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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자녀/나이/조총련/관련주/가족/최아영/노무현/프로필 -총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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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한민국 국무총리 후보자
대한민국 제38대 국무총리

한덕수
韓悳洙 | Han Deok-soo
출생
1949년 6월 18일 (72세)
전라북도 전주부
(現 전라북도 전주시)
본관
청주 한씨
현직
국무총리 후보자
재임기간
제11대 특허청장
1996년 12월 24일 ~ 1997년 3월 6일
제4대 통상산업부차관
1997년 3월 7일 ~ 1998년 3월 2일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1998년 3월 3일 ~ 2001년 2월 21일
제3대 주 OECD 대표부 특명전권대사
2001년 3월 5일 ~ 2001년 12월 26일
제8대 국무조정실장
2004년 2월 11일 ~ 2005년 3월 14일
제13대 부총리재정경제부장관
2005년 3월 14일 ~ 2006년 7월 18일
제38대 국무총리
2007년 4월 3일 ~ 2008년 2월 29일
제22대 주 미합중국 특명전권대사
2009년 3월 9일 ~ 2012년 2월 17일
배우자
최아영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63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 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신체
180cm
소속 정당
무소속
경력
제8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과장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장
제11대 특허청장
제4대 통상산업부차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대사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제8대 국무조정실장
제5대 부총리재정경제부장관
제38대 국무총리
제22대 주미대사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수상
칠레 대십자훈장
벤플리트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배우자
최아영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63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 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신체
180cm
소속 정당
무소속
경력
제8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과장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장
제11대 특허청장
제4대 통상산업부차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대사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제8대 국무조정실장
제5대 부총리재정경제부장관
제38대 국무총리
제22대 주미대사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수상
칠레 대십자훈장
벤플리트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1. 소개

 

대한민국의 공무원.
제8회 행정고시로 입직하여, 특허청장, 국무조정실장, 통상교섭본부장, 재정경재부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여정부의 제38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국무총리 퇴임 이후 약 14년이 지난 2022년 4월 3일,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

 

2. 약력

 

    • 1967.2. 경기고등학교 졸업 (63회)
    • 1970.6. 제8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 1970.12. 관세청 가격조사담당관실 사무관
    • 1971.2.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경제학 학사 (67학번)
    • 1971.2. 대법원장상 수상 (상과대학 수석 졸업)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
    • 경제기획원 경제협력2과 사무관
    • 1979.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MA
    • 1979.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 경협총괄과 사무관
    • 1980.9.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3과장, 서기관
    • 1981.7.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2과장
    • 1981.11. 한국은행 파견
    • 1982.2. 상공부 통상진흥국 미주통상과장
    • 1984.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Ph.D
    • 1984.7. 상공부 통상진흥국 아주통상과장
    • 1984.12. 상공부 산업정책관실 산업정책담당관
    • 1985.7. 상공부 산업정책국 산업정책과장
    • 1987.2. 상공부 기계공업국 수송기계과장
    • 1989.1. 상공부 중소기업국장, 부이사관
    • 1990.4.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이사관
    • 1992. 홍조근정훈장 수훈
    • 1993.1. 상공부 전자정보공업국장
    • 1993.3.~1994.5.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문민정부)
    • 1994.6.~12.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 관리관
    • 1994.12.~1996.12.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장
    • 1996.12.~1997.3. 제11대 특허청장 (문민정부)
    • 1997.3.~1998.3. 제4대 통상산업부차관 (문민정부)
    • 1998.3.~2001.2.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민의 정부)
    • 2001.3.~11. 주 경제협력개발기구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 (국민의 정부)
    • 2001.11.~2002.1. 제6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 2002.1.~7. 제4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 2002.12.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 2003.7.~2004.2. 제15대 산업연구원 원장
    • 2004.2.~2005.3. 제8대 국무조정실장 (참여정부 / 장관급)
    • 2005.3.~2006.7. 제13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참여정부)
    • 2006.8.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 2007.4.~2008.2. 제38대 국무총리 (참여정부)
  • 2007. 칠레 대십자훈장 수훈
  • 2009.3.~2012.2. 제23대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 (이명박 정부 / 장관급)
  • 2012.2.~2015.2.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 2013.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 2015.6.~ 청소년적십자 사업후원회 고문
  • 2015.11.~2017.12. 제3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 2021.3. 에쓰오일 사외이사
  • 2022.4.~국무총리 후보자 (윤석열 정부)

 

2.1. 유년기

 

1949년 6월 18일, 전라북도 전주부(현 전주시)에서 아버지 한병호(炳鎬, 1907~1982.
4.
28.
)와 어머니 전주 최씨(1913.
12.
27.
~1994.
8.
14.
) 사이의 6남 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1967년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공직 입문 이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MA) 및 동 대학원 경제학 박사(Ph.
D) 과정을 졸업하였다.
육군 병장 만기전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총리 취임 직전 인사청문회에서 육군 병장 출신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불과 4명 뿐인 현역병 출신의 총리 중 한 명이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수석, 서울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해 대법원장상을 수상했다.
이 당시엔 서울대 수석 졸업생에게 대통령상을, 차석 졸업생에게 국회의장상을, 3등 졸업생에게 대법원장상을, 4등 졸업생에게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이 때 국회의장상 수상자가 법과대학을 졸업한 이영애 전 의원이다.

 

2.2. 경제공무원 시절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70년 제8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첫 발령지는 관세청이었으며, 1976년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 자격으로 구미경협사절로 파견되었다.
1977년에 미국으로 유학, 1979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귀국 후 1980년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상공부로 자리를 옮겨 미주통상과장을 맡던 1982년에 한 번 더 미국으로 유학, 1984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다시 상공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1989년에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상공부 중소기업국의 국장을 맡았다.
1990년엔 산업정책국장을 맡았으며, 재임 기간 동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중 산업 관련 정책의 실무를 맡았다.
1992년에 이사관으로 승진했다.
1993년 1월엔 전자정보공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3. 문민정부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대통령비서실로 파견되어 경제수석 밑의 산업담당비서관직을 맡게 되었다.
1994년 6월 청와대를 나와 상공부로 복귀, 관리관으로 승진해 기획관리실장을 맡다가 동년 12월 통상무역실장을 맡았다.
통상무역실장을 역임하는 동안 OECD 가입 추진 실무와 대일(對日) 무역 규제 해제 실무 등을 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통상산업부 차관1996년 12월에 48세의 나이로 차관으로 승진해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냈다.
1997년 3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하였다.
차관 재임 중에 IMF 사태라는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쳐서 이를 수습하는 업무를 맡았다.

 

2.4.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통상교섭본부장 역임 기간 동안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최초로 추진했고,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APEC 정상회의 관련 실무를 수행했다.
여러 차례 산업자원부장관으로 거론되었으나 무마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주OECD대사2001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2002년 1월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해 7월 한-중 마늘 협상 파문으로 인해 경질되었다.
경질 이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2.5. 참여정부

 

2003년 6월 산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실장 재임 기간 중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당시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 이후 "정부 정책이 왼쪽으로 급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관련 업무도 지원하는 등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며 정무·안보 관련 경험도 쌓았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 동안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금산법'으로 불린 금융-산업자본 분리 관련 정책을 손봤다.
쌀 개방으로 인해 농민들에게 쌀 세례를 받기도 했다.
2006년 3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삼일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자 같은 해 4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하였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가 체결되도록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제38대)를 지냈다.
열린우리당의 붕괴로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에 봉착했음에도 무난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인준을 받았고,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으며 당시 북한의 내각 총리였던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하기도 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였던 고건 전 국무총리와 마찬가지로 총리직 재직 중에도,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6.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주미대사정권교체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이명박 정부의 초대 주미대사(장관급)를 역임하면서 보수·진보 정권 가리지 않고 실무형 인사로 중용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주미대사는 형식적으로는 장관급 의전을 받지만 초강대국 미국과의 관계의 중심에 있는만큼 그 중요성과 명망이 높은 자리이다.
더군다나 참여정부의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비판적으로 보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던 이명박 정부가 첫 주미대사로 한덕수를 배치한 것은 미국 유학파라는 개인적 배경이나 통상 관료로서의 커리어 뿐만 아닌 이명박 정부 차원의 신뢰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대사직 퇴임 직후에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선임되었고, 2022년까지 다양한 사회기관에서 활동하는 중이다.

 


2.7.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후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하마평에 올랐다.
168석의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를 얻어내지 않고서는 총리 임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주당의 동의를 얻어낼 만한 통합형 인사로서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한덕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총리를 지낸 바 있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간 듯하다.
만약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받게 되면, 박정희 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종필 전 총리,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총리직을 역임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대수를 달리하여 서로 다른 정권에서 국무총리직에 지명되는 사례가 된다.
3월 30일, 실제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마평에 오른 이후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테크노크라트 총리로는 가장 적합한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자녀가 없다는 점도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4월 2일, 한 전 국무총리가 총리 후보로 최종 지명되어 4월 3일 오후 발표 예정이라고 밝혀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관계자는 "한 전 총리와 충분히 소통해 왔다"며 "인사 발표 후 국무위원 제청권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 3일, 국무총리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1 2 국무총리로 임명되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종식선언 전까지 중앙방역대책본부와 함께 방역상황을 책임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으로도 활동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명 배경에 대해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의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라며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총리지명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중소 영세사업자의 경제피해,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외교문제, 북핵, 유가인상, 개방-시장-세계화 국가운영, 저출산 고령화, GDP대비 100%의 높은 가계부채를 서두에 언급하며 4가지를 강조하였다.
첫째, 국익외교와 강한국방의 자강력 확보둘째, 국가의 대내외적 안정과 신뢰를 위한 재정건전성 확보셋째, 달러를 중심으로 한 경화를 확보하는 국제수지의 흑자기조넷째, 생산성이 높은 국가를 위한 총요소생산성 확대위 4가지를 주요 과제로 언급하며 불평등한 사회, 협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정치, 통합이 되지 않는 사회, 깨끗하지 않은 사회, 경제적 갈등은 총요소생산성을 낮추기에 국가가 더욱 신경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마무리 발언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모시고 행정부가 중심이 되어 치열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정책을 만들겠다고 하였으며 이것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협치, 통합이 정책성공의 요소가 될 것이라 하였다.
1 2민주당에서는 호남 출신을 기용하기만 하면 저절로 국민통합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시대착오적 사고라고 비판한 뒤, 한 후보자가 총리를 지낸 시절과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면서 포스트 코로나 등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낼 능력을 갖췄는지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1 24월 7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앞서 윤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지 나흘 만이다.
4월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한 후보자가 총리로서 적합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8%가 적합, 22%는 적합하지 않다고 봤으며 39%는 의견을 유보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전 총리가 기록했던 60%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낮은 수치지만, 박근혜 정부 첫 총리였던 정홍원 전 총리(23%)보다는 15%p 높았다.
4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차 내각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도 동석했는데 같은 날 인수위에서는 한 후보자가 이번 8명의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대해 자필로 서명한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인수위 대변인실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윤 당선인이 총리 후보자의 국무위원 서면 추천을 통해 후보자를 지명했다"며 "책임 총리제 실현의 첫걸음"이라고 소개했다.
윤 당선인의 인사청문요청안을 접수한 제21대 국회는 4월 15일, 국무총리후보자(한덕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장 주호영)를 구성하고 4월 25일과 26일 이틀간 인사청문회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 한 후보자의 자료 제출 미흡을 이유로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인사청문회는 제대로 개회도 되지 못한 채 끝났고, 여야는 합의를 통해 5월 2일부터 3일까지로 인사청문회 일자를 옮긴 후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로 했다.
연이은 논란과 인사청문회 파열음 때문인지 한국갤럽의 4월 4주차 정례 여론조사에서는 한덕수 후보자가 차기 총리로 적합하다는 의견은 30%,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은 37%로 나타났다.
지난 5~7일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적합하다는 여론이 38%, 부적합다는 여론이 22%였을 때와 비교했을 때 부적합 의견이 무려 15%p 상승하며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했다.
이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4월 29~30일 여론조사에서는 인준 반대 여론이 46%로 인준 찬성보다 약 10%p 높게(찬성은 36.
8%) 나타났다.
한편 교육부장관 내정자 김인철이 지속된 논란에 자진 사퇴하자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정호영, 원희룡, 한동훈, 이상민 총 4명의 장관의 내정을 취소하거나 사퇴하면 인준에 응하겠다며 더 강경하고 높아진 요구사항을 내밀며 압박하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무차별 낙마 공세라고 반발하며 여차하면 국무총리 없이 장관들을 강제 임명하겠다며 맞받아치면서 강대강 대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인준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식 직후 처음으로 한 일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재가하고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7명의 장관 후보자를 임명한 일이다.
언론에 따르면 한덕수 후보자에게 직접 "윤석열 정부 첫 번째 총리는 한덕수여야 한다.
"라고 말하고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측근에게도 "국무총리가 없는 상태가 오래 이어질 수 있으니 각오를 해두라.
"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한 후보자의 거취를 둘러싸고 어느쪽이든 양당은 큰 부담을 안게되는데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지지율이 낮게 출발하는 자당의 새 대통령을 적극 지원해야하는 상황에서 그 시작점인 총리 인준조차 받아내지 못하면 향후 여당으로서의 위신이 크게 손상되는 점,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내각 후보자들의 여러 문제로 여론이 악화된 점을 두고 볼 때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고, 제1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국무총리 인준을 부결시킨다면, 지방선거가 코앞인 상황에 거대야당이 새 정부 출범부터 발목을 잡는다는 언론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등 선거 전략 상 유리할 것이 없는 점이 곤란한 상황이다.
때문에 가장 논란이 큰 정호영을 포함해 박보균, 원희룡 등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일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포기하는 대신 민주당이 한덕수 후보자 인준에 협조해주는 선으로 서로 절충하여 합의를 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있다.

 

3. 저술

 

  • 알기 쉬운 무역실무 길라잡이 (2013)
  • 외부충격, 조정과 성장 External shocks, adjustment and growth (1984)

 

4. 이야기들

 

    • 현지 기자와의 문답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다.
    • 정관계 인사로서는 드물게 자녀가 없다. 역대 국무총리들 중에서 자녀가 없는 유일한 총리로 기록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자녀가 없기 때문에 헌정 최초로 대통령과 국무총리 모두 자녀가 없는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4회에 걸쳐 보수정부과 민주당계 정부를 가리지 않고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역임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만약 윤석열 정부에서 까지 국무총리로 역임하게 된다면 서로 다른 5개의 정부에서 고위공무원직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문민~국민의 정부 시기에 연속해서 차관급 직위를 지냈고, 참여정부 시기에 장관급으로 영전하고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후임 이명박 정부 때는 주미대사를 지냈다. 정치색이 강하지 않아서 정파와 무관하게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는 관료라고 할 수 있다.
    • 공직유관단체 및 비영리법인 수장 경력을 공직의 범주에 포함한다면, 1971년 박정희 정부에서부터 2017년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44년의 기간을 공직에서 몸담은 셈이다.
    • 한 전 총리의 전무후무한 이력과 프로필의 기반은 치열한 자기관리 및 부지런함이라고 한다. 이른바 '스타 관료'들이 거치는 통상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본인은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좌우명을 항시 실천하려 노력했다고 알려졌다.
    • 김대중 정부 출범 이전까지 출신 지역을 서울로 밝혀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출신 초등학교, 중학교가 알려지지 않았다. 8~90년대에는 만연했던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 때문에 본적을 숨기거나 고향을 드러내지 않는 호남 사람들이 많았다.
    • 한덕수 총리의 국무총리 지명으로, 윤석열 정부의 관료 중용 기조가 보다 강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경제 관료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관측과 동시에, '경륜과 안정의 시대에 적합한 기조'라는 긍정 평가와 '올드보이의 귀환' 내지는 공직사회 인사 적체문제 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부정 평가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향후 지명될 경제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간의 역할 분장 분담 또한 한 전 총리가 임명되면 풀어야 할 숙제이다.
  •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내정자는 한 총리가 재정경제부 장관이던 시절 수석과장이던 금융정책과장이었고,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내정자는 한 총리가 상공부, 통상산업부에서 국장, 실장, 차관으로 근무할 때 사무관, 서기관이었다. 이외에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유력하게 검토되는 최상목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한 전 총리가 재경부 장관이던 시절 증권제도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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