게임의 룰인 선거법의 일방적인 통과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홍준표의 주장과 일치한다.
홍준표는 삭발과 단식으로 청와대 앞에서 농성 중이던 황교안을 찾아가 이런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여야 패스트트랙의 첨예한 대립 속에 협상을 위해 교섭단체 3곳의 실무협상 책임자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자유한국당 권성동, 바른미래당 권은희가 임명되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권성동과 권은희가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의 절충안을 같이 발의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장외투쟁만 하다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21대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2.0.8. 21대 총선 공천탈락과 무소속 당선

 

황교안 전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체제로 21대 총선 공천이 시작되었고, 전폭적인 물갈이가 단행되었다.
3선 이상의 네임드급 의원 상당수가 공관위의 압박에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공천에 탈락했다.
그리고 본인의 대권 행보에 걸림돌이 될 만한 중진들을 견제하고 친박, 친황을 심으려는 황교안과 새로운 인물을 공천하려는 김형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윤상현, 김태호, 김재원, 정우택 등 황교안과 거리가 먼 친박 의원 대다수가 컷오프 되었고,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소위 김무성, 유승민, 김성태, 권성동, 홍준표, 정병국 모두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제21대 총선에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대거 물갈이를 시켜 신진을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견해와 기계적으로 양극단을 잘라내고 선거구 돌려막기를 해 총선 대패의 원흉이 되었다는 견해가 나뉜다.
물론 초반이나 막판에는 황교안이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앞서 언급한 본인에게 거슬리는 중진들을 컷오프하고 김선교 , 민경욱 등 친박, 친황 인사를 심으려고 했다.
어쨌든 권성동도 탄핵의 책임을 물어 “시대의 강을 건너려고 하면 밟고 지나가야할 다리가 필요하다”는 김형오의 논리에 의해 공천에 탈락하였고, 강릉 선거구에는 박근혜정부 마지막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홍윤식이 공천되었다.
권성동은 이에 불복하여 무소속 출마를 단행한다.
한편 최명희 전 3선 강릉시장도 홍윤식 공천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를 했고, 강릉선거는 보수후보 3명(권성동,최명희,홍윤식) 대 민주당 김경수(1969) 후보의 싸움으로 선거전이 시작되었다.
선거 초반 보수 표 분열로 인해 민주당 김경수 후보의 우세가 지속되었고 강릉이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선거구 중 하나로 꼽히며 관심을 많이 받았으나, 결과는 권성동이 40.
84%를 득표해 38.
76%를 득표한 김경수 후보를 2500여 표차로 겨우 승리하였다.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은 홍윤식 후보는 11.
28%, 최명희 후보는 7.
7%에 그쳤다.
특히 홍윤식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미래통합당 후보 중 전국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해, 김형오 공관위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권성동은 기호 10번을 달고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며 정치생명이 끝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홍·태·상·동’ 이라는 보수야권의 무소속 중진 4인방으로 정치적 위상을 급격히 높이게 되었다.
김형오 또한 총선 이후 본인이 쓴 저서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권성동을 역경을 뛰어넘은 정치인이라 평가하였다.
.

 


2.0.9. 국민의힘 복당 이후 정치여정

 

4선 의원이 되었지만 무소속 신분으로 21대 국회를 시작하였다.
총선 참패로 들어선 김종인 비대위에서 특히 홍준표 전 의원의 복당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기 때문.
하지만 9월 17일 무소속 4인방 중 권성동이 가장 먼저 복당에 성공하였다.
4인방 중 유일하게 당선과 동시에 복당원서를 제출했고 당내 반대 의견이 없으며 특유의 전투력이 필요했기 때문.
이후 김태호가 2021년 1월 7일 복당했고, 이준석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직후 6월 24일 홍준표가, 8월 5일에 윤상현이 복당하여 무소속 4인방이 모두 복당을 완료하였다.
한편 2021년 상반기, 주호영의 뒤를 이을 새 원내대표로 김기현, 김태흠, 유의동과 경쟁했다.
당초 김기현-권성동 양강구도가 예상되었으나 1차 투표 결과 김기현이 34표, 김태흠이 30표, 권성동이 20표, 유의동이 17표를 득표해 좌중을 술렁이게 했다.
4월 30일 김태흠은 이날 투표에 앞선 주도권 토론에서도 강경 투쟁을 주장하고 과거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문제삼으며 전통적 우파 정서를 대변했다.
반대로 권성동·유의동은 과거와의 단절과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개혁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권성동은 특히 20대 국회에서 당이 강경투쟁 일변의 노선으로 민심과 멀어져 간 점을 지적하며 “강경한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민심을 바라볼 것”을 주창했다.
또한 “조국의 위선은 싫지만 광화문 집회에 모인 일부 강경 지지층의 발언이나 방식을 보고 '이건 아닌데' 했던 소위 중도층의 존재를 우린 애써 외면했다”는 말을 하며 중도확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투표결과에서는 구 친박의 표가 결집하고 특유의 스킨십으로 과거 강성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김태흠이 30표를 얻는 파란을 일으키며, 같은 바른정당 계열로 지지표가 겹치는 권성동·유의동을 탈락시켰다.
2차 투표에서는 예상대로 이 둘의 표가 계파색이 엷은 김기현에게 몰리며 66표를 얻은 김기현이 34표에 그친 김태흠을 꺾고 새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사퇴 이후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레이스에서 중반부터 "대선 관리에 나이는 상관없어" 등의 발언으로 이준석 후보를 지지하였고, 주호영 후보를 밀던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이준석 후보를 집단적으로 지원하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이준석은 여론조사 1위를 바탕으로 당원투표에서도 나경원 후보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결과로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2.0.10. 윤석열과의 만남, 제20대 대선 승리의 주역

 

2021년 5월 29일에는 유력 대통령 선거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강릉시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도 해서 윤석열 대망론에 관심이 큰 야당 지지자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 만남은 윤석열 총장이 국민의힘 정치인을 처음 만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둘은 동갑내기 절친으로, 윤석열의 외가가 강릉시라고 한다.
6월 29일 윤석열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 때에도 윤석열의 오른쪽에 위치하여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후 윤석열의 대선행보를 도왔다.
윤석열 캠프에서 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최측근으로 행사에서 함께 수행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그러나 경선 중반 장제원 의원이 아들의 음주운전 논란으로 인해 종합상황실장직에서 사임하면서 권 의원이 그 역할을 이어받은 종합지원본부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2021년 11월 5일,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경선에 승리하며 중후반 캠프를 실질적으로 이끈 권 의원이 본선까지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캠프를 이끌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2021년 11월 8일 후보 비서실장으로 이동하였다.
이렇게 하향이동한 것으로 인해 11월 중순 이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할 김종인 전 위원장을 위해 선대위 주요 직위를 비워준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2021년 11월 15일,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간 합의로 신임 사무총장에 내정되었다.
사무총장 등 인선을 두고 두 사람 간 갈등설이 있었는데, 합의가 나온 이후 갈등설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11월 18일 정식으로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2021년 12월 중순부터 신지예 영입으로 인한 2030 지지율 폭망,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의 갈등국면 등 총제적인 위기상황을 맞았고, 2022년 1월 2일 권성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본인을 포함하여 6명의 선대위 총괄본부장의 일괄사퇴를 윤석열 후보에게 건의한다.
당시에는 선대위 해체를 김종인 위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후보와 가까운 권성동이 총괄본부장들의 사퇴를 추진하고 있었고, 2022년 1월 3일 김종인이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후보는 연기만 해달라"는 발언이 계기가 되어 윤석열 후보는 선대위 해체를 결심하고 실무진 위주의 슬림한 선대본부로 방향을 완전히 틀게 된다.
선대위 해체와 함께 권성동은 사무총장 직까지 사퇴하였다.
이 당시 지지율 하락에 대한 책임을 후보의 측근으로서 온전히 지며 여론의 비난 또한 크게 받았는데, 이른바 폰석열 사건으로 불리는 1월 5일 청년간담회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탓이 크다.
하지만 이 청년간담회는 당시 선대위 국민소통본부장이던 박성중 의원의 주도로 열린 행사로, 윤석열 후보는 참석 미정이었고 권성동은 박성중 의원의 요청으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가게 된 것이라 한다.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의 신지예 영입 이후 극도로 나빠진 청년 민심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었는데, 권성동은 사건이 터지자 본인이 구성한 2030 메시지팀의 건의로 후보가 직접 사과문을 쓸 것을 제안했고, 윤석열 후보는 페이스북으로 "박성중 의원의 부적절한 사과문에 대해 대신 사과한다.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데 우리편 청년과 다른편 청년을 편가르면 되겠나.
지금껏 저의 행보에 있어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도 철저하게 반성하겠다"며 굉장히 낮은 자세의 메시지를 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1월 6일 '성범죄처벌강화, 무고죄처벌강화'로 시작된 한줄 공약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전의 최대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권성동이 대선이 끝난 이후 TV조선 뉴스트라다무스 등에서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선대위 해체 과정에서 후보 메시지팀을 전원 2030으로 구성하고 페이스북 한줄 공약 기획, 청년보좌역 및 청년실무진들의 의견을 후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여 대선승리의 숨은 공신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선거판을 주도했던 윤석열 후보의 페이스북 한줄 공약 전략이 당초에는 이준석 대표의 아이디어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선대본부 내의 청년실무진과 선대본부 외부 청년자문그룹의 아이디어였고 권성동 의원의 제안으로 윤석열 후보가 결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준석 대표는 이와 별개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AI윤석열과 쇼츠 공약 제작을 주도하며 대선 승리에 공헌하였다.
0.
73% 격차로 대선이 끝난 직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2030의 지지가 생각보다 적었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전략이 실패했고 이준석 대표에게도 책임을 묻는 지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왔으나, "尹 당선 주인공은 2030…젊은 여성 득표도 역대 최다"라는 권성동의 정리 메시지 하나로 당내 이견이 정리되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론에도 "여가부 폐지 공약, 시대정신 따른 尹 결단"이라며 깔끔하게 정리하여 당내 이견을 잠재우려 하고 청년들의 손을 들어줬으며, 정권교체 성공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나 정부의 어떤 직책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조용히 의원 신분으로 서포트에만 주력할 뜻을 내비치는 등, 대선 과정에서 상처입은 이미지가 실제 자세한 사정이 밝혀지며 극적으로 회복되는 중.

 


2.0.11. 국민의힘 원내대표

 

환호하는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2022년 4월 8일, 국회에서 권성동 의원과 조해진 의원이 후보로 출마한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가 열렸다.
투표 결과, 참석 102표 중 권 의원이 81표를 얻어 21표에 그친 조 의원을 크게 앞서며 제3대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5년 만의 집권여당을 맞은 국민의힘의 첫 원내대표이며 극단적 여소야대 정국에서 맡게 된 여당 원내대표인 만큼 여야 협상과 중재, 정부와의 협력 과정에서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전망이다.
때문에 4선 의원으로서 국회에서 협상 능력이 강한 점과, 당 내에서 윤석열과의 관계가 가장 돈독한 인물인만큼 당정관계에서도 강점이 존재 한다는 점에서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로서 적합하단 평가가 많았다.
특히나 국민의힘이 출범한 직후 초대, 2대 원내대표 모두 호평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던 만큼 본인 또한 "윤석열 정부 집권 1년차 원내대표로서 막중한 책무에 걸맞은 책임감으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순항하도록 야당과의 협치에 더욱 더 정력을 쏟고 어려운 정치 환경을 헤쳐나가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원내대표가 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4월 말 국회의장 박병석이 제시한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 서명을 했다.
이후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 거센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서명 후 문제적 인터뷰가 나오자 그 수위는 한층 더 거세지고 있다.
결국 당원게시판과 유튜브 채팅창을 가리지 않고 어마어마하게 욕을 얻어먹는 중이다.
이후 국민의힘도 의원총회를 통해 해당 중재안을 추인했다.
당시에는 윤석열 인수위측도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준석 대표 또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했으나 이후 지지층의 비난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질 않자 이준석 대표가 말을 바꾸어 25일 최고위원회 표결 안건으로 등재시켜 제동을 거는 시도를 하였고, 최고위에서 중재안 거부 및 재논의가 결정되었다.
이후 거센 당내비판에 민주당이 주장한 검수완박 초안과는 완전히 다른거라며 주장하며 3번 사과 했으나 당연히 이로 잠잠해질리는 없었다.
이에 민주당은 제1야당 국힘이 중재안을 합의를 취소하면 자신들은 즉시 초안을 강행하겠다며 나서면서 진퇴양난이 되었다.
결국 중재안 거부로 최종결정이 나 합의가 파토나자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중재안 합의를 해놓고 무산시켰다는 명분으로 야심한 밤 국힘 의원들이 없는 사이 법사위를 열어 15분만에 승인시키는 날치기 통과를 당하였다.
검수완박 저지에 너무 무능한 모습을 보이다보니 당내에서도 사퇴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종합하면 중재안 수용 결정은 권성동의 독단이 아닌 국민의힘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았던 사안이며 합의 직후 이준석 대표 또한 최선이었다고 평가했던 결정인데 당내 반발이 극에 달하자 합의 파기를 위한 희생양격으로 당내외적인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모양새이다.
실제로 국민의 힘이 태도를 바꾼 것은 윤석열의 후계자 격인 한동훈의 반대가 나타나자 갑자기 태세를 바꾸어버린다.
인수위 마저 찬성 했다는 것은 윤석열도 나름 찬성 쪽이라는 것 인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한동훈의 행동이 한몫 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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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선거연령 18세 하향 반대 논란

 

2017년 초 ‘선거연령 18세’ 하향 논의가 있자 “고3 학생이면 공부나 해야지 선거판에 끌어들여서야 되겠나“는 발언을 하였다.
실제로 이 당시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을 함께 제안했던 개혁보수신당 측에서 그 제안을 하루만에 철회해 같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을 공약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등 다른 야당들은 "국방의 의무를 앞둔 저들의 경우에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나" 같은 반응 등을 내보이며 반발하였다.
권성동은 이런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찬성하는 측은 OECD국가 중 대부분이 18세가 투표권이 있다는 논리를 댄다.
그렇게 투표권이 있는 나라를 보면 18세에 사회인이 된다.
그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나이에 독립하기 때문에 자기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18세면 미성년자다.
법률행위 할 때는 부모가 대리권을 가지고 있다.
만일 18세로 인하한다면 성인 연령부터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권만 떼서 생각 할 문제가 아니다.
논의할 정계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위에서 야당과 타협해야 할 문제다.
또 민주당이 순수한 마음이겠나.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18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고 본다.
”.

 

2.2.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강원랜드 교육생 공개채용 과정에서 인사담당자에게 의원실 인턴 비서 등 11명을 채용하도록 요구해 채용업무를 방해한 혐의와 이 과정에서 최홍집 전 강원랜드 사장에게 감사 무마 등의 청탁을 받았다는 혐의, 본인의 선거운동을 도운 고교 동창을 강원랜드 사내이사로 지명하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았다.
2016년부터 검찰수사가 시작되어 2017년 2차 수사에 이르기까지 혐의 입증을 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하였으나,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출범한 ‘강원랜드 채용비리 특별수사단(양부남 단장)’에 의한 3차 수사로 권성동은 2018년 7월 16일 업무방해, 제3자뇌물수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9년 6월 24일 서울중앙지법은 특별수사단이 제기한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당시 강원랜드에 대대적인 부정청탁이 존재했음은 인정하였으나 권성동 의원이 이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권성동 의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
"고 진술한 최홍집 전 사장 등 관련자들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 검찰이 항소하였으나 2020년 2월 23일 서울고등법원도 무죄판단을 유지하였다.
실체적 진실은 모르겠지만 검사가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2022년 2월,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확정하였다.

 


2.3. 김오수 전 검찰총장 자진사퇴 압박 논란

 

대선 후 MBC 라디오에 출연하여 김오수 전 총장에게 자진사퇴를 압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초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한만큼 김 총장 본인이 사퇴 의사를 먼저 밝히지 않는한 남은 임기를 지켜줄 것이란 분석이 나왔지만 오히려 검찰 인사에 개입하려는 행동이 오히려 윤석열의 핵심 관계자로부터 나오면서 설왕설래가 오고갔는데 논란이 커지자 권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과 상의한 게 아니라 100% 나의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김오수 전 총장은 자진사퇴 압박에 선을 긋고 "검찰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은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데 후배 검찰총장의 거취를 압박했다가는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때문인것으로 보인다.
당장 윤 당선인 본인도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및 여당 더불어민주당 일각으로부터 사퇴 공세를 받자 국정감사에 직접 나와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바 있기 때문.
그러자 권성동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2021년 국정감사에서 김오수 총장이 "대장동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겠다.
대충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을 소환하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관련자 세 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총장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업적에 대한 국민과 후배들의 평가는 평생을 따라다닌다"며 일침함과 동시에, 과거의 올곧은 검사의 모습으로 돌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다소 톤을 낮췄다.
권 의원의 과거 법안이 회고되면서 내로남불 논란이 커졌었는데,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검찰총장의 법정 임기를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그 이전에도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을 수차례 발의했는데 “검찰총장의 임기를 4년으로 해서 검찰 인사 요인을 최대한 줄이면서 검찰 인사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을 막음으로써, 검찰 인사권을 매개로 정치권력과 검찰이 유착해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수사를 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예방해야 한다”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김오수도 민주당의 검수완박 일방적 추진 때문에 사퇴를 하며 권성동의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
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오수 전 총장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아 앞을 알 수 없게 되었다.

 

2.4. 안철수 국무총리설 견제

 

권성동은 2022년 3월 23일 라디오에 출연해 "안철수 국무총리까지 가진 않을 것, 총리 생각했다면 인수위원장 맡지 않았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당시 안철수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었기에 권성동의 발언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후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당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권성동이 예측(견제?)한대로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직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2.5.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논란

 

2022년 4월 국내 여론과 당정 간 합의도 없이 더불어민주당과의 검수완박 중재안을 합의해버려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곧 여당이 될 정당의 원내대표라 해도 도저히 수습을 못할 정도의 초대형 사고를 친 셈.
여기서 한 술 떠서 자신이 합의를 이뤘다고 자화자찬하며 논란을 더 키웠다.
다만 일부에서 몰고 가듯 권성동 개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은 아니며 무려 국민의 힘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중재안이었고 추인 직후 시점까지만 해도 인수위 또한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
"고 밝혔으며 이준석 대표 또한 "절반의 성공한 협상이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고 평가한 바 있다.
이후 비판 여론을 이기지 못해 사과문을 세 차례나 개시했지만, 당연히 여론이 잠잠해질 리 없었고, 결국 이준석 대표의 재검토 제안에 동의하면서 민주당에 명분과 실리를 모두 넘겨주는 최악의 결과가 됐다.
윤석열 당선인과 독대할 때 "원래대로 돌려놓으라" 라는 말을 들음으로써 합의안 파기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모양새다.
권성동이 중재안에 합의한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한 '의석 수 부족' 역시 과거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단식투쟁으로 드루킹 특검을 쟁취한 사례와 대조되며 까이고 있다.
1 2결과적으로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여건이 형성되었음에도 '의석에서 밀린다', '거대 야당 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했다'는 이유로, 그것도 법안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이나 똑같이 법안에 반대하던 정의당보다도 제일 먼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덥썩 받아들여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검수완박 대치 상황을 더불어민주당에게 유리하게 몰고 갔고, 사퇴 압박까지 받으며 대차게 까이고 있어 본인, 국민의힘 모두한테 최악의 악수가 되었다.
문제는 당내 문제이다.
곧 윤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권력개편이 시작될 텐데 만약 법이 통과되면 이에 대한 분노는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권성동에게 갈 확률이 높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중재안을 받아들인 정당에 맞춰 본회의를 열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 더불어민주당은 바뀐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고 국민의힘이 위헌 요소와 문제점을 지적해 명분을 지켰다면 저지는 불가능해도 더불어민주당과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합의 전까지는 중립적 입장을 내놓았다.
이를 명분 삼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을 압박해 법안이 통과되어도 검수완박 시행령과 대통령령으로 어떻게 해서든 약화 시켰겠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합의를 명분 삼아 더불어민주당이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보수층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내 소장파 정치인들마저 졸속 통과에 반대했고, 진보주의 정당인 정의당조차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합의로 모조리 날려버린 데다 결과적으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고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공포되었기 때문에 본인의 사감 여부를 떠나서 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한나라당
2009 - 2012
정계 입문
새누리당
2012 - 2016
당명 변경
무소속
2016 - 2017
탈당
바른정당
2017
창당
무소속
2017
탈당
자유한국당
2017 - 2020
복당
미래통합당
2020
합당
무소속
2020
공천 탈락 불복으로 탈당
국민의힘
2020 - 현재
복당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9
하반기 재보궐선거
강원 강릉
한나라당
34,834 (50.90%)
당선 (1위)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57,444 (60.78%)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4,359 (57.15%)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
49,618 (40.84%)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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