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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나이/국정원장/프로필]

by 생생생존정보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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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1. 소개

 

대한민국의 정치인, 관료.

 

2. 생애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박종식(朴鍾殖, 1910년 ~ 1948년)으로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습니다.

 

2.1. 재미 사업가

 

1948년 아버지를 여의고 진도에서 목포로 이주해서 문태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 단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70년 대학 졸업 후 럭키금성상사, 동서양행 등 기업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피혁과 가발 수출 사업을 운영하면서 80년대 초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맨해튼에 투자를 해서 건물 5채를 매입할 정도의 자산가였고, 이 재산이 이후의 정치 생활 밑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박지원은 당시부터 정계 진출에 꿈이 있었는데, 그래서 만났던 사람이 놀랍게도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었습니다.
박지원은 전경환과 가깝게 지냈고, 실제로 1981년 11대 총선 당시 전경환의 도움으로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고 했었으나 해외교포라는 결격 사유로 인해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3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을 김경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박지원은 5.
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전해들은 뒤, 통렬하게 반성했고, 그 후 김대중의 후원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김대중이 사면되자, 박지원 역시 미국에서의 사업을 모두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1.1. DJ의 오른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등원하였습니다.
1996년에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는데, 그 당시 상대가 다름아닌 김문수였습니다.
하지만,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대변인으로 대언론 소통창구를 맡았으며,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중용돼, 기존의 동교동계 가신들이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에 뛰어들어 틈을 메꾸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북한 측이 조의화환과 함께 공개적으로 보내온 편지의 수신자 두 사람(임동원, 박지원) 중 1인이었을 만큼 DJ의 최측근으로 간주되었습니다.
2019년 서거 전까지 이희호 여사의 병세를 가장 먼저 관심갖고 지켜보는 입장일 정도로, DJ 사후에도 10년째 완벽한 DJ의 심복임을 행동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2.1.2. 대북송금 특검

 

    • 2003년 6월 18일 구속 후 2004년 2월 구속집행정지(8개월 구속)
    • 2004년 3월 재구속 후 2004년 5월 4일 구속집행정지(2개월 구속)
    • 2004년 6월 재구속 후 7월에 다시 구속집행정지(1개월 구속) 연속 2번
    • 2004년 11월 2일 재구속 후 16일 다시 구속집행정지(14일 구속) 연속 2번에 2005년 3월에 보석
    • 1년 뒤인 2006년 5월 25일 파기환송심 최종 선고로 재구속
    • 2006년 11월 3일 형집행정지로 3개월 만에 석방(5개월여 구속)
  • 2007년 2월 9일 석방된 상태에서 사면.
  • 2008년 1월 1일 특별복권.

 

2.1.3. 재기와 분당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장장 1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였습니다.
이후 통합민주당에 복당했습니다.
그리고 복당 인사에 당시 고작 재선에 불과했음에도 2010년 5월, 원내대표에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2010년 7월 28일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자 당시 대표였던 정세균이 사퇴를 했고, 결국 임시로 다음 전당 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2012년 5월 민주통합당의 19대 첫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는데, 이때 초대 지도부가 총선 패배로 인해 모두 사퇴한 상황이었기에 임시로 다음 전당 대회까지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또)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전당 대회를 통해 새롭게 당선된 이해찬 대표와의 담합 의혹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대선 패배 이후 원내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2014년 7.
30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자 김한길,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사임하고 뒤를 이었던 박영선 전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마저도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은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2015년 2월 8일에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상임고문과 맞서 2위로 석패했습니다.
2016년 1월 22일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3월 2일 국민의당에 합류했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입당키로…18번째 현역국민의당 합류 이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당선되어 4선의 중진이 되었습니다.
2016년 4월 27일, 경기도 양평군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추대된 김성식 당선인과 함께 원내대표로 만장일치 합의추대되었습니다.
이로써 박 의원은 2010년 민주당(18대 국회), 2012년 민주통합당(19대 국회)에 이어 2016년 국민의당(20대 국회)까지 이례적으로 3번이나 원내대표를 맡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6년 6월 29일 천정배,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였고, 박지원은 만장일치로 원내대표를 겸하면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2016년 12월 5일 부로 김동철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이임하였습니다.
곧바로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원내대표직도 사임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전국당원대표자회의에서 1인 2표제, 당원 전체 투표로 200% 중 61.
58%의 득표율, 국민의당의 2대 당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인생 중 처음으로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정식당 대표가 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과거 당 대표 직함은 비상대책위원장직이 전부였으니, 비록 국민의당이 원내 3당이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청년 시절 목표('야당 대표')를 이룬 원로의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2017년 5월 10일,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2기 지도부가 총사퇴를 결의하면서 박지원 본인 역시 당대표에서 물러났습니다.

 

2.1.4. 문재인 정부 시기

 

2017년 9월 12일의 대정부질문에서는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다른 야당 의원들과 달리, 이낙연 전 총리와 제대로 된 질의응답을 주고받아 그나마 좀 낫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낙연 전 총리는 박지원의 후임 대변인으로 같이 한솥밥을 먹었고, 이 전 총리가 동교동 출입기자였을 때는 박지원 전 대변인이 자리를 종종 마련해 기자들과 만나곤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박지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후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전날인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인해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가 여론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고, 박지원 본인도 언론 인터뷰에서 사태의 책임을 청와대와 여당에게 전가하는 발언을해서 그나마 훈훈한 이런 장면도 묻히고 있습니다.
2017년 추석 연휴 동안 전남 곳곳을 돌아보며 민생 행보를 펼쳤기 때문에 전남도지사 출마에 대한 마음을 굳힌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는데, 10월 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의당이 지방선거에 승리하지 않으면 존폐가 의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기왕에 말씀드린 대로 안철수, 손학규,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
이런 당대표급 인사들이 이번에는 전면에서 뛰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한번 이끌고 가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며 강하게 출마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에도 부정적인 의사를 표출했는데, 교섭단체를 만들려면 자신이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이후 입장을 선회해서 지사직에는 불출마하였습니다.
2018년 2월 민주평화당 창당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문모닝을 보여주고 있는데, SNS나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 특히 대북 정책에 든든하게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가끔가다 보면 남들 모르게 복당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자 ”저래서 문재인이 대통령됐구나, 역시 나보다 낫다고 인정한다“고 누가보면 민주당 논평이 아니고 싶은 정도로 극찬했습니다.
물론, 박 전 의원이 대북 송금 사건으로 처벌 까지 받았는데도 지금도 자신의 정치 목표는 햇볕정책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고 하는 사람이지만, 외부적으로 봤을 때는 차기 전남지사 출마를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압도적입니다.
아무래도 호남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낮아도 80%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의 복심이자 최측근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비서관의 북콘서트 게스트로 등장해서 대놓고 민주당과의 연대를 말하며 민주당에 구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 의원의 이러한 행보에 넷상의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응은 "응 안돼"로 종합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당 역시 내부적으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합쳐서 재적 과반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압도적인데 굳이.
하는 분위기로 알려졌습니다.
딴지일보 김어준 대표가 진행하는 TBS의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TV조선의 시사프로그램인 강적들에 자주 게스트로 초빙되고 있습니다.
2019년 7월에 대안정치연대 소속 비당권파들과 민주평화당을 탈당하기로 했습니다.
2020년 1월 대안신당 창당일을 결정한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서는 대안신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합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흩어져있는 옛 국민의당 세력들의 통합을 주장한 것입니다.
2020년 1월 9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윤석열 라인을 겨냥한 검찰인사에 대해서 "역시 추미애답게 통쾌하게 했더라.
"면서 후속 인사는 차장, 부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제 (정권을 겨냥한) 수사 라인 차장, 부장들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다음날인 10일에는 추 장관의 "(윤 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라는 발언에 대해 "왕조시대도 아니고 지나친 표현입니다.
"며 비판했고, "수사라인을 좌천성 승진이나 좌천시킨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라고 평가했으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버텨야 되고, 버티리라 본다"고 전망했습니다.
앞선 2019년 12월에는 유재수·김기현 의혹 수사, 검찰 수사관 사망과 관련해 "마치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이 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특히 청와대 사정 기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아니냐, 쉽게 간과될 일은 아니다", "감찰 무마 의혹은 조국 사태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갈 것"이라며 "현재 검찰이 수사중이니까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또한 자신도 많은 의혹을 받았지만 무죄로 밝혀진 경험이 있다며, 실체가 있는 의혹인지 검증이 필요하다고도 하였습니다.
2020년 1월 안철수가 귀국해서 신당 창당을 선언하자 " 안철수는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 라고 비판했습니다.
21대 총선에서 민생당 후보로 다시 목포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원이 후보에게 패하며 결국 낙선했습니다.
아직도 화제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나이도 너무 많고 민생당 후보들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은퇴 수순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2.1.5. 낙선 후

 

고령의 나이인지라 다음 총선 출마도 불투명하고 민생당도 원외정당으로 전락했기에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이라는 추측이 돌았으나 일단 박지원은 '영원한 현역'을 선언하며 정계에 간접적으로나마 남아있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워낙 언변이 좋고 유머가 뛰어나서 의원 시절에도 방송 출연이 잦았던 터라 방송 출연과 SNS 활동을 계속 진행할 것으로 보이고, 상황에 따라서 유튜브를 개설하여 원로 정치인으로서 할 말은 하고 살겠다고 합니다.
실제로 낙선 후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정치 및 시사프로그램에 계속 패널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문재인 정부를 옹호하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주당 윤미향 당선인과 관련하여 발생한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에서는 윤미향 당선자와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6월 1일 자로, 모교인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에 임명되었습니다.
대북관계, 국제정세, 국내정치문제를 강의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 6월 17일 꽉 막힌 남북관계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문정인 특보,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교수 등 원로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찬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후, 일각에선 사의를 표명한 김연철 장관의 후임 통일부장관으로 임명하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총선 직후부터 입각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처럼 국회의원 선수나 그동안의 경력을 보았을 때, 진짜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최후의 카드로 쓸 가능성이 있어보였습니다.

 

2.1.6. 제35대 국가정보원장

 

2020년 7월 3일,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서훈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차기 국정원장에 지명되었습니다.
청와대 브리핑에서는 18-20대 국회 정보위원회 활동 시 보여준 뛰어난 정보력과 국정원 기관에 대한 깊은 이해, 남북관계 조정에 대한 능력을 인정해 내정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 동교동계 출신인 김한정 의원도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이종찬 국장의 대외협력보좌 역으로 근무했던지라, 일부 여당 의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대해 박지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습니다.
박지원이 국정원장에 내정된 것 자체도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평입니다.
어느 정도로 파격적이냐면, 박근혜 정부 말기에서 유승민을 경제부총리로 내정하는 급의 파격 인사입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적 보유자가 아니라 야권인 민생당 당적 보유자를 입각시킨 탕평인사라는 점도 그렇고, 과거 참여정부 시절 진행된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회 정보위원장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두 국회부의장의 협의 후 본회의 의결이 필요한데, 현재 미래통합당 몫 국회부의장 내정자인 정진석 의원이 부의장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위원장을 선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국회 복귀를 선언함에 따라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청문회가 준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표적인 북한통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에서 북한 사정을 잘 아는 북한통으로는 하태경, 태영호 정도가 언급되는데, 현재 그들은 미래통합당 소속이라 현역 의원직을 내려놓고 문재인 정부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태영호는 탈북자 출신인 데다 국정원에서도 자문위원 정도만 전담했고, 신변 위협의 가능성과 판단력에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는 맡을 만한 사람이 맡았다고 본다고 언급한 듯.
청문회를 위해 재산이 공개되었는데, 총 17억 원에 건물이 14억입니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상당히 재산이 많은 게 맞지만, 박지원은 정계 입문 이전에는 뉴욕에 건물 5채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지닌 재미 사업가였던 걸 감안하면, 오히려 생각보다 적은 편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본인 말로는 그간 정치할 때 많이 썼다고 합니다.
청문회의 주요 쟁점은 1965년 현역 사병으로 복무 중 부대장 배려로 단국대에 편입해 졸업한 과정, 2003년 대통령 비서실장 퇴임 당시 39억 9,000만 원이었던 재산신고액이 2008년 13억 9,000만 원으로 5년 만에 26억 원 급감한 경위 등이 될 전망입니다.
2020년 7월 27일, 정보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가 개최되었는데 개인 도덕성 검증에 초점을 맞춘 오전 청문회만 국민에게 공개되고, 본격적인 정책 및 현안 질의가 진행되는 오후 청문회는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이때 청문회를 시작하기 전 국정원의 임무를 수행하다 산화한 '이름없는 별'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묵념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냐고 반복적으로 질문하자 "주적이라니깐요? 100번 말할까요? 아니면 광화문 가서.
"라고 답했습니다.
2020년 7월 28일, 통합당의 불참 속에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었습니다.
오전에는 통합당 하태경 의원, 주호영 전 원내대표 등이 단국대학교 졸업 및 남북간 이면합의서 존재 여부를 가지고 일단 임명을 유보하고 국정조사를 진행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나 여당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이 이를 거부하자 오후에는 상임위 전체회의에 불참하였습니다.
2020년 7월 28일, 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재가하여 29일부터 신임 국정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29일, 김창룡 경찰청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았는데, 행사장에는 딸과 더불어 어린 외손자도 동행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2020년 11월 8일 스가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최고위급 인사로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일본을 방문하여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9일에,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10일에 접견하였습니다.
2020년 12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원장·법무부 장관·행정안전부 장관 합동 권력기관 개혁 관련 브리핑에서 박지원은 “역대 정부에서 추진했지만, 미완으로 남았던 국정원 개혁이 비로소 완성됐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5·18, 세월호, 댓글 사건, 민간인 사찰 같은 국정원 관련 의혹이 두 번 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진상 규명에도 끝까지 협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3일 국회를 통과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국정원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규정했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문제에 대해 “(기존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를 없앴고, 정치 개입이 우려되는 조직은 해체했으며 원천적으로 설치할 수도 없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중대한 국가 안보 사안은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함으로써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의해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1월 20일 국정원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구성원들에게 문서보안 과정을 거쳐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문건 64만 건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정원, 세월호 64만건 ‘자료 전체’ 사참위에 열람 허용2021년 3월 24일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한 자료 총 132건(1447쪽)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심의위)'에 제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자료엔 중앙정보부 문건 42건(214쪽)과 경찰 생산 문건 75건(1212쪽), 군 생산 문건 15건(21쪽)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아울러 주요 내용으론 Δ당시 상황 분석 및 수사방향 Δ일부 대학 동향 Δ주요 관련자와 연행자 명단·평정·처리 판단 보고 Δ개인별 사건 이첩·송치자료 등이 담겼습니다.
특히 중앙정보부 생산 문건에는 "데모 연행자의 개인별 가담 사유를 파악하라"는 청와대 지시를 비롯해 Δ관계기관 회의 시 토의사항 Δ수사 방향 관련 수기 Δ포고령 위반자 처리 지침 등의 내용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정원의 부마항쟁 관련 자료 제공은 지난 2017년 1차로 5건(51쪽)을 제공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국정원, 부마항쟁 심의위에 관련 자료 132건 제공2021년 4월 5일, 국가정보원은 5.
18 민주화운동 당시 '최초 발포 차륜형 장갑차' 증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진을 포함한 22건, 1242쪽의 기록물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추가 제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자료 제공은 지난해 8월 11일과 11월 4일, 올해 2월 9일에 이어 네번째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총 101건의 문서(6888쪽)와 사진 257장, 영상자료 1건을 제공하며 5·18 진상조사 활동을 돕고있습니다.
5·18 당시 최초 발포 장갑차 증언 뒷받침 사진 나왔다2021년 4월 중으로 사임이 예상되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후임자로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등과 함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결국 김부겸 전 장관이 차기 총리로 지명되면서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기진 않게 됐습니다.
2021년 5월, 국정원에 최초의 여성 차장 임용에 이어 여성 간부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2017년에 비해 여성 간부 비율은 4배 증가해, 여성계에서는 호응이 좋았습니다.
2021년 6월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을 열고 새 원훈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을 공개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자인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어깨동무체가 원훈 글씨체에 사용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등 105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국보법 수호연대는 "문재인과 박지원이 간첩 글씨체로 국정원을 모욕했다"고 규탄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국정원측은 '신영복체'가 아니라 서예가 죽전 송홍범의 '송홍범체'라고 주장했지만 서체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되었습니다.
2021년 6월 23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관련해 "폐지가 아닌 존치, 개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간첩이 있으면 잡는 것이 국정원이고, 누군가 이 일을 해야 우리 안보를 지킨다"면서, '간첩 조작'은 과거 사례라고 평가하면서 "창설 60주년을 맞은 국정원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린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박 원장은 "과거 일이라고 해서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별 소식이 없다가 22년 3월에 세균 감염으로 3주간이나 입원한게 보도되었습니다.
2022년 5월 11일 정부로부터 국가정보원장직에서 사퇴하라고 통보받았습니다.
통상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후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국회 정보위원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이라는 의견입니다.
새정부 입장에서는 기존과는 아예다른 새판을 짜고싶어 인수인계마저도 거부한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는 "남북관계, 북한 미사일 등 한반도가 위기의 상황"이라며 "아무리 교체기라 하더라도 정보와 안보 분야는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게 맞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규현 후보자를 지명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 1차장에 권춘택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을 내정했습니다.
통상 국정원장직이 공백일 경우 1차장이 직무를 대행하는데, 기존 박선원 1차장도 박지원 원장과 함께 국정원을 떠나 권 내정자가 직무를 대행하게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 3월 21일까지 직을 유지했다(다음날 남재준 원장 취임).
박근혜 정부의 이병호 국정원장 역시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6월 1일 퇴임했다(다음날 서훈 원장 취임).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신건에서 고영구로 교체될 때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3년 4월 공백 없었음).
다만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면서 국정원장 자리에 공백이 발생했는데, 이는 대선 직후 '김만복·김양건 대화록' 유출 사건이 있었고,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이 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입니다.

 

2.1.7. 국정원장 퇴임 후

 

퇴임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통상 국정원장에서 퇴임하게 되면 조용한 삶을 살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만큼 이 또한 이례적인 행보입니다.
민생당에 복당할 의사는 없는 것이 확실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할 가능성이 남아있습니다.
이미 여든이 가까운 고령이다 보니,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다고 해도 당 고문 이외의 다른 직책을 맡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거기에 국정원장이라는 직책의 특성상 아는게 너무 많아져 과거와 달리 방송에 나와 정치 평론 활동을 하는것에도 어느정도 제약이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정치인 시절 보여준 처세술 등을 감안하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본인이 알고있는 정보들을 풀 가능성도 높습니다.
제42주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 하루 전인 본인의 SNS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이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고 합니다.
잘한 결정이다"고 말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42주기! 다함께 기념하고, 가해자는 진정으로 사과하고, 진실 규명에 협조해야 합니다.
그래야 피해자는 용서하고 국민은 통합할 수 있다"며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이 기념식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국민통합은 더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국가정보원장 재직 때 총 4회에 걸쳐 101건(6888쪽)의 문서, 사진 257건을 5·18진상규명위원회에 제공했다"며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 중에는 중앙정보부 생산 중요 문건 17건, 광주고 앞길 최초의 발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차륜형 장갑차 사진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실 규명은 계속돼야 하며 개인, 기관, 국가든 누구든 진실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면서 "피해자와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사과와 반성을 하고 생존해 있는 당시 신군부 책임자와 핵심인물들은 이제라도 사죄의 증언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윤대통령 5·18광주행·임을위한행진곡 제창 잘한 결정"곧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신청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미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요청으로 복당에 성공한만큼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까지 지낸 박 전 원장의 복당 역시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6월 1일,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를 예상한 출구조사를 보고 "자생당사(自生黨死).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합니다.
"라며 이재명 상임고문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뒤이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을 향해 "내부총질 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반성한다"라고 조언한 뒤 그렇게 피터지게 싸운 후 전열을 정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동시에 "그러나 오래 싸우진 말라.
진짜 싸움은 밖에 있습니다.
민생, 경제에 있다"라며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

 

3. 정치력과 처세술

 

오랜 정치 경력으로 인해 정치 9단, 족집게, 꾀돌이 등의 별명이 있는 노련한 수완가로 평가됩니다.
MBC의 21대 총선 개표방송인 MBC 선택 2020에서는 아예 8선 같은 4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깔끔하고 명쾌한 메시지와 능수능란한 정치적인 감각, 상대방의 약점과 흠결을 타격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민의당 시절, 당대표는 안철수, 천정배였지만 국민의당이 제20대 총선에서 호남권의 표를 싹쓸이하고 제대로 된 정당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원내대표로 활약하던 박지원의 공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거대야당은 더불어민주당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며 정국을 이끌었습니다.
권력의 곁에 있어보기도, 권력을 가져보기도 한 정치인으로써 그 생리를 잘 알고, 고령이지만 여전히 빠르고 맥을 잘 짚는 상황판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 9일 헌정 사상 2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진행돼 가결된 후, SBS에서 박지원을 초청해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정계의 원로로 이 나이까지 살아남은 여의도의 정치 9단이라는 이름은 결코 허풍이 아닌지라 시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 때문에 프로에서 초청되면 차분하지만 매우 예리한 면모를 보입니다.
자유한국당/2.
27 전당대회에서 모든 선거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당대표 선거 2위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일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맞아떨어졌습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후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으며 이후 바른정당이 국민의당에 이어 2차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이후 바른미래당의 합당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으면서 박지원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고무되어 이후 바른미래당이 과연 자유한국당과 합쳐질 것도 맞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렸는데, 결국 그 바른미래당에서 친유계가 새로운보수당 분당 후 21대 총선국면에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여 미래통합당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맞춘 셈.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부터 대언론소통을 맡아, 기자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정동영전 의원이 갓 정계입문 후 DJ에게 아침보고를 올리고자 출근하면, 전날까지 기자들과 만난 박지원 전 원장 차 안에서 운전사와 졸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고 합니다.
또한 기자들과도 곧잘 친근하게 지냈기 때문에, 일설에 따르면 당시 뉴스 기사에서 "야권의 한 고위 관계자"라는 지칭이 나오면, 사람들이 대체로 박지원이라 간주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해서 그런지 MB정부 시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작으로 추정되는 혐의가 생기자 이명박을 공격하는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MB정부의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는지 뒷조사를 하고,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을 모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신의 SNS에 즉각적으로 "천하의 못된 짓은 다 모아 자행한 MB와 MB정부 주동자, 가담자는 철저히 발본색원, 처벌해야 한다"며 "이미 수상한 DJ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려 모의했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극렬한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게다가 2017년 국정감사에선 "다스는 MB 거"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며, 11월 1일에 출연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내가 미워하는 MB가 곧 구속되게 생기니 기분이 좋다"는 발언으로 대놓고 확인사살.
다만 그러면서도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의 "MB가 아버지의 국장을 마지못해 결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면부정하며 "MB가 국장에 적극 협조해줬으며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한때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도 사뭇 노선이 달랐습니다.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참여정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영향이 있는 듯.
2017년 19대 대선 시기에는 '문모닝'으로 대변될만큼 대립각을 세웠고, 후일에 스스로도 "반문의 괴수"였다고 시인할 정도.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유세중에 느닷없이 '문재인이 되어야 호남의 정치적 몫을 가져올 수 있다'라며 말실수를 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문 전 대통령을 매우 의식해서 나온 실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때로는 지지, 때로는 비판을 하고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지지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튼튼한 안보와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습니다.
", "DJ였다면 대일문제(강제징용)를 이렇게 악화시키지 않고 국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을 것.
", 최저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기조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는 항공모함인데 정부가 고무보트처럼 획 돌려 좌초될 위기.
"라며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한바 있습니다.
2017년 4월 북한이 한반도 긴장상황에도 불구하고 열병식을 하면서 ICBM을 공개하자 "제 정신인 거냐"고 비판했습니다.
앞선 2월에는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 3월초에는 사거리로 보아 ICBM(대륙간,장거리)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4발 시험발사하였습니다.
이에 3월31일 트럼프 정부의 첫 무더기 대북제재 법안이 발효됐으며 같은날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북한은 이란보다 시급한 위협.
”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햇볕정책을 기본으로 한 대북 문제에 대해선 상당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민주당 시절에는 물론이고 국민의당-민주평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에도 이 분야에서 박지원 전 원장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야당 유력 인사 중에서는 이 대북 문제와 관련해 정부 및 여당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DJ는 외교 강화론자이며 늘 국익을 생각하라 하셨다.
DJ는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한일회담 찬성, 일본 대중문화 개방, 비난을 감수하며 4대국 보장론을 주장하고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외교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대중문화 개방으로 한류가 시작됐으며 중국과 외교관계 시작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했고, 튼튼한 안보,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중러의 협력으로 햇볕정책을 이끌었습니다.
" 고 그를 회상했습니다.
2010년 초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대두되며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북한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언론인터뷰에서 박지원은 "북한 붕괴는 잘못된 판단이고,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누군가는 북한을 이끌고 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남북 경제협력 경색으로 남한기업의 손실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입지"라며 북한이 중국과의 경협을 늘려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습니다.
12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직접 “머지않아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며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후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에 이어 김정은이 등장하였습니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북핵문제에 대한 '햇볕정책 책임론'을 제기하자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4번의 북한 핵실험이 있었고, 북한 미사일 기술의 진전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이던 대통령께서 '대화 위해 북에 준 돈이 핵개발 자금 됐다'며 햇볕정책에 책임을 떠 넘기고 있습니다.
", "정부 말대로 하면 북한은 이미 망했거나 오늘 망해야 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준 돈이 없는데 북이 핵 SLBM 미사일 핵잠수함까지 건조해서 실험을 하는건 무엇인가.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나면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로 가서 항의하냐"고 반박한 바 있습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JTBC 인터뷰에서 앵커가 "햇볕정책은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것 아니었습니까?"라고 묻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튼튼한 한미 동맹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후 미국에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대북정책을 이렇게 하자고 설득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클린턴 메시지를 가지고 6.
15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던 겁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미 간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주도권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클린턴 대통령 때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설득돼서 이제 대북정책의 운전석에 김대중 대통령이 앉고 자기는 조수석에 앉겠다, 이렇게 합의되어서 한 겁니다.
현재 햇볕정책의 추진이 별로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미국 정책도 늘 고착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거죠.
계속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설득을 해야 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설득해야죠.
우리는 한미 동맹 속에서 북한과 전쟁을 막고 어떤 무력도발보다는 대화로 해결하자 하는겁니다.
남북 관계 개선은 2000년 6.
15 정상회담 정신으로, 북한의 핵 문제는 6자회담 9.
19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해결이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안인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는 '워마드를 이해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비하적인 내용이 담긴 악질적 문자 테러를 받았고,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하성 문자 테러를 중단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국정원장이 된 이후로도 이 정치력은 어디 가질 않은 모양인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만남 이후 일본의 언론들은 "일본 총리 관저의 오산이었다" 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해외국가정보기관과는 몰래 만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근데 박지원 원장은 아주 대놓고 총리관저 정문으로 들어가 기자들과도 만났습니다.
아예 '일본 총리를 만나러 간다' 라고 언론에 방일 일정과 취지를 공개까지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 정부는 정보 관리도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일본의 정부 관계자들은 "어째서 벌써 언론 보도가 나갔는가" 라는 식으로 당황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마이니치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총리실 관계자는 박지원 국정원장을 보고 "약았다" 라고 표현을 했다고 할 정도.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민주정의당
1981
정계 입문 시도
무소속
1981 - 1987
탈당
정계 입문
평화민주당
1987 - 1991
창당
신민주연합당
1991
당명 변경
민주당(1991년)
1991 - 1995
합당
무소속
1995
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새정치국민회의
1995 - 1998
창당
무소속
1998 - 1999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새정치국민회의
1999 - 2000
복당
새천년민주당
2000 - 2001
합당
무소속
2001 - 2003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
새천년민주당
2003 - 2004
복당
무소속
2004 - 2008
제명
민주당(2007년)
2008
복당
통합민주당(2008년)
2008
합당
무소속
2008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
민주당(2008년)
2008 - 2011
복당
민주통합당
2011 - 2013
합당
민주당(2013년)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2014 - 2015
합당
더불어민주당
2015 - 2016
당명 변경
무소속
2016
국민의당 합류를 위한 탈당
국민의당(2016년)
2016 - 2018
창당
무소속
201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민주평화당
2018 - 2019
창당
무소속
2019 - 202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대안신당
2020
창당
민생당
2020
합당
무소속
2020 - 현재
국가정보원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민주당(1991년)
6,004,578 (29.20%)
당선 (21번)
초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소사
새정치국민회의
31,786 (37.2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무소속
45,415 (53.59%)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
63,705 (71.17%)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국민의당(2016년)
58,630 (56.38%)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민생당
47,528 (37.34%)
낙선 (2위)
 

 

6. 어록

 

날카로운 촌평과 깔끔한 메시지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정치는 생물입니다.
본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박지원 전 원장이 자주 이 말을 사용해왔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도 이 논리가 적용되어 결국 국가정보원장으로 등용되었으며, 박 전 원장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대북 발언에 대해서는 옹호하고 박 전 원장에 대해 대북 전문가로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비판하며 한 발언.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탈세.
이 4가지 다 지키면 뭐가 되는 줄 아십니까?""장관!"이명박 정부 시절 어느 유세 현장에서.
정치하면서 자기 가족하고 친구하고 밥 먹는 사람은 자격이 없습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삼시 세끼를 기자하고 먹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2016년 5월 3일 국민의당 초선 국회의원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특강을 하면서.
정권이 끝나면 저처럼 불행한 사람이 안 나와야 합니다.
순간은 막아도 영원은 막을 수 없습니다.
안 수석이 대단히 위험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정권 끝나자 마자 어떻게 되겠나.
2016년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에 대해 방어하던 안종범 청와대 정책수석에게.
안철수에게 모이는 사람은 민주당 계열에 있다가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유권자들은 안철수 개인을 보고 좋아하겠지만 결국 그 주변사람들이 누군지도 살피면서 투표한 것.
2017년 대선 직후 안철수를 비판하며 한 말.
골프하고 선거는요, 고개 쳐들면 그 순간 집니다.
썰전 244화에서 전라남도지사 당선 가능성에 대한 답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께서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중 2가지를 이행하셨다.
삭발, 단식투쟁 다음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는 법인데 의원직이 없으니 당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2019년 11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물 中제게 재판장처럼 말하지 말아주세요.
2019년 12월 30일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中나는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지만 와신상담을 할 수는 없습니다.
2020년 1월 8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中국가를 위해서 정치인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누웠다 일어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中, 기회주의자라는 세간의 평판에 대해 물었을 때.
저한테 못당하니까 요물이라고 하는거죠.
(진행자 : 3분 전에 겸손을 말씀하셨는데.
(일동 웃음))정치인은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합니다.
또 정적을 폄훼해야 할 때에는 사정없이 해야 합니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中 홍준표 의원이 자신을 '여의도의 요물'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하여 묻자이분은 비대위원장이 직업인 것 같아요.
그런데 비대위는 공천권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으니까 제가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2020년 4월 23일 KBS 더 라이브 中.

 

7. 이야기들

 

  •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다시피, 언변과 유머감각, 예능감이 정치인들 중에서도 유달리 뛰어납니다. 기본적으로 술 취했을 때를 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적이고 원색적인 언행을 자제하고 자학과 자뻑을 적절히 섞은 개그를 구사하며, 정적을 비판할 때도 직설적인 비난보다는 유머와 뼈가 있는 멘트를 날립니다. 상대정당을 비판하면서도 자학개그를 구사한 예시.이 유머감각을 보여준 예로, JTBC 적과의 동침 2회에서는 혼인을 앞둔 딸들을 두고 "너희 엄마 눈만 닮아라. 엄마 눈을 닮아서 좋은 남자가 있으면 잡아라" 라는 자뻑개그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에 이어 아내의 반응인 "그러다 네 남편도 감옥 갈라"라고 자학개그를 덧붙인 건 덤.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에서는 TV조선에 입사한 전원책 변호사에게 다짜고짜 "블라인드 채용제가 (실시)됐으면 제가 TV조선 기자됐습니다"라며 축하해주기도 했습니다. 가끔 스스로를 칭하면서 3인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 녹내장으로 인해 안구를 적출하여, 왼쪽 눈에 의안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어색해보이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박지원 전 원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중에는 이러한 신체적 콤플렉스를 비하하는 내용이 자주 있습니다.
  • 정적을 포함한 누구와도 극단적으로 척을 지지 않으려 하며 특히 언론과도 친하게 지내는 등 특정 정치 성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정치인으로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수십 년의 정치인생 중에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치명적인 위기가 몇 번 있었음에도 여든 가까운 나이까지 안정적으로 정계에서 활동하는 데는 이런 성격의 덕을 많이 본 듯합니다.
  • 이런 좋은 성격에 정치 경력도 길다보니 정계의 마당발입니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계열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전원책 변호사 등이 있습니다. 애초에 박지원은 민주정의당 출신입니다.일례로 적과의 동침 2회에서는 김무성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김무성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나를 총리로 지명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바로 대통합입니다."라는 드립에 이어 급기야는 김무성에게 "대통령님!" 드립을 쳤으며, 그 와중에도 깨알같이 "내가 형인데 총리로 만족하고 대통령직을 양보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라는 자뻑개그를 시전했습니다. 아무리 예능이고 사적으로는 친한 사이라지만 방송 당시에도 일흔 넘은 야당 중진이 여당 중진에게 저런 드립을 서슴없이 친다는 것은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 많은 정치인들이 빈말로든 진심이든 정치가라는 직업의 고충이나 염증을 토로하고는 하는 데 반해, 정치가가 본인 적성에 딱 맞아서 아주 즐겁게 일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때문에 평생 현역일 것이라고...
  • 국민의 정부 시절에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인지 현직은 국회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으로 불립니다. 일종의 예우 차원인 듯 싶다. 비슷한 사례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 때문에 사석에서는 의원님이 아닌 '총리님'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제 이해찬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면서 대표님으로 불리게 됩니다. 사실 이해찬 전 대표는 예전 2012년에도 대표를 지낸 적이 있었으나, 18대 대선을 위해 안철수 세력과 합당하면서 합당 조건으로 이해찬의 대표직 사퇴를 내걸어 관철해 몇 달 만에 금방 물러났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야당 + 집단지도체제에서의 당대표였으니 여당 + 단일지도체제에서의 당대표직에 비해 확연히 밀립니다.
  •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지어진 것인데 책임이 나한테 있는 게 아니지 않냐?"라고 하자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라고 한방 먹였습니다.
  • 무소속의 강길부 전 의원과 생년월일이 같습니다. 2022년 기준 81세로 김종인이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둘 다 20대 국회 내에서 최고령 의원이었습니다.
  • 2022년 현재로서는 문재인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들 중 최고령입니다. 전임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1941년 출생인 김덕룡이 최고령입니다.
  • 광주 개새끼들아 발언이 논란과 동시에 밈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 친문 지지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안철수 의원과 관련한 짤방이 있습니다. 실제 장면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열린 당선자 대회 및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당시 안철수와 박지원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박지원은 피로 때문인지 안경을 벗고 눈을 주무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걸 친문 지지자들은 안철수의 행동 때문에 박지원이 열받은 내용으로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사돈이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퍼져 있는데, 실제로는 사돈의 사돈 지간이라고 합니다. 다만, 그래서 그런지 서로 인맥관계는 있는 듯 합니다.
  • 방송에서 본인이 말한 바로는, 19대 대선 당시 바른정당 김무성 측과 안철수-유승민 연대를 추진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김무성이 본인에게 말하길 "유승민이 대통령 후보자 토론의 힘으로 지지율을 더 올려볼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는데, 박지원은 "야, 토론만 잘해서 대통령되는 거였으면 유시민이랑 진중권이가 진작 대통령했다!"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 2017년 10월 경부터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목요일 고정 출연으로 능구렁이 같은 입담을 뽐내고 있습니다. 특히 처음 출연했을때는 김어준이 "민주당 시절에 그렇게 대표를 하시고 싶어 하셨는데 드디어 대표가 되셨네요" 라고 축하의 말을 전하자 추억에 젖었는지 "하...내가 그때 친노들한테 맞아가지고"라고 답변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출연했다 하면 빵빵 터뜨립니다.
  • 2017년 12월 11일에 나온 뉴스에 따르면 호남에 갔다가 달걀을 맞고 왔다고 합니다. 다만 이때 "내가 맞아서 다행입니다." 라고 말하고 쿨하게 넘어갔다고...
  • 2018년 4월 27일에 개최되었던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야당 정치인으론 유일하게 초청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대북특사를 전담하다시피 하였고, 현재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이기에 원로자격으로 포함 된 것. 그리고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수행원 자격으로 초청되어 정부가 북한 문제로 박지원을 신임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 보수 정치인 중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이념, 철학을 얘기하잖아요. 나는 보수입니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한 보수가 있어야 됩니다. 또 저처럼 진보개혁적인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렇게해서 상호경쟁하면서 발전해야죠. 유승민 전 대표는 그러한 면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정치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2018년 10월 15일 부인상을 당했습니다. 아내 이선자 씨는 2017년 말부터 뇌종양 투병중이었다고 합니다. 박 전 의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임종 며칠 전 자식들을 모두 불러모아 아내의 임종을 함께 지켜봤다고 합니다. 아내가 투병 생활을 할 당시 세브란스병원 화재 사고가 일어나서 아내와 본인이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는데 다행히 큰 탈은 없었습니다.
  • 2019년 3월 29일, 4월 5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 김구라의 조력자로 출연해 김무성 전 의원,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다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또 방송 도중 의원내각제를 언급하자 채팅방에서 매우 거친 반응이 나와 그 후로 다시는 내각제를 언급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여담으로, 해당 방송에서는 총 500만원의 기부금을 모아야 했는데, 김구라의 방에서는 40만원밖에 모으지 못 했고, 심지어 그 중 4분의 1인 10만원은 박 의원의 딸이 보낸 거였다고 4월 12일 자 방송에서 안유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김구라가 이어받아 밝혔습니다.
  • 박 전 원장 관련으로 역대급 가짜뉴스가 있는데 바로 김대중과 박지원이 일본에게 400조를 받고 독도를 팔아먹고는 그 돈으로 IMF를 극복했다는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엔 여기서 더 추가돼 400조 중 190조가 남아서 참여정부에 물려줬고 이걸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관리했다는 데까지 뻗칩니다.
  • TV와 라디오 출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강적들에선 고정 게스트급으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예능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 2020년 1월 8일에 방송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싶어서 5회 방송분에서 김영란법 이후의 정치인 출연료 가이드라인에 대해 밝혔습니다. 라디오 전화연결은 건당 3만원 , 라디오 게스트 출연은 5~10만원. TV 출연은 30만원 이하, 프로그램 길이가 1시간이 넘으면 50만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 2020년 1월 8일에 방송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싶어서 5회 방송분에서 동향 출신 트로트가수 송가인과 전화연결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 2020년 1월 8일 방송분에는 정치 생초보 입장에서의 돌직구 질문들이 많이 나왔는데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2022년에는 범진보진영 후보로 유시민 전 장관이나 손석희 사장이 적합하다고 언급했고 우파 진영 후보에 대해서는 박근혜가 석방되면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 18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의원회관에서 사용한 방이 615호입니다. 21대 국회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의원이 방을 이어받았습니다.
  • 손자 사랑이 매우 각별한 듯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을 때에도 손자가 동행하여 손자가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받기도 했습니다.
  • 조 바이든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여 대한민국 국정원장인 박지원과 더불어 대북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겠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지원이 소싯적에 뉴욕에서 일한 적이 있어 바이든과 개인적인 친분도 있을 거라는 예상이 나와 기자들이 김홍걸 의원에게 질문했더니 그건 아니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 키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공식석상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합니다.
  • 이스포츠(e스포츠)라는 단어를 공식 석상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때는 박지원이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이었는데 2021년에는 미국인에게 E-sport 단어 공식화한 사람이 지금 정보기관 수장이라고 했더니 놀라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아다닌다.
  • 2021년 사망한 유상철 전 감독의 빈소에 직접 조문을 와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아무래도 유상철이 활약했던 2002 FIFA 월드컵이 과거 그가 비서실장으로써 모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개최됐던 탓에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신해 2002월드컵 주역인 유상철 전 감독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위로를 대신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 대표 별명인 정치9단과 길었던 정치 경력으로 인해 다선 의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총 횟수는 4선으로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는 선술한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인해 오랜 수감 생활을 한 전적 때문에 국회 복귀까지 텀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공백기만 없었어도 충분히 6선 ~ 8선 정도의 다선도 가능했습니다.
  •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9단이며, 국민의 정부 부통령이었고 이런 것으로 보면 머리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눈 문제로 고생을 하고 병원 신세를 오래졌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난 후 눈이 괜찮아져 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광주에 있는 재수학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의대는 떨어졌고, 거기서 만난 여학생이 부인이라고 합니다. 부인은 교대에 들어가서 졸업한 뒤 선생님이 되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이 신부감 1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부인이 박지원과 교제함에도 불구하고 재벌, 부자, 의사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들의 선자리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걸 들은 박지원이 부인에게 "재벌 까짓거 내가 너 재벌 부인 만들어준다" 이렇게 프로포즈하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미국으로 가 박지원은 가발사업으로 초대박을 터트리며, 38살이란 젊은 나이에 뉴욕한인회 회장을 하며 실제로 재벌 부인으로 만들어주었다ㅋㅋ
  •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터뷰하면서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전 시민단체에 있어서, 박지원 대표를 보면 구태의 상징이며 노회한 정치인으로 생각했는데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4년을 하고 보니 박지원 대표처럼 일을 기가막히게 잘하는 사람은 못본 것 같습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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