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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부인/나이/자녀/재시/재산/키/연봉/재혼/딸들/프로필 -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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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No. 20
이름
이동국
李同國 | Lee Dong Gook
출생
1979년 4월 29일 (43세)
경상북도 포항시
국적
대한민국
본관
경주 이씨 (慶州 李氏)
신체
187cm, 86kg, A형, 280mm
학력
포항제철동초등학교 (졸업)
포항제철중학교 (졸업)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
위덕대학교 (사회과학과 / 학사)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방송인, 축구 해설위원
프로 입단
1998년 포항 스틸러스
소속 클럽
포항 스틸러스 (1998~2007)
SV 베르더 브레멘 (2001 / 임대)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05 / 군 복무)
미들즈브러 FC (2007~2008)
성남 일화 천마 (2008)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20)
주발
오른발 (양발)
종교
무종교
국가대표
105경기 33골 (대한민국 / 1998~2017)
기타
CJ ENM (2021~ / 해설위원)
등번호
대한민국 대표팀
11, 12, 18, 20, 21
포항 스틸러스
33, 20, 10
SV 베르더 브레멘
21
광주 상무 불사조
10, 20, 46
미들즈브러 FC
18
성남 일화 천마
22
전북 현대 모터스
20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가족
2남 1녀중 막내
아버지 이길남(1949년생), 어머니 김명자(1949년생), 누나, 형#, 외조카 배재익
배우자
이수진(1979년 7월 27일생)(2005년 결혼 ~ 현재)
자녀
이재시, 이재아(2007년 8월 14일생)
딸 이설아, 이수아(2013년 7월 18일생)
아들 이시안(2014년 11월 14일생)
등번호
대한민국 대표팀
11, 12, 18, 20, 21
포항 스틸러스
33, 20, 10
SV 베르더 브레멘
21
광주 상무 불사조
10, 20, 46
미들즈브러 FC
18
성남 일화 천마
22
전북 현대 모터스
20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가족
2남 1녀중 막내
아버지 이길남(1949년생), 어머니 김명자(1949년생), 누나, 형#, 외조카 배재익
배우자
이수진(1979년 7월 27일생)(2005년 결혼 ~ 현재)
자녀
이재시, 이재아(2007년 8월 14일생)
딸 이설아, 이수아(2013년 7월 18일생)
아들 이시안(2014년 11월 14일생)

 

1. 소개

 

이동국은 영원히 이동국2020우승

 

1.1. 대회 기록

 

    • 포항 스틸러스 (1998~2007)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8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8
    •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20)K리그1: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20FA컵: 2020AFC 챔피언스 리그: 2016
    • K리그1: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20
    • FA컵: 2020
    • AFC 챔피언스 리그: 2016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AFC 유스 챔피언십: 1998
    • AFC 유스 챔피언십: 1998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FC 아시안컵 3위: 2000, 2007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10
  • AFC 아시안컵 3위: 2000, 2007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10

 


1.2. 개인 수상

 

    • AFC 아시안컵 득점왕: 2000
    • AFC 아시안컵 토너먼트의 팀: 2000
    • AFC 아시안컵 역대 베스트 XI: 2019
    • AFC 아시안 올스타: 2000
    • AFC 유스 챔피언십 MVP: 1998
    • AFC 유스 챔피언십 득점왕: 1998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10
    • AFC 챔피언스 리그 MVP: 2011
    • AFC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2011
    • K리그1 MVP: 2009, 2011, 2014, 2015
    • K리그1 신인상: 1998
    • K리그1 득점왕: 2009
    • K리그1 도움왕: 2011
    • K리그1 팬타스틱 플레이어: 2009, 2011, 2012, 2014, 2015
    • K리그1 베스트 XI: 2009, 2011, 2012, 2014, 2015
    • K리그1 올스타전 MVP: 1998, 2001, 2003, 2012
    • K리그 공로상: 2020
    • K리그 베스트 포토상: 2020
    • KFA 올해의 골: 2004 (독일 전)
    • KBS배 춘계고교대회 MVP: 1998
    • KBS배 춘계고교대회 득점왕: 1998
    • 대통령 표창: 1999
  • 키카특별상: 1998
  • 프로축구 박스포상 공로상: 1998
  • 시도대항 중고축구대회 MVP: 1996
  • 차범근 축구상 장려상: 1991
  • 동아스포츠대상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상 : 2014
  • KBS 연예대상 최고 엔터테이너상: 2015
  • KBS 연예대상 버라이어티 부분 남자 최우수상: 2016

 

1.2.1. 클럽

 

  • 548경기, K리그 통산 출전 3위
  • 228골, K리그 통산 득점 1위
  • 77도움, K리그 통산 도움 2위
  • 305포인트, K리그 통산 공격포인트 1위.
  • 37골, ACL 통산 득점 2위
  • 13골, FA컵 통산 득점 2위

 

1.2.2. 국가대표

 

  • 10골, 아시안컵 통산 득점 2위, 한국 선수로는 1위
  • 33골, 대한민국 A매치 통산 득점 4위
  • 105경기, 대한민국에서 13번째로 센추리 클럽 가입
  • 전대륙 상대 A매치 득점자

 


1.2.3. 클럽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8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5
7
0
0
9
4
-
1999
15
7
0
0
4
1
2000
7
4
0
0
1
0
2000-01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7
0
0
0
-
0
0
2001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7
3
2
1
0
0
-
2002
21
7
4
3
0
0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27
11
0
0
-
2004
19
1
2
0
4
3
2005
0
0
0
0
1
0
포항 스틸러스
17
3
3
0
7
4
2006
10
7
0
0
0
0
2006-07
미들즈브러
프리미어리그
9
0
2
0
0
0
2007-08
14
0
2
1
2
1
2008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10
2
0
0
3
0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29
21
4
4
3
1
2010
28
12
2
0
2
1
8
4
2011
29
16
1
0
0
0
8
9
2012
40
26
2
2
-
6
4
2013
30
13
2
2
8
3
2014
31
13
2
0
7
3
2015
33
13
1
1
7
4
2016
27
12
0
0
11
5
2017
30
10
1
0
-
2018
35
13
2
0
9
4
2019
33
9
0
0
   
2020
11
4
1
0
   

 


1.2.4. 국가대표

 

연령
출전
U-17
0
0
U-20
9
6
U-23
28
20
A대표
105
33
종합기록
142
59

 

2. 플레이 스타일

 

포항 시절과 외국 진출 시절에 잠깐 투톱으로 뛰긴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커리어를 원톱으로 뛰었다.
가장 특징적으로 발리 깎던 노인이라는 별명에 맞게 발리슛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슈팅 능력 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선수치고는 노장이 된 시점에서도 발목 힘과 슈팅력은 다른 어린 선수 이상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사실 발리슛이란 게 그저 떠있는 공을 갖다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발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다른 한 발만으로 정확한 임팩트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하체 피지컬이 요구되는데, 젊었을 때부터 허벅지 하나가 웬만한 여자 허리 둘레 급이었던 이동국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발리슛은 슛 중에서도 그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유럽 상위 리그 선수들도 경기중 발리 슛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제대로 임팩트하지 못해서 공이 민망하게 빗나가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특유의 슈팅 감각은 왼발, 오른발, 헤더 가리지 않으며 거기다 본인이 어떤 자세에 있고 어떤 공이 오더라도 원투 터치 이내에 위협적인 슛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독보적인데 오프사이드를 뚫는 능력이나 등지고 있는 수비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쇄도하는 능력도 국내 선수로는 최상급이다.
젊은 시절에는 묻지마 강슈터의 기질이 간혹 보였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개선되어 중거리 슛 등의 정확도도 상당히 높다.
이동국 하면 발리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중거리의 정확도와 슈팅센스는 정말 뛰어나다.
패싱력도 있는 편이여서 2011년에는 K리그 도움왕도 차지했었다.
시야가 넓어 경기중 미드필더 존으로 내려와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동료에게 좋은 공을 연결하기도 하며, 짬이 안 되던 2002년 이전에는 그의 패싱 능력을 눈여겨 본 국내지도자들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내려서 사용하곤 하였다.
포항 스틸러스에 파리아스 감독이 있던 시절에도 종종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곤 했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냈었다.
드리블 센스는 빈말로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과 노련함이 더해지면서 좋아지기는 했으나, 이번엔 신체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된 것.
젊은 나이일 때엔 우당탕탕 식의 치고 달리기도 종종 보여줬었으나, 나이가 들고 나서는 노련미를 활용해서 간단한 바디페인트로 슈팅각을 열거나 동료에게 연결하는 식의 플레이를 선호하였다.
활동력의 부족 역시 지적받는데, 이 자료를 보면 활동량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최근 국가대표 경기나 리그에서의 모습을 보면 활동량 부족에 대한 지적은 이미 지나간 얘기라 할 수 있다.
또한 심리적 압박에는 굉장히 약한 편이다.
심리적 압박에 강하다는 것도 축구선수의 엄연한 실력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것은 완벽한 국가대표 칭호를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움직임 자체는 그래도 비교적 멀쩡하게 가져가는 편인데, 슈팅이나 패스의 정확도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그것도 유명한 우루과이전 카페베네 슛처럼 판단 자체는 괜찮았고 차기도 적당히 찼는데 들어가기에는 아주 조금 모자란 그런 슛이 나오고는 한다.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때도 신나게 골대를 맞추다가 리드를 잡으니 그제야 득점을 터트린다던가 하는 등.
어렸을 때는 오히려 국대 해결사였는데 비난을 이길 정도까진 아니었던 듯하다.
이런 면은 클럽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이 돼서 유망주 시절 갔다 온 브레멘은 그렇다 쳐도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계속 실수가 나오면서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비판을 받고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해 더 자신감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크게 작용했고, 성남에서도 이동국의 영입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김학범 감독 밑에서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중동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큰손들의 영입 제한을 뿌리친 것도 스스로 이런 면을 깨달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젊었을 때는 피지컬을 활용하며 우당탕탕 부딪히는 플레이를 했지만 선수 말년 기준으로서는 스피드나 템포를 상당히 늦추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셰도우 스트라이커 비슷하게 변한 본인의 기질과 더불어 나이와 부상 탓이 크다.
비단 세계 무대에서의 얘기뿐만이 아니라, 이동국은 어린 시절부터 몸을 쓰면서 상대와 부딪히고 아군에게 공간을 가져다주는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내려간 자리에서 공간을 보거나 패스를 넣어주는 플레이를 더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는 한국에서도 몸으로 부딪히고 열어주는 플레이는 별로 시도하지 않았다.
박주영과 비교할 때 이런 점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동국에 대한 저평가에는 톱 외에는 거의 쓰기가 힘들다는 좁은 활용폭도 있다.
몸빵은 좋지만 스피드가 많이 떨어지고, 전북 시절엔 간혹 세컨톱으로 뛰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 임시변통으로 뛰는 정도였다.
톱으로 뛴다면 원톱, 투톱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만 원톱에서는 양 측면에 크랙형 선수가 있어야 장점이 극대화되는 타입이기도 하다.
전북이 대대로 양 날개 쪽에 최고급 외국인을 데려와 놓는 것은 이동국 혹은 김신욱을 살리기 위한 전술이기도 하다.
.

 


2.1. 대표팀 공격수들과의 호흡

 

    • 안정환황선홍 은퇴 이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를 꼽아보자면 제일 먼저 안정환이 있다. 이 시기는 코엘류와 본프레레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의 혼란기였다. 또한 안정환 역시 최전방 바로 밑에 위치시켜야 진가가 나오는 공격수이다 보니 계속 동선이 겹처서 안정환-이동국 투톱은 본프레레 시절 잠깐 시험해보고 금방 폐기해버렸다. 사실 이 때는 대표팀 상황 자체가 공격수에게 잘 보급해주지 못하는 개판이라서 이때 팀 전체의 문제로 두 사람이 어색한 사이였기도 했다.
    • 김은중연령별 대표팀에서 많이 뛰었는데 서로가 몸싸움이 되며 센스도 좋았기에 서로를 잘 이용하였고, 이 투톱의 활약덕에 대한민국은 1998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다. 다만 이 때를 제외하면 공식적인 경기에서 서로 투톱을 서본 적이 거의 없기에 진정한 꿈의 투톱이다. 현재도 김은중과는 매우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으며 이마발이란 1979년생/1998년 청소년 대표 모임에선 이 둘이 항상 투톱을 본다.
    • 박주영박주영이 어린 시절에는 몇 경기 같이 뛰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맞는 듯했다. 당시 박주영은 몸빵이 전혀 되지 않는 전형적인 날카로운 움직임을 장기로 삼는 처진 공격수였고, 전방에서 몸빵으로 비벼줄 수 있는 이동국과 적당히 잘 맞았다. 최강희호에서는 박주영과 이동국 투톱이 줄곧 선보이고 있으나, 역시나 효과는 전무하다. 유럽진출 이후 박주영의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져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애매해졌다. 거꾸로 이동국이 사이드로 빠지며 주변 선수와의 연계를 중시하는 선수로 바뀌어 이동국이 오히려 쉐도우 스트라이커에 적합해졌다. 이렇게 애매해진 상황 때문에 둘이 같이 경기를 뛸 때마다 한쪽이 침묵하거나 동반으로 침묵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특히 2013년 2월 6일 벌어진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에서는 그간 나쁜 여론을 인식한듯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플레이로 일관하며 각자 장점마저 내다버린 최악의 결과를 빚었다. 박주영은 지나치게 아래로 처져서 플레이를 하면서 공격에 가담할 기회 자체가 대폭 줄어버렸고, 이동국은 2선 공격수에게 패스 하느라 바빠 변변한 슛도 못날렸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최강희 감독도 두명을 조합하는 것에 대해 실패했다고 인정했으며 박주영-이동국 투톱은 국대에서 더 이상 시도되지 않았다.
    • 이근호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동국의 오프사이드 라인 깨기, 패스 배급은 이근호의 활동량과 승부욕, 저돌적 돌파를 살리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으며, 이근호도 울산에서 김신욱과 콤비를 맞출 때 보다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파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김신욱김신욱과는 선발 출장보다는 경기 중후반에 함께하는 편인데 김신욱이 완급 조절과 좌우 연계에 능하고 헤딩 싸움도 가세해 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다른 공격진이 속도와 활동량으로 측면을 파괴해주지 않으면 답답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동시에 선발 출전했었던 이란전의 경우에도 둘 다 할 만큼은 했는데 좋지는 않았다. 김신욱은 헤딩 경합을 했고 이동국은 내려가거나 내주거나. 전술 자체가 1선이 이렇게 내주면 2선에서 해결해 주는 식이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 이청용이청용과는 같이 뛸 기회가 많지는 않았으나 그저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박지성은 은퇴하고 박주영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공격 파트너들이 이청용의 움직임에 맞춰서 볼을 보급해주는 공격수가 필요해졌는데, 여기서 이동국이 좋은 모습을보여주지 못했다.
    • 손흥민손흥민과의 기회는 무척 적었으나 한준희는 이제까지 써 본 적이 없는 조합인데 의외로 이동국이 받고 뿌리면 손흥민이 달리는 그림으로 괜찮은 조합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평가했었다. 그리고 홍명보가 사퇴한 이후 처음으로 소집된 베네수엘라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실제로 슈틸리케호에서 이 조합은 손흥민한테 폐를 끼친다는 얼치기 팬들의 비난과는 달리 중앙에서 받으며 수비를 끌어당기고 측면으로 뿌려주는 이동국과 그 공을 측면에서 받으며 속도를 붙이는 손흥민으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이동국이 없는 손흥민은 고립되며 무득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신태용이 손흥민에게 딱 맞는 조합을 찾아냈다. 손흥민 자체의 공격력을 가장 잘 살린 조합은 신태용이 사용한 손흥민-이근호 투톱 조합이었고, 나중에는 애매하게 스트라이커와 투톱을 세우느니 구자철과 투톱을 세웠다. 이근호와 구자철의 공통점은 활동량과 오프더볼이 좋아서 손흥민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줄 수 있었다는 점, 윙어와 공미 멀티가 가능해서 권창훈, 이재성 등과 스위칭을 하며 상대 수비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국의 나이를 고려할 때 이런 활동량이나 멀티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거기에 대표팀은 장거리 비행을 해야하는 경우도 많아서 체력적 부담이 더 크다. 자기보다 13살이나 어린 손흥민의 시대까지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황의조가 기량적으로 만개하며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황의조 역시 스트라이커 치고 활동 범위가 매우 넓으며 움직임이 좋은 선수이고 보르도에서 윙포워드로 뛴 바 있다. 이런걸 고려하면 아무리 몸관리를 잘했어도 2010년대 이동국에게 손흥민 극대화와 득점력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어려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2. 부친의 병역비리 청탁 사건

 

이동국의 부친이 1998년에 병무청 직원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수법으로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해 적발된 바 있다.
기사 이동국의 부친 이길남은 병역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최종적으로 2천만원의 벌금형을 판결 받았다.
이동국 부친의 병역비리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대선후보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최초 제기하였던 김대업이었다.
관련기사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동국의 부친은 아주 적극적으로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비리, 불법, 청탁행위를 저질렀고 심지어 병역비리계의 대부였던 박노항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상당히 악질적인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했기에 초범에 전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천만이라는 거금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것.
이동국 본인은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특별한 상해나 질병이 없었음에도 몇차례나 부친의 병역비리 행각에 재검으로 화답했다는 점에서 의혹을 떨치기만은 어렵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선발에서 최종 탈락한 이동국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 선발되는데, 당시 논란이 매우 거셌다.
무엇보다 병역비리에 연루된 선수를 대표팀 선수로 선발하여 병역 특례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박주영이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한데, 꼼수에 가까웠던 박주영과는 달리 이동국은 엄연히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와 연루되었기에 실제 법무부나 병무청의 분위기는 몹시도 험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의 금메달을 위해서는 이동국이 꼭 필요하다는 축구계의 탄원이 이어졌고, 결국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되, 실패한다면 곧장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절충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4강에서 이란과 승부차기 끝에 패하여 금메달 획득은 실패로 끝났고, 병역비리에 연루된데다 병역 특례 기회까지 날려버린 이동국은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여 군에 입대한다.
이 걸개는 사실 이동국의 병역비리를 알고도 덮으며 그를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하려 했던 대한축구협회의 무책임한 태도와, 병역범죄에 연루되었음에도 병역 특례를 노리고 국가대표에 합류한 이동국의 뻔뻔함에 분노한 축구팬의 항의 퍼포먼스였다.
실제 이 두 사람은 해당 걸개를 걸기 전 PC통신 하이텔에 병역비리에 연루된 이동국은 대표팀 자격이 없는 선수였고, 그런 뻔뻔한 이가 결국 실패해 군입대하게 된 것은 정의로운 결과라며 항의 퍼포먼스를 펼치겠다고 공지했었다.
십 수년 전 당시에도 이동국의 병역비리 행각에 분노한 축구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인지 적당한 처벌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16년 후 장현수가 봉사활동 서류 조작 사건으로 국가대표 자격 영구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확실히 이에 비하면 가히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비리를 저지르고도 병역특례를 받을 기회를 받은 건 물론이요 국가대표 자격 박탈은 커녕 정지마저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축구계의 제 식구 감싸기와 2002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2년 후인 2004년에 많이 적발되었던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의 병역 비리에서도 당시 대중들의 반응이 요즘 정도로 격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과 비슷했다는 점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대중들은 병역비리에 연루되었어도 병역을 다 이행했다면 죄값을 치른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병역대상자가 많아서 이유 없이 면제가 나오는 제도도 있었으니만큼 거의 모든 남성을 징병하는 요즘처럼 병역에 민감하지 않았다.
축구계의 제식구 감싸기나 2002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후에 벌어졌던 다른 병역비리 사건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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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07 아시안컵 기간 숙소 무단이탈 및 룸살롱 출입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2007 아시안컵 축구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 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선수들은 룸살롱에서 접대부들과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2차까지 나가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유흥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는데, 이동국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은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하였다.
이에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 등 음주파문에 연루된 선수들은 사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당시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하였으며 서면 사과로 이를 대신하였다.
이동국은 국내로 복귀한 뒤 오랜시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당시 룸살롱 출입사건에 대해 침묵하였고, 몇년 뒤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 자신은 룸살롱에 출입한 것이 아니라 지인이 운영하는 일반 술집에 출입한 것이며, 맥주 한 잔 마신 것이 큰 잘못이 되었다며 항변하였고, 심지어 당시 미들즈브러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행동을 비판한 대중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뉘앙스로 적시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선수들의 성매매는 없었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뉴시스의 해당 취재에서도 접대부가 2차에서 성매매는 하지 않았으며 주로 한국인끼리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뉴시스 기사도 좀 자극적으로 써놨는데, 얼핏 읽으면 4인의 축구선수가 두 차례 유흥에 나선 것으로 착각할 수 있도록 쓰여져 있다.
이운재가 지인들과 새벽 5시까지 술을 먹었고, 그 다음 차례에 해당 4인방과 인도네시아 한인들이 새벽 3시까지 술을 먹었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이동국이나 다른 선수의 증언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엔 가장 자극적으로 취재했던 뉴시스의 취재에서조차 접대부들이 술, 이야기, 노래에 대해 말했지 성적인 것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상단 문단이 사실관계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편집되었던 것이, 룸살롱에 이어 2차까지 나갔다고 하면 누구나 성행위를 연상하기 마련이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상단 문단도 그런 뉘앙스로 편집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러 기사에서도 2차를 나가서 현지 한인들과 얘기하고 노래하고 술을 먹었다고 하지, 성행위에 관해서 언급한 기사는 없다.
접대부들이 성행위에 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2020년 은퇴 후 이동국의 아내인 이수진씨가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기사종합적으로 보자면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국가대표 자격으로 간 해외에서 숙소를 무단이탈하여 음주를 즐겼다는 점, 사후에라도 제대로 된 해명이 없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게 K리그 팬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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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옹호 발언 논란

 

승점삭감은 우리를 흔들지 못 한다.
선수들 가슴 한 구석에는 우리가 챔피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있었다.

 


3. 이동국에 대한 말, 말, 말

 

수비수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공격수는 바로 저런선수 입니다.
뒤돌아서 있던 공격수가 갑자기 슛팅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을 수비수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Football Asia, 청소년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이동국이 왼발터닝슛으로 골을 성공 시키자방금 제가 잘못 봤나요? 터닝슛이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먼거리를 날아갈 수 있죠? 아! 왼발 슛이었군요!?NHK, 청소년대회 결승전 이동국의 골의 리플레이를 보며한국팀에 저 소년은 누구냐?거스 히딩크, 98프랑스 월드컵 77분에 서정원과 교체투입 된 이동국이 다비즈와 코쿠를 따돌리며 35미터 가량 되는 거리에서 강력한 중거리포를 날려 반데사르 골키퍼도 깜짝 놀라 손끝을 스치듯 간신히 막은 볼이 포스트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자분명 부족한 게 많은 선수지만 나는 저 나이 때 볼을 저렇게 찰 수 있다는 걸 꿈도 못꿨다.
황선홍고교 시절, 같은 고등학생인 선수가 그렇게 한다는 걸 난 믿을 수 없었다.
차두리국가대표 18번을 물려주고 싶은 선수, 사위 삼고 싶은 선수는 이동국이다.
황선홍그 동안 너무 혹사당해 아직 몸상태가 좋지 않다.
지금은 훈련이 아닌 재활이 필요한 시기이다.
몸상태가 완전하지도 않은데 무리하게 계속 교체투입 시키고 훈련을 시키고 있어 부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만일 계속 이런식으로 혹사시켜 이동국이 재기불능상태가 된다면 히딩크를 가만두지 않겠다.
최순호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지금 대표팀엔 이동국이 꼭 필요하다 이런 선수를 지금같은 중요한 시기에 소속팀으로 보내 줄 수는 없다.
거스 히딩크, 부상당한 이동국을 혹사시키지 말아달라며 소속팀으로 보내주면 몸상태를 완벽하게 만들어 다시 대표팀에 보내주겠다는 포항구단의 요구에 대해.
그는 좋은선수이다.
그는 현재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선수를 경기에 출전시킬수는 없다.
경기에 뛸 수 없는 선수는 필요없다.
그러나 그는 한국최고 스트라이커이다.
거스 히딩크, 월드컵 직전 갑작스럽게 이동국을 엔트리에서 제외한 이유를 묻자두고 보십시오 제가 제 후계자로 이동국을 뽑은 이유를 여러분이 알게 될 것 입니다.
황선홍, 2003년 은퇴 기자회견할 때.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이동국.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남궁도단순히 보초를 서라고 해서 선 것이긴 하지만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동국 병장님의 지시였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정경호당연히 건방지고 거만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1년 프로에서 처음 마주하고 지금까지 5년동안 이동국에게 그러한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동국에게 건방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건방진 행동이 이동국한테 통용되지 않아서 하는 말일것이다.
김상록게으르다고 하는데 뭐가 게으른 건지 모르겠다.
이동국보다 게으른 선수는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있다.
오히려 이동국 보다 더 열심히 하는 선수를 찾는 게 더 어렵다.
김상식지금 당장 스페인, 이탈리아 1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
기술이 좋고 슈팅력은 최고다.
한국에 이런 스트라이커는 이동국 밖에 없다.
전술을 이해하는 머리도 좋다.
세르지오 파리아스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미국 월드컵 볼리비아 전의 실수는 나를 10년동안 따라다녔다.
이동국도 지금의 분위기가 그렇게 될까봐 너무 안타깝다.
황선홍저기에 순발력까지 있으면 그게 세계 최고 선수지, K-리그에 뭐하러 있어? 이동국이가 못한다고? 포항에서 이동국 보낸다고 하면 안 데려 갈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박종환 전 대구 FC 감독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부상으로 장기간 쉬워서 경기 감각이 떨어지더라도 90분 풀로 뛰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아서 하는 선수다.
허정무 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윙어들의 절망적인 크로스 때문에 너무 고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다른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본프레레 전 국가대표 감독이동국이 없어서다.
아니면 이동국 같은 선수가 없어서거나.
송종국만일 그가 팀에 있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텐데.
당시엔 부상중이어서 그를 제대로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움베르투 코엘류 전 국가대표 감독이동국은 어디서 슛을 때려도 골문으로 찰 수 있는 선수다.
말은 쉬워보이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몰디브전에서 이동국은 분명히 잘 했다.
컨디션만 좋았다면 10골도 넣었을 것이다.
김은중이동국 선수처럼 되고 싶습니다.
정조국고등학교 5년 선배님이지만, 반칙이 아니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주하는 순간 그런 생각이 그냥 들었다.
오범석공 주면 골 넣잖아.
근데, 이동국이 니 친구냐?.
김남일, ‘왜 오빠는 이동국한테만 패스해요?’ 라고 묻는 팬의 질문에.
그건 골이 아니라 예술이지.
나도 선수 생활하면서 골 많이 넣어봤고, 못 넣어 본 골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골은 못 해봤어.
나도 못한 걸 정말 그녀석이 했어.
최순호, 독일전 이동국의 득점에 대해.
한국의 두 번째 골은 내가 아닌 그 누가 있었어도 막을 수 없는 골이었다.
올리버 칸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에 정통 스트라이커는 이동국 밖에 없다.
황선홍독일 전과 쿠웨이트 전에서 나온 이동국의 골은 그것이 설령 우연이었다고 하더래도 경배해야 할 골이다.
” “마치 바티스투타의 슛을 보는 것 같다.
아시아에서 저런 슛을 찰 수 있는 선수가 있단 말인가?STAR TV어린 소년도 저런 발리슛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나의 특기가 발리슛이었다는 것이 다소 부끄럽게 생각된다.
펠레이동국 선수처럼 되고 싶습니다.
정조국최선을 다해 수비한다면 리그에서 내가 막지 못할 선수는 없다.
단, 이동국은 예외다.
이동국이 정말 미치는 날엔 무슨 수를 써도 막을 방법이 없다.
싸빅.

 

4. 이야기들

 

  • 본래의 한자 이름은 李東國이었는데, 2007년에 동녘 동(東)을 한나라 동(同)으로 바꿨다. 음을 그냥 내버려 두고 한자만 개명하는 경우는 사주팔자에 의해서 개명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동국의 한자 이름은 작명사주상 최악의 획인 26획이며, 결정적으로 이동국의 형 역시 東자를 쓰고 있어 집안에 東자를 쓰는 사람이 2명 있으면 안 좋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 때문에 계속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다고 판단해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同은 東보다 2획이 적어서 총 24획이 되는데, 극강의 획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획수로 본다.
  • 고등학교까지 포항에서 나온 진또배기 포항출신이지만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동국은 포항제철이 위치한 포항시 남구 출신으로 이 곳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포스코 노동자들과 더불어 해병대 1사단 본부와 포항공대가 있는 곳이라 포항인보다 압도적으로 외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다. 그래서 타지방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실제로 이동국 말고도 포항시 남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경상도 사투리가 정말 약하다. 1998년 갓 스타가 된 후 MBC 예능에 출연했을 때에는 "갸들 어디서 뭐 먹고 있는 거 아니가?" 정도의 옅은 방언을 구사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는 정말 거의 쓰지 않는 듯.
  • 2005년에 1997 미스코리아 하와이 미 이수진과 결혼했다. 2007년에는 쌍둥이 자매를 득녀. 참고로 2010년 결혼한 은지원의 前 부인이 이동국 부인의 언니인지라 은지원은 동서지간이 되었다. 1박 2일에 출연했을 때 자막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은지원이 2012년에 이혼을 하면서 지금은 남남사이. 2013년 또 쌍둥이 자매를 득녀하며 4자매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힐링캠프 녹화분에서 최근 아내가 또 임신해서 자녀를 다섯 둔 아버지가 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2014년 11월에 득남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자식 욕심이 많은 편이다(...). 이러다 축구팀 만들지도 모르겠다 훗날 막내 시안이의 아내 될 사람은 시누이만 4명인 하드코어한 시집살이가 예상된다.
  • 스티브 유와 친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스티브 유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동국과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동국을 “정자왕”이라며 직설적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었다.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가 끝난지 1~2년 정도 후 당대의 인기가수였던 김현정과 열애설이 퍼지기도 했다.
  • 2016년 7월 19일 김병지가 은퇴한 이후, 현역으로 남은 마지막 1998 월드컵 멤버다. 그리고 2020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1998 월드컵 멤버는 모두 은퇴했다.
  •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최연소로 월드컵 경기에 출전했다.
  • 한상균의 사진으로 인해 가장 많이 웃음거리가 된 사람.
  • MD5 배틀에서는 최약의 이름 중 하나.
  • 1999년에 마약 퇴치 홍보대사로 활동한 바 있다.
  • 미들즈브러에서 리턴한 뒤로 골을 못넣는 스트라이커에게 ~동궈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엘동궈(엘만데르)라든지 벨동궈라든지 2009/2010시즌의 즐동궈라든지...
  • 포항 팬들에게는 애증의 존재. 까임은 받아도 자기 새끼라고 열심히 실드를 쳐줬지만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하고 K리그 복귀할 때 자신들이 제시한 연봉보다 더 낮은 금액에 성남으로 가버려서 까로 돌아선 팬들이 많다. 이 웹툰을 참고하면 당시 반응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포항에서 먼저 계약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동국이 사인을 했으면 포항에 왔을 것이나 선수 본인이 거부하고 더 낮은 몸값으로 다른 팀과 계약을 맺었다. 윗 문서부터 계속 강조했지만 성남이 포항보다 더 적은 연봉을 제시했다. 차라리 성남이 더 많은 연봉을 줘서 떠난 것이면 대다수의 포항 팬들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동국 포항 시절부터의 포항 팬들은 이동국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구단에서 호의로 이적료 없이 영국에 보내줬고 더 많은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과 계약을 했으므로 사실상 구단에서는 섭섭하게 해 준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이적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더 적은 연봉으로...그리고 국대 혹사 때문이기는 한데 사실상 포항에서는 기여한 게 없다. 우승이나 개인수상 관련해서는 포항에서 신인왕을 수상한게 전부이다. 심지어 포항 소속으로는 득점 랭킹 상위권에도 들어간 적이 없다. 괜히 국대 나가서 다치고 오고 이랬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리그 팀에서는 연봉을 받으면서 국대 소속으로 뛰는 격이었고, 이에 포항은 이동국 대신에 실력도 경기 감각도 애매한 비주전을 지속적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짜증나는 존재였다. 이 시기 국대 선수를 보유한 클럽이 다 그랬지만 이동국의 국대혹사는 독보적이기 때문에 더욱.반면 성남 팬들에게는 증밖에 없는 존재이다. 08년 여름에 우승권 경쟁을 하던 성남이 야심차게 꺼낸 카드지만, 그 카드 때문에 성남은 완벽히 붕괴하였고, 김학범 감독마저도 사퇴하게 만들었다.
  • 반면 성남 팬들에게는 증밖에 없는 존재이다. 08년 여름에 우승권 경쟁을 하던 성남이 야심차게 꺼낸 카드지만, 그 카드 때문에 성남은 완벽히 붕괴하였고, 김학범 감독마저도 사퇴하게 만들었다.
  • 2013년에는 성남과의 경기에서 성남에 부상자가 발생해 공을 걷어낸 후 이동국이 성남 쪽으로 공을 돌려주려 했는데 너무 킥이 정확하게 들어가서(...) 골키퍼가 잡지 못해 졸지에 골이 들어가 버렸다. 이 때문에 잠시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전북의 최은성이 자책골을 넣어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괜히 고의로 슈팅을 했다면서 상대방 밀치고 퇴장당한 김태환만 나쁜 놈 되어 버렸다
  • 전북 팬들에게는 이장님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는 존재이다. 조재진이 전북에도 스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선수라면 이동국은 전북에서 부활하고 현재까지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호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진철 전 전북 선수 이후로 선수로선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인지라, 국대가서 멘탈 깨어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국대로 보내지 말자, 나 국대 안 볼래 같은 입장을 보이는 팬들도 있다. 물론 반대로 최강희 감독이랑 이동국 때문에 국대를 본다는 팬들도 있었다. 어쨌든 현재 국대와 그 국대(만 보는)빠들을 향한 전북 팬들의 증오에 최강희 감독과 함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수원의 곽희주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번은 곽희주vs이동국 스페셜 영상이 나온적도 있다. 곽희주 뿐 아니라, 경기내내 일대일로 들러붙고, 돌아서지 못하게 파울불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수비를 펼치는 유형과의 매칭에 상대적으로 약한데 심리적 견제에 약한 특유의 유리멘탈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K리그 경기를 보면, 대부분의 팀들이 전북과 붙을 때 이동국을 이런 방식으로 마크를 시키곤 한다. 문제는 전북은 리그 수위권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이 포진한 팀이기 때문에 이동국을 수비수 한 명이 전담하다보면 공간이 나고 그 공간을 누군가가 파고 들어 골을 넣는다는 점이다.
  • 1998 월드컵 이후 한동안 한국 축구의 희망이자 아이콘으로 인식되어 미디어에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았다. 스피드왕 번개에서는 박찬호와 투톱을 이루고(...) 그래서 5-0으로 진 것 같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선 일장기를 달고 일본 대표로 나오는 모습이 나온다.
  • 2013년 2월 말 이동국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
  • 피파 온라인 3에서도 능력치가 좋은 편이다. 아무래도 K리그의 대표 스트라이커인 것을 배려한 듯하다. 한국선수 중에는 전설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골 결정력이 최고수준이며, 몸싸움, 발리 슛 등의 능력치도 수준급. 장신 버프를 받아 헤더능력도 좋고, 위치 선정까지 나쁘지 않다. 때문에 타겟형 스트라이커로서는 상당히 좋다. 오버롤은 70전후라서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닌데, 주요 능력치가 좋다보니 한국 국적 케미를 쓰는 유저들에게 상당히 애용받는다. 하지만 발이 느리고, 개인기가 좋은 편은 아니기에 전천후형이나 크랙형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FIFA 21에서는 69라는 오버롤을 받았는데, 선수 본인은 자신의 속도 수치를 보고 "야! 내가 보경이보다 느리다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 트위터 이용이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 글이 올라오며, 자폭성 개그를 즐기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나가수 초창기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임재범의 '너를 위해'란 곡과 관련된 자신의 자폭성 이야기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기사2014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의미를 잊지 말자는 글을 올렸는데 반성하는 의미라면서 자기 입대 사진을 올렸다(...).독일과 브라질의 4강 경기 후 독일 승리에 걸었다가 만원을 딴 사실을 올렸는데, 해쉬태그에 "불법베팅", "만원벌기", "점쟁이동국"이 있다(...).
  • 나가수 초창기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임재범의 '너를 위해'란 곡과 관련된 자신의 자폭성 이야기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기사
  • 2014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의미를 잊지 말자는 글을 올렸는데 반성하는 의미라면서 자기 입대 사진을 올렸다(...).
  • 독일과 브라질의 4강 경기 후 독일 승리에 걸었다가 만원을 딴 사실을 올렸는데, 해쉬태그에 "불법베팅", "만원벌기", "점쟁이동국"이 있다(...).
  • 2017년 당시 오랜만에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40살이 되어서도 몸 상태가 좋으면 계속 뛰면서 골을 넣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센츄리 클럽 가입 기념으로 두골을 폭격했다. 그리고 한국나이 40이 되는 2018시즌에도 재계약을 하고는 아챔부터 리그 개막전까지 연속골을 넣으며 그 포부를 이뤘다.
  • 독일과 영국 무대에서 실패를 겪고 돌아왔지만, 몸값 때문에 K리그보다 못한 리그에 가지는 않았다. K리그와 A매치에서의 활약 덕분에 왕서방네와 기름쟁이들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생까고 K리그를 묵묵히 수호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힐링캠프에서도 관련 부분을 언급했는데, 그 쪽에서 제시한 급료가 말 그대로 빌딩이 왔다갔다하는 수준이라서 매우 고민이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동이나 중국으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이동국에 비해 상도덕이 없다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의 직업으로서의 수명은 다른 직업들보다 짧고, 지도자로서의 자리 또한 한정되어 있어 선수 생활 이후를 생각하기 쉽지 않다. 짧은 선수 생활에서 벌 수 있을 만큼 벌어두는 것이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프로스포츠에서 종사자들에게 돈을 뛰어넘는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일견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도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디까지나 이동국이 은퇴 후 진로가 어둡지 않고 돈이 크게 아쉽지 않은 리그 탑 플레이어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 2014년 9월 4일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앞둔 전날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중 사진을 찍어달라는 어린팬 엄마의 요청에 아이들에게 드루와를 시전했다.
  • 등번호는 항상 20번을 고수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길, 자신이 포항에서 뛰던 시절 20번을 달던 선배를 존경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홍명보가 국가대표를 은퇴하자 공석이 된 20번을 이동국이 바로 이어받았으며, 이동국이 나이가 너무 많아져 국대 차출이 불안해지자 '제 2의 홍명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홍정호가 잠시 이어받았다.
  • 2015 KBS 연예대상에서 최고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했다. 기사. 안정환에 이은 두번째 축구선수 출신 예능상 수상.
  • 2016 KBS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동년배 다른 선수들에 비해 SNS를 꾸준히 하는 편이다. 이유는 SNS 또한 팬서비스의 한 종류로 생각한다고 하기 때문... 그렇다고 업뎃이 자주 있는 편은 아니다. 많아야 1주에 한 번 꼴.
  • 동국대학교와는 이름이 같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엮이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개명 전 이름이 동국대학교의 한자 이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東國이었고, 동국대학교가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 대학인데, 이동국 본인 역시 불교 신자 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동국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위덕대학교 출신인데, 동국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위덕대학교 역시 불교 종단 대학이다. 단, 이쪽은 동국대학교를 운영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 대학이 아닌 대한불교진각종 종단 대학이다.
  • 국내 스포츠선수 중 3번째로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를 보유하고 있다.
  • 본인의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 이동국 마이너 갤러리
  •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의 활약으로 2018년 KBS 연예대상에서 연예대상 후보에 올랐다. 현역 스포츠 선수가 연예대상 후보에 오르는 것은 최초.
  •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시대상이 맞아떨어진 케이스다. 병역비리 역시 현재는 국가대표 제명 수준의 중징계감이지만 당시에는 군대를 갔다오면 완수한 것으로 쳤다. 룸살롱 역시 2020년대 기준으로 환원하면 중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병역 비리와 대회 출전 문제에는 박주영도 어느 정도 걸리는 등 이를 용인해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막차나 막차에서 두 번째 차 정도를 탄 느낌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 출연하면서 애들 잘 보는 가정적인 이미지로 이미지 세탁이 된 것도 저런 구설수들에서 그럭저럭 잘 넘어간 또 하나의 이유이긴 하다. 그래도 한편으로 변명을 해주자면 이미지 세탁이란 것도 세탁이 될 만한 좋은 모습들을 보여줘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것 정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큰 사고 없이 경기장 내외나 기타 방송에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던 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 어쨌던 본인이 잘 한 게 없지는 않다. 그런 측면에서 개과천선 비슷한 걸로 판단할지 아니면 이미지 세탁인지는 판단하는 사람마다 다를 일...
  • 2019년 갤럽 조사에서 인기선수 순위 10위권에 들어서 여전한 인기를 과시 중이다. 특히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후에 인기가 다시 급성장했다. 보통 운동선수들 인기가 전성기가 정점인것을 생각해볼때 역주행이라고 봐도 될듯하다. 특히 좋아하는 세대는 30대 이후 여성세대가 많다. 슈돌 이미지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봐야한다.
  • 2021년 이동국 누나의 아들이자 조카 배재익 선수가 전북 현대 모터스 유스 출신 선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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