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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
유희열
柳喜烈 | You Hee Ye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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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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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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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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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19일 (5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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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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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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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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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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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류씨 (文化 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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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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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cm, 58~62kg, A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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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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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이순, 형 류관열(1963년생)
6촌 동생 신보라 |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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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상은(197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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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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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류리아(200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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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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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운국민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 학사) |
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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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병장 만기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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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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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Antenna)
(대표 프로듀서) |
소속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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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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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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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토이 정규 1집 '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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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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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발라드, 일렉트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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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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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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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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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희열, 혈님(옹), 감성변태, 나부랭이,
과장의 달인, 병든 차인표, 반건조 차인표, 좌식MC, 엑스터시유, 안테나 것들, 해피유희열, 유린기 |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 겸 음악 프로듀서이자 기업인, 방송인.
안테나의 대표이자 1990~2000년대 대한민국 가요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뮤지션.
원맨 밴드 토이의 프로듀서이면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또 FM 음악도시의 DJ 겸 시장,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DJ였으며,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입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으로 현재 대회 심사위원이기도 하며, 수상자 중 대중음악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감성적인 한국 발라드의 정립자라 불리우는 유재하를 이어받는 탁월한 작곡-작사-연주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발라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매 음반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구성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만에 졸업했습니다.
90학번인데 2004년에야 졸업.
중간에 군 복무 기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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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의 대표이자 1990~2000년대 대한민국 가요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뮤지션.
원맨 밴드 토이의 프로듀서이면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또 FM 음악도시의 DJ 겸 시장,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DJ였으며,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입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으로 현재 대회 심사위원이기도 하며, 수상자 중 대중음악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감성적인 한국 발라드의 정립자라 불리우는 유재하를 이어받는 탁월한 작곡-작사-연주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발라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매 음반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구성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만에 졸업했습니다.
90학번인데 2004년에야 졸업.
중간에 군 복무 기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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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학창 시절
2남 중 둘째.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해 마음고생을 하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습니다.
라디오천국에서 작곡가 롤러코스터의 지누가 증언한 것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했고,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
실제로 유희열 본인 말로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했고, 어머니는 오토바이 타는 건 말리지 않을테니 앞바퀴만 들지말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예능을 많이 하게 된 이후 마른 몸 때문에 '반건조 차인표' 같은 별명이 생기며 연약한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 젊었을 적 유희열의 인상과 표정, 눈빛 등은 상당히 사나운 느낌이 든다.
이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어머니와 형, 그리고 어떤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감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아노는 고3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안이 상당히 가난해서 피아노를 놓을 장소가 없어 혼자 자취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처음엔 피아노가 없어서 종이 위에 그려진 피아노로 상상 연주를 하고, 멜로디언을 훅훅 불다가 본격적으로 피아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이 때의 경험으로 인해 자기가 세상에서 멜로디언은 제일 잘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합니다.
'스케일'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몰랐던 백지 상태에서 1년만에 거둔 성과였다고.
합격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다음 날 조간신문에 실렸다고 합니다.
물론 유희열의 작곡 기본기가 출중한 덕이었겠지만 2000년 이전까지 서울대 작곡과에는 남학생 할당제 50%가 적용되어 남학생에게 매우 유리한 입시제도가 적용되었습니다.
01학번부터 성별 할당 폐지.
그런데 유희열의 경우, 애초에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어느과를 써도 붙을 수 있다고 확언했으니 더 높은 과를 썼어도 붙었을 것입니다.
음악 공부 뿐만 아니라 학과 공부 자체도 매우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희열 본인 말로는 이 때, 블라인드 테스트로 피아노 실기 연주곡을 2곡 연주해야 하는데 한 곡은 바흐의 푸가로 기본기 테스트, 나머지 한 곡은 어려운 곡으로 고전파 이후의 연주 실력을 테스트하는데 쇼팽이나 베토벤 곡이었으면 못 쳤을 거라고 합니다.
당시 유희열은 벨라 바르톡의 곡을 치게되었는데, 이게 한 음을 한 손으로 손가락을 돌려가며 빠르게 쳐야 해서 엄청 어려운 곡임에도 불구, 자기는 그런 거 못하기 때문에 오락실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긴 덕분에 기막히게 연주한다는 평을 받으면서 합격했다고.
물론 이는 유희열의 방송용 자기비하 개그 내지는 겸손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바흐의 푸가부터가 피아노 연주와 음악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어야 무리없이 잘 칠 수 있는 작품이라.
개인 스타일과 선호에 따라 각각의 곡을 "얼마나 잘 치는가"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볼 때 바흐 푸가는 서울대 작곡과 실기 합격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서 베토벤이나 쇼팽 곡은 못 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게다가 바르톡의 피아노곡은 테크닉 측면으로나 표현 측면으로나 대단히 어려운 편에 속해서, 쇼팽이나 리스트 곡은 웬만큼 치는 예고생이나 음대생들도 난감해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물론 바르톡의 피아노 작품 중에는 미크로코스모스 피아노곡집의 초중반 작품처럼 쉬운 곡도 있지만, 그런 곡을 서울대 작곡과에서 피아노 실기 과제곡으로 출제한다는 건 넌센스입니다.
여담으로 고3 시절 現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박승동(당시는 경복고 교사)이 담임 선생님이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유희열이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밤 중에 사회를 보는 모습이라고 하니 아마도 스케치북일듯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해 마음고생을 하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습니다.
라디오천국에서 작곡가 롤러코스터의 지누가 증언한 것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했고,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
실제로 유희열 본인 말로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했고, 어머니는 오토바이 타는 건 말리지 않을테니 앞바퀴만 들지말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예능을 많이 하게 된 이후 마른 몸 때문에 '반건조 차인표' 같은 별명이 생기며 연약한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 젊었을 적 유희열의 인상과 표정, 눈빛 등은 상당히 사나운 느낌이 든다.
이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어머니와 형, 그리고 어떤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감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아노는 고3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안이 상당히 가난해서 피아노를 놓을 장소가 없어 혼자 자취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처음엔 피아노가 없어서 종이 위에 그려진 피아노로 상상 연주를 하고, 멜로디언을 훅훅 불다가 본격적으로 피아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이 때의 경험으로 인해 자기가 세상에서 멜로디언은 제일 잘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합니다.
'스케일'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몰랐던 백지 상태에서 1년만에 거둔 성과였다고.
합격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다음 날 조간신문에 실렸다고 합니다.
물론 유희열의 작곡 기본기가 출중한 덕이었겠지만 2000년 이전까지 서울대 작곡과에는 남학생 할당제 50%가 적용되어 남학생에게 매우 유리한 입시제도가 적용되었습니다.
01학번부터 성별 할당 폐지.
그런데 유희열의 경우, 애초에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어느과를 써도 붙을 수 있다고 확언했으니 더 높은 과를 썼어도 붙었을 것입니다.
음악 공부 뿐만 아니라 학과 공부 자체도 매우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희열 본인 말로는 이 때, 블라인드 테스트로 피아노 실기 연주곡을 2곡 연주해야 하는데 한 곡은 바흐의 푸가로 기본기 테스트, 나머지 한 곡은 어려운 곡으로 고전파 이후의 연주 실력을 테스트하는데 쇼팽이나 베토벤 곡이었으면 못 쳤을 거라고 합니다.
당시 유희열은 벨라 바르톡의 곡을 치게되었는데, 이게 한 음을 한 손으로 손가락을 돌려가며 빠르게 쳐야 해서 엄청 어려운 곡임에도 불구, 자기는 그런 거 못하기 때문에 오락실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긴 덕분에 기막히게 연주한다는 평을 받으면서 합격했다고.
물론 이는 유희열의 방송용 자기비하 개그 내지는 겸손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바흐의 푸가부터가 피아노 연주와 음악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어야 무리없이 잘 칠 수 있는 작품이라.
개인 스타일과 선호에 따라 각각의 곡을 "얼마나 잘 치는가"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볼 때 바흐 푸가는 서울대 작곡과 실기 합격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서 베토벤이나 쇼팽 곡은 못 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게다가 바르톡의 피아노곡은 테크닉 측면으로나 표현 측면으로나 대단히 어려운 편에 속해서, 쇼팽이나 리스트 곡은 웬만큼 치는 예고생이나 음대생들도 난감해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물론 바르톡의 피아노 작품 중에는 미크로코스모스 피아노곡집의 초중반 작품처럼 쉬운 곡도 있지만, 그런 곡을 서울대 작곡과에서 피아노 실기 과제곡으로 출제한다는 건 넌센스입니다.
여담으로 고3 시절 現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박승동(당시는 경복고 교사)이 담임 선생님이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유희열이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밤 중에 사회를 보는 모습이라고 하니 아마도 스케치북일듯 합니다.
1.2. 본격적인 음악 활동
진학을 앞두고 동아기획으로 찾아가 김영 사장에게 데모테잎을 내고 음악을 하고싶다는 말을 하던 중, 뒤에서 킥킥대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김종진, 전태관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꺼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다고… 후에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걸 할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다고 합니다.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나중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은 이미 중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흑역사인건지 윤상도 유희열 본인도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꿈에 잠기어'입니다.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된 걸로 보아서 중학교 때 만든 노래가 이 곡이 아닌가 하고 추측됩니다.
참고로 김형용은 1980년대에 나름 인기있었던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입니다.
전업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대학 재학 중 김장훈이 이끄는 인디밴드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키보디스트로 가입한 것이였습니다.
첫 대면에 유희열은 김장훈을 미친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묘한 매력에 이끌려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MBC 명랑히어로 '김장훈 편'에서 밝혔습니다.
당시 소개팅 해준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신나게 카페로 갔는데 여대생은 없고 대신 머리 긴 김장훈이 있었다고.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김장훈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The Final Countdown'을 삐딱한 자세로 무심하게 연주하는 유희열을 보며 '쟤 어쩜좋냐' 싶어 자신이 거두었다고 합니다.
근데 정작 김장훈은 유희열을 가두어두고 하루종일 반주만 시켰다고.
이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달빛의 노래'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학업은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클래식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클래식에 대해선 일반인 이하 수준이라서 학교에 적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그 곡에 대한 작곡가와 이름을 맞히는 시험을 볼 때 딸랑 한 문제만 맞혔는데 그 곡을 맞힌 이유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황기순이 이 곡에 맞춰 춤을 춘 것이 기억나서 맞췄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대 작곡과에서도 대중음악에 관심갖는 경우가 많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클래식 서양음악만 공부하는 작곡과에서 이런 대중음악을 하는 것은 굉장히 이단아였습니다.
유재하는 1집 앨범을 학교 때려친다는 각오로 만들었고 1집 앨범 녹음에 스트링 세션으로 참여한 후배들도 자신들이 대중음악 녹음에 참여했다는 것을 학교측에서 알게되면 대학에서 짤릴까봐 몰래 녹음했을 정도였습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입상 이후 유희열은 엔지니어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하였습니다.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는 김현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인이 밝혔습니다.
윤종신, 이승환 등과 함께 작업을 하던 프로뮤지션으로서의 초창기 시절 유희열은 작곡과 프로듀싱만을 전문적으로 하기를 꿈꾸었으나, 김현철이 '네가 진정으로 훌륭한 프로듀서가 되고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보아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고.
이후 이승환 4, 5, 6, 7집, 이문세 10집, 이소라 2집, 윤종신 5집 등에 참여하여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의 음악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1996년 발매된 토이 2집부터 토이를 원맨밴드로 전환하게 되었고,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특유의 변태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1999년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을 내기도 했습니다.
토이 2집 발매 직후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적이 별밤지기를 맡았던 시절 첫 잼 콘서트에 출연했는데, 유희열은 이적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서는 자기가 헤어진 첫 사랑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부르다가 그야말로 폭풍 오열을 터뜨리는 바람에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이적도 상당히 진땀 뺐다는 후문.
이 때 '별밤 잼 콘서트에서 막 운 사람'으로 처음 유희열을 접한 이들도 꽤 된다고 하더라.
그 때 김종진, 전태관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꺼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다고… 후에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걸 할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다고 합니다.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나중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은 이미 중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흑역사인건지 윤상도 유희열 본인도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꿈에 잠기어'입니다.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된 걸로 보아서 중학교 때 만든 노래가 이 곡이 아닌가 하고 추측됩니다.
참고로 김형용은 1980년대에 나름 인기있었던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입니다.
전업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대학 재학 중 김장훈이 이끄는 인디밴드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키보디스트로 가입한 것이였습니다.
첫 대면에 유희열은 김장훈을 미친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묘한 매력에 이끌려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MBC 명랑히어로 '김장훈 편'에서 밝혔습니다.
당시 소개팅 해준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신나게 카페로 갔는데 여대생은 없고 대신 머리 긴 김장훈이 있었다고.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김장훈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The Final Countdown'을 삐딱한 자세로 무심하게 연주하는 유희열을 보며 '쟤 어쩜좋냐' 싶어 자신이 거두었다고 합니다.
근데 정작 김장훈은 유희열을 가두어두고 하루종일 반주만 시켰다고.
이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달빛의 노래'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학업은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클래식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클래식에 대해선 일반인 이하 수준이라서 학교에 적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그 곡에 대한 작곡가와 이름을 맞히는 시험을 볼 때 딸랑 한 문제만 맞혔는데 그 곡을 맞힌 이유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황기순이 이 곡에 맞춰 춤을 춘 것이 기억나서 맞췄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대 작곡과에서도 대중음악에 관심갖는 경우가 많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클래식 서양음악만 공부하는 작곡과에서 이런 대중음악을 하는 것은 굉장히 이단아였습니다.
유재하는 1집 앨범을 학교 때려친다는 각오로 만들었고 1집 앨범 녹음에 스트링 세션으로 참여한 후배들도 자신들이 대중음악 녹음에 참여했다는 것을 학교측에서 알게되면 대학에서 짤릴까봐 몰래 녹음했을 정도였습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입상 이후 유희열은 엔지니어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하였습니다.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는 김현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인이 밝혔습니다.
윤종신, 이승환 등과 함께 작업을 하던 프로뮤지션으로서의 초창기 시절 유희열은 작곡과 프로듀싱만을 전문적으로 하기를 꿈꾸었으나, 김현철이 '네가 진정으로 훌륭한 프로듀서가 되고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보아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고.
이후 이승환 4, 5, 6, 7집, 이문세 10집, 이소라 2집, 윤종신 5집 등에 참여하여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의 음악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1996년 발매된 토이 2집부터 토이를 원맨밴드로 전환하게 되었고,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특유의 변태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1999년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을 내기도 했습니다.
토이 2집 발매 직후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적이 별밤지기를 맡았던 시절 첫 잼 콘서트에 출연했는데, 유희열은 이적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서는 자기가 헤어진 첫 사랑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부르다가 그야말로 폭풍 오열을 터뜨리는 바람에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이적도 상당히 진땀 뺐다는 후문.
이 때 '별밤 잼 콘서트에서 막 운 사람'으로 처음 유희열을 접한 이들도 꽤 된다고 하더라.
2. 성씨
참고로 실제 성은 '류'씨(버들 류)라고 합니다.
그래서 류씨로 해도 되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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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류씨로 해도 되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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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3.1. 음악 스타일
루시드폴은 유희열에 대해 "음악적으로 굉장히 여러 가지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분.
아무리 음악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음악과 취향이 편향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면에서 많이 열려있고 자기 음악으로 체화시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본기가 좋고 라이브에 강한 완성형 보컬들에겐 거의 그 보컬의 한계치에 해당하는 극악의 난이도의 곡을 주기로 유명합니다.
간단히 말해 정말 노래들의 난이도가 괴랄합니다.
가수 죽이려고 만든 노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대체적으로 노래의 키가 높고 클라이맥스에서 숨돌릴 부분도 없이 몰아칩니다.
그래서인지 곡을 받은 가수들이 곡 난이도에 대해 불만을 자주 드러냅니다.
조원선은 녹음을 마치고 유희열을 힐끗 보고 고개를 저으며 “아유~ 저 오빠 독해 독해.
”라며 툴툴댔다고 합니다.
윤하는 편한가봐를 불러달라는 관객의 요청에 "진짜 안 편한 노래를 시킨다"고 푸념했고, 토이 7집의 2번 트랙 Reset을 부른 가수 이적은 2018.
01.
13 유스케에 출연해서 가수가 어디까지 부를지 안 부를지 생각을 안 하고 연주곡 만들듯이 곡을 쓴다면서 한바탕 푸념을 내뱉다가 유희열의 요청으로 Reset를 부르고 갔으며 같은날 출연한 윤종신 역시 유희열이 좋니 얘기를 꺼내자, 노래 못하는 친구들이 곡 쓸 때 막 가성으로 워후하고 낸다며 실제 그걸 진성으로 소화하라고 하는 걸 볼 때마다 '김연우가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정도다.
박정현도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어려운 노래로 으레 유희열이 작곡한 3집의 ‘아무말도, 아무것도’를 꼽는데, 콘서트를 마치고 SBS 더 팬의 녹화에 참여한 박정현에게 유희열이 콘서트에서 어떤 곡이 가장 호응이 좋았냐고 집요하게 묻자 "오빠 곡은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성시경은 안녕 나의 사랑 녹음 당시 노래는 참 좋은데 쉬는 부분이 어딨냐고 투정하자 유희열이 간주 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세 사람 녹음 때 결과물이 영 만족스럽지 못해 성시경이 자발적으로 10일 금연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 재녹음이 성공하자 줄담배를 피우며 "살 것 같다" 말한 일화는 기사까지 났을정도.
유희열 앨범 참여 가수를 보면 알겠지만 가수들의 실력이 대단한데도 이렇게 가수들이 힘들어하는 건 유희열 특유의 작곡/작사스타일에 있습니다.
앞에서 김연우가 부른 거짓말 같은 시간과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예를 들었는데, 다른 작사 작곡이 올리지 않는 부분 예컨대 널 만날 때보다에서 "날"에서 최고음이 나오거나, 영원히 에서 "히"에서 최고음이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본인이 부를 곡이나 윤상처럼 보컬이 주포지션이 아닌 사람에겐 쉬운 노래를 줍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작사한 노래의 화자가 좋게 말해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찌질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유난히 떠나간 사람에게 독백의 형태로 안부를 묻는 가사가 많고, 남성 화자에게 이별이 찾아왔을 땐 원망 대신 앞으로에 대한 축복을 합니다.
심지어 이별의 원인은 십중팔구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자책까지.
이렇게 소심한 화자를 많이 표현하다 보니 짝사랑이 많고 사랑고백을 하는 노래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그랬나봐 에서 고백을 하긴 하는데 유희열노래답게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고백하는 것을 잘 표현합니다.
아무리 음악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음악과 취향이 편향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면에서 많이 열려있고 자기 음악으로 체화시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본기가 좋고 라이브에 강한 완성형 보컬들에겐 거의 그 보컬의 한계치에 해당하는 극악의 난이도의 곡을 주기로 유명합니다.
간단히 말해 정말 노래들의 난이도가 괴랄합니다.
가수 죽이려고 만든 노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대체적으로 노래의 키가 높고 클라이맥스에서 숨돌릴 부분도 없이 몰아칩니다.
그래서인지 곡을 받은 가수들이 곡 난이도에 대해 불만을 자주 드러냅니다.
조원선은 녹음을 마치고 유희열을 힐끗 보고 고개를 저으며 “아유~ 저 오빠 독해 독해.
”라며 툴툴댔다고 합니다.
윤하는 편한가봐를 불러달라는 관객의 요청에 "진짜 안 편한 노래를 시킨다"고 푸념했고, 토이 7집의 2번 트랙 Reset을 부른 가수 이적은 2018.
01.
13 유스케에 출연해서 가수가 어디까지 부를지 안 부를지 생각을 안 하고 연주곡 만들듯이 곡을 쓴다면서 한바탕 푸념을 내뱉다가 유희열의 요청으로 Reset를 부르고 갔으며 같은날 출연한 윤종신 역시 유희열이 좋니 얘기를 꺼내자, 노래 못하는 친구들이 곡 쓸 때 막 가성으로 워후하고 낸다며 실제 그걸 진성으로 소화하라고 하는 걸 볼 때마다 '김연우가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정도다.
박정현도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어려운 노래로 으레 유희열이 작곡한 3집의 ‘아무말도, 아무것도’를 꼽는데, 콘서트를 마치고 SBS 더 팬의 녹화에 참여한 박정현에게 유희열이 콘서트에서 어떤 곡이 가장 호응이 좋았냐고 집요하게 묻자 "오빠 곡은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성시경은 안녕 나의 사랑 녹음 당시 노래는 참 좋은데 쉬는 부분이 어딨냐고 투정하자 유희열이 간주 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세 사람 녹음 때 결과물이 영 만족스럽지 못해 성시경이 자발적으로 10일 금연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 재녹음이 성공하자 줄담배를 피우며 "살 것 같다" 말한 일화는 기사까지 났을정도.
유희열 앨범 참여 가수를 보면 알겠지만 가수들의 실력이 대단한데도 이렇게 가수들이 힘들어하는 건 유희열 특유의 작곡/작사스타일에 있습니다.
앞에서 김연우가 부른 거짓말 같은 시간과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예를 들었는데, 다른 작사 작곡이 올리지 않는 부분 예컨대 널 만날 때보다에서 "날"에서 최고음이 나오거나, 영원히 에서 "히"에서 최고음이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본인이 부를 곡이나 윤상처럼 보컬이 주포지션이 아닌 사람에겐 쉬운 노래를 줍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작사한 노래의 화자가 좋게 말해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찌질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유난히 떠나간 사람에게 독백의 형태로 안부를 묻는 가사가 많고, 남성 화자에게 이별이 찾아왔을 땐 원망 대신 앞으로에 대한 축복을 합니다.
심지어 이별의 원인은 십중팔구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자책까지.
이렇게 소심한 화자를 많이 표현하다 보니 짝사랑이 많고 사랑고백을 하는 노래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그랬나봐 에서 고백을 하긴 하는데 유희열노래답게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고백하는 것을 잘 표현합니다.
3.2. 가창력
가창력은 평범한 수준입니다.
노래를 아예 못 부르는 음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보컬로서는 부족한 편.
실제 노래를 들어보면 음정이 굉장히 심하게 떨리고 음을 잘 못 맞추는 편으로, 절대음감이 꼭 노래 실력과 연관되지는 않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소라는 이를 두고 유희열은 발성 자체가 선천적으로 안 된다고 디스했습니다.
참고로 본인은 노래를 부를 때 본인이 음정이 떨리고,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한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10여년 전에 비하면 노래 실력이 꽤 많이 발전했습니다.
콘서트에서 가끔 본인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토이 앨범들의 수록곡 중 한, 두 곡 정도는 유희열이 부른 곡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희열이 본인이 작곡하지 않은 곡을 실제 녹음한 사례도 있긴 합니다.
2002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의 사실상 오프닝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사는 곳이라는 노래인데, 이병우 작곡에 유희열 노래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곡은 금영노래방에도 60065번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노래를 아예 못 부르는 음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보컬로서는 부족한 편.
실제 노래를 들어보면 음정이 굉장히 심하게 떨리고 음을 잘 못 맞추는 편으로, 절대음감이 꼭 노래 실력과 연관되지는 않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소라는 이를 두고 유희열은 발성 자체가 선천적으로 안 된다고 디스했습니다.
참고로 본인은 노래를 부를 때 본인이 음정이 떨리고,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한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10여년 전에 비하면 노래 실력이 꽤 많이 발전했습니다.
콘서트에서 가끔 본인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토이 앨범들의 수록곡 중 한, 두 곡 정도는 유희열이 부른 곡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희열이 본인이 작곡하지 않은 곡을 실제 녹음한 사례도 있긴 합니다.
2002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의 사실상 오프닝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사는 곳이라는 노래인데, 이병우 작곡에 유희열 노래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곡은 금영노래방에도 60065번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3.3. 섹드립의 레전드
문명이 유행한 당시에 문명 5에 나오는 정복왕 간디와 합성된 '유희열 사태'가 미친듯한 싱크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순순히 카라를 내놓는다면 유희열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입니다.
" 결국 유희열 사태를 알아 버렸습니다.
포인트는 개그대신 노래욕심.
신동엽의 후계자.
초/중/고등학교 1년 선배이자 경복고등학교 방송반 선배인 신동엽이 인정한 변태라고 합니다.
신동엽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이 중학생 때 진명여자중학교 퀸카랑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걔한테 무슨 매력이 있는 거지?"라는 호기심에 방송반으로 데려왔다고.
참고로, 그 당시에 공형진이 3학년 졸업반, 신동엽이 2학년, 유희열이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이런 인맥 관계로 신동엽은 1990년대 중반에 자기가 진행하던 MBC 표준FM <내일로 가는 밤>이라는 야간 라디오 프로그램에 당시에 무명이던 유희열을 고정 패널로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병든 차인표'라고 칭하는것도 모자라, 스스로 앤드류 넬슨, 유스케 산타마리아와 닮았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케미스트리가 라디오천국에 출연했을때 인정했습니다.
심지어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시절 코너 이름은 차인표가 출연하는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를 패러디한 <별의별게 내 가슴에>입니다.
하지만 머리를 장발로 길게 길렀을 때는 마릴린 맨슨과 똑같았던 건 함정.
라디오천국 진행 당시에 열심히 밀던 호칭은 '기무타꾸' UV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유희왕'입니다.
뭐가 왕인지는 생략.
예능 가운데에서는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듯, 자기가 나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밖에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언급하는 유일한 예능, 여성에게 어필하는 법을 무한도전 레슬링특집에 비유해서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헬스클럽에 다닌 적이 있는데, 유희열의 트레이너가 유희열을 부르는 호칭은 "혈님"이라고.
2011년에는 진중권, 윤종신과 서로 외모 논쟁이 붙었었습니다.
"진중권과 윤종신의 외모 논쟁은 전파낭비"아이유와 함께 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눈을 감고 발을 뻗은 모습이 캡처되었는데.
아이유와 하도 얽혀서 '매의 눈'이란 기믹이 새로 추가되었습니다.
TV 전문 매거진으로 유명한 텐아시아에서 새로운 유행어로 희르가즘을 만들어냈다!!! 희르가즘의 정의는 직접 가서 보길 바랍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베스티즈의 한 네티즌이 만든 용어에 정의를 붙인거지만 센스가 좋습니다.
아끼는 후배들을 누구보다 더 잘 챙겨주는 거 같습니다.
에픽하이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오랜만에 출연한 때에, 타블로 손을 잡고 눈빛으로 "이렇게 무대 위에서 보니깐 좋아요.
"라고 약간 울컥하는 어투로 말했습니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후배가 무너질뻔 했다는게 안타까웠던 듯.
대기실에서는 타블로의 엉덩이를 야하게 만졌다고 합니다.
유희열의 말로는 "아끼는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면 그렇게 만집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호는 '관음(觀淫)'이라고 합니다.
방송의 적 마지막 회에서 출연하여 감성변태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보아가 하차하게 된 K팝 스타의 심사위원으로 합류했습니다.
2013년 10월, 아이유 3집 의 수록곡 "분홍신"의 뮤직비디오에서도 페퍼톤스 맴버들과 함께 출연했는데, 장난 아닙니다.
음도에 아이유가 출연한 나중에 손이 닿았느냐 안 닿았느냐는 아이유 팬들의 질문에 닿았다고 하자 성시경의 반응은 "그 형은 왜 그런 거야.
" 2014년 자 카스 라이트 광고로 출연했는데, 그윽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수상한 만남편 풀파티편꽃보다 시리즈의 후속인 '꽃보다 청춘'에 이적, 윤상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2014년 말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에서는 게스트로 신민아를 초청하여 또 레전설을 만들었습니다.
돌림판에 게임을 적어 걸리는 걸 하기로 했는데 게임들이 발 씻겨주기, 허벅지 씨름, 보리보리쌀, 어부바, 가슴으로 풍선 터트리기, 왕게임 등등.
결국 신민아한테 '변태'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결국 2015년 공연 중에 도를 넘은 성적인 발언 때문에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콘서트 청중들의 분위기는 좋았다'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2019년 놀면 뭐하니?에 나와서 밝히길 딸이 "아빠는 왜 변태야?"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섹드립을 자주 치긴 하지만 이미지는 좋은 연예인입니다.
이를 두고 윤종신, 이적, 정재형 등의 주변인들이 질투를 하기도 합니다.
2011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정재형이 밝히길 유희열이 써먹은 섹드립 멘트가 빵빵 터지기에 본인도 콘서트에서 따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객들이 이를 듣고 질색을 하자 바로 사과했다고.
이를 두고 동료들은 유희열은 사람들이 뇌가 혀에 달린 사람이라고 평했으며 윤종신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유희열은 그런 드립을 칠 타이밍을 안다고 분석하기도 했고 특유의 병약하고 마른 이미지 때문에 섹드립을 쳐도 사람들이 안 싫어한다고 부러워했습니다.
"순순히 카라를 내놓는다면 유희열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입니다.
" 결국 유희열 사태를 알아 버렸습니다.
포인트는 개그대신 노래욕심.
신동엽의 후계자.
초/중/고등학교 1년 선배이자 경복고등학교 방송반 선배인 신동엽이 인정한 변태라고 합니다.
신동엽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이 중학생 때 진명여자중학교 퀸카랑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걔한테 무슨 매력이 있는 거지?"라는 호기심에 방송반으로 데려왔다고.
참고로, 그 당시에 공형진이 3학년 졸업반, 신동엽이 2학년, 유희열이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이런 인맥 관계로 신동엽은 1990년대 중반에 자기가 진행하던 MBC 표준FM <내일로 가는 밤>이라는 야간 라디오 프로그램에 당시에 무명이던 유희열을 고정 패널로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병든 차인표'라고 칭하는것도 모자라, 스스로 앤드류 넬슨, 유스케 산타마리아와 닮았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케미스트리가 라디오천국에 출연했을때 인정했습니다.
심지어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시절 코너 이름은 차인표가 출연하는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를 패러디한 <별의별게 내 가슴에>입니다.
하지만 머리를 장발로 길게 길렀을 때는 마릴린 맨슨과 똑같았던 건 함정.
라디오천국 진행 당시에 열심히 밀던 호칭은 '기무타꾸' UV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유희왕'입니다.
뭐가 왕인지는 생략.
예능 가운데에서는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듯, 자기가 나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밖에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언급하는 유일한 예능, 여성에게 어필하는 법을 무한도전 레슬링특집에 비유해서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헬스클럽에 다닌 적이 있는데, 유희열의 트레이너가 유희열을 부르는 호칭은 "혈님"이라고.
2011년에는 진중권, 윤종신과 서로 외모 논쟁이 붙었었습니다.
"진중권과 윤종신의 외모 논쟁은 전파낭비"아이유와 함께 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눈을 감고 발을 뻗은 모습이 캡처되었는데.
아이유와 하도 얽혀서 '매의 눈'이란 기믹이 새로 추가되었습니다.
TV 전문 매거진으로 유명한 텐아시아에서 새로운 유행어로 희르가즘을 만들어냈다!!! 희르가즘의 정의는 직접 가서 보길 바랍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베스티즈의 한 네티즌이 만든 용어에 정의를 붙인거지만 센스가 좋습니다.
아끼는 후배들을 누구보다 더 잘 챙겨주는 거 같습니다.
에픽하이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오랜만에 출연한 때에, 타블로 손을 잡고 눈빛으로 "이렇게 무대 위에서 보니깐 좋아요.
"라고 약간 울컥하는 어투로 말했습니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후배가 무너질뻔 했다는게 안타까웠던 듯.
대기실에서는 타블로의 엉덩이를 야하게 만졌다고 합니다.
유희열의 말로는 "아끼는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면 그렇게 만집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호는 '관음(觀淫)'이라고 합니다.
방송의 적 마지막 회에서 출연하여 감성변태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보아가 하차하게 된 K팝 스타의 심사위원으로 합류했습니다.
2013년 10월, 아이유 3집 의 수록곡 "분홍신"의 뮤직비디오에서도 페퍼톤스 맴버들과 함께 출연했는데, 장난 아닙니다.
음도에 아이유가 출연한 나중에 손이 닿았느냐 안 닿았느냐는 아이유 팬들의 질문에 닿았다고 하자 성시경의 반응은 "그 형은 왜 그런 거야.
" 2014년 자 카스 라이트 광고로 출연했는데, 그윽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수상한 만남편 풀파티편꽃보다 시리즈의 후속인 '꽃보다 청춘'에 이적, 윤상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2014년 말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에서는 게스트로 신민아를 초청하여 또 레전설을 만들었습니다.
돌림판에 게임을 적어 걸리는 걸 하기로 했는데 게임들이 발 씻겨주기, 허벅지 씨름, 보리보리쌀, 어부바, 가슴으로 풍선 터트리기, 왕게임 등등.
결국 신민아한테 '변태'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결국 2015년 공연 중에 도를 넘은 성적인 발언 때문에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콘서트 청중들의 분위기는 좋았다'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2019년 놀면 뭐하니?에 나와서 밝히길 딸이 "아빠는 왜 변태야?"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섹드립을 자주 치긴 하지만 이미지는 좋은 연예인입니다.
이를 두고 윤종신, 이적, 정재형 등의 주변인들이 질투를 하기도 합니다.
2011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정재형이 밝히길 유희열이 써먹은 섹드립 멘트가 빵빵 터지기에 본인도 콘서트에서 따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객들이 이를 듣고 질색을 하자 바로 사과했다고.
이를 두고 동료들은 유희열은 사람들이 뇌가 혀에 달린 사람이라고 평했으며 윤종신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유희열은 그런 드립을 칠 타이밍을 안다고 분석하기도 했고 특유의 병약하고 마른 이미지 때문에 섹드립을 쳐도 사람들이 안 싫어한다고 부러워했습니다.
4. 수상 내역
- 1993년제4회 유재하 가요제 대상
- 제4회 유재하 가요제 대상
- 2009년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상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상
-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 2010년KBS 연예대상 라디오 DJ상
- KBS 연예대상 라디오 DJ상
- 2012년KBS 연예대상 음악,쇼부문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 KBS 연예대상 음악,쇼부문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 2014년제24회 한국 PD대상 TV 진행자부문 출연자상SBS 연예대상 특별상
- 제24회 한국 PD대상 TV 진행자부문 출연자상
- SBS 연예대상 특별상
- 2015년제7회 멜론뮤직어워드 TOP 10
- 제7회 멜론뮤직어워드 TOP 10
- 2017년제16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진행상
- 제16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진행상
- 2020년2020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 뮤지션 엔터테이너 부문
- 2020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 뮤지션 엔터테이너 부문
5. 논란
- 2015년 4월 콘서트중 여성관중에게 "여자분들 다리 벌려 달라"는 농담을 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했습니다.
- '유희열의 생활음악' 프로젝트를 통해 공개한 신곡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 Aqua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일었고 표절을 인정한 뒤 유사성을 인정하고 발매를 연기했습니다.5개월 전에 유튜브를 통해서 해당 문제를 제기했고, 정식 발매 된다는 이야기가 되어 원작자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6. 이야기들
- 이촌동에 거주하다가 2014년부터는 청담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 닮은꼴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걸그룹 러블리즈의 JIN이 꼽힙니다. 2015년 10월 스케치북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본인도 인터넷 보다가 알았는지 먼저 언급하고 JIN이 '아빠'라고 부르자 당황했습니다.
- CF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배경음악 '공원에서'도 유희열이 고등학생 시절에 직접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 어렸을 때 MBC 청룡 팬이라서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절친한 가수 김장훈은 두산 베어스 팬이라 야구 얘기할 때는 서로 으르렁거린다고 합니다.
- 2016년을 시작으로 매년 연말부터 구정 전까지 그의 이름을 언어유희로 활용한 ‘해피 유희열’짤이 신년인사용 이미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 닮은꼴로 남준재가 있습니다. 축구팬들은 농담으로 남준재에게 유희열이라고도 합니다.
- 대화의 희열에 출연하는 게스트의 정보를 나무위키에서 얻습니다. 심지어 핸드폰을 꺼내 나무위키 안정환 문서의 어록 부분을 보며 그대로 읊어주는 모습이 방송을 탔습니다.
- 2001년 최화정의 파워타임 전설의 코너 "로맨스여 영원하라"에서 성시경,박효신과 함께 고정 게스트를 맡았었습니다.
- 분명 본업은 프로듀서급 뮤지션인데 깐족대는 면이 있고 입담도 좋아서 예능 방송 출연이 잦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 웃음만큼은 절대 포기 못한다며 웃음 욕심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국민MC이자 대표적인 예능 방송인 유재석과 만날 때마다 주고받는, 대단한 사람들끼리 하찮게 티격태격하는 케미가 특히 일품. 때론 진지하게 때론 깐족대며 서로를 디스하는 게 두 사람 토크의 대부분인데, 이 때문에 유재석은 "희열이 형은 사람을 희한하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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