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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근황/뭉쳐야산다/췌장암/감독/국가대표

by 생생생존정보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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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전 국가대표 선수가 현 인천 유나이티드 명예 감독이 뭉쳐야 산다에 출연하면서 근황을 공개했다. 

유상철 감독은 퀘장암 판정을받고 투병중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에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늘은 유상철 선수시절과 그의 프로필을 확인해 보겠다. 

1. 프로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까지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았다.

1990년 청소년 대표에 발탁됐으나 1991년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는 남북단일팀을 이유로 탈락했다.

1994년 3월 미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후 2005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 한일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후 '한일전의 사나이'란 별명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날아라 슛돌이 감독과 춘천기계공고 축구부 창단 감독과 대전 시티즌 감독을 지냈다.

2019년 11월 19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임을 밝혔다.

 

이름

유상철
柳想鐵 | Yoo Sang-Chul

출생

1971년 10월 18일 (48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은평구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4cm | 체중 78kg | A형

직업

축구선수(전 포지션[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건국대학교 (1990~1993)
울산 현대 (1994~1998)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9~2000)
가시와 레이솔 (2001~2002)
울산 현대 (2002~200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3~2004)
울산 현대 (2005~2006)

감독

날아라 슛돌이 (2006~2009)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2009~2011)
대전 시티즌 (2011~2012)
울산대학교 (2014~2017)
전남 드래곤즈 (2018)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9)

국가대표

8경기 0골(대한민국 U-23/1996~2004)
124경기 18골(대한민국/1994~2005)

2. 선수생활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당시 울산 현대의 감독은 다름 아닌 차범근. 유상철을 눈여겨 보고 있던 차범근은 잘 다듬어서 분데스리가로 진출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하필 입단 첫 해였던 1994년 시즌 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국가대표팀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게 되면서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부터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전인 한일전 당시, 전반전에 미우라 카즈요시에게 실점하며 끌려가던 대한민국에 동점 골을 안겼다. 이후 2골을 넣은 황선홍과 함께 난타전 끝에 한일전 승리를 합작, 대한민국은 전년도에 도하에서 일본에 당한 패배를 설욕했다.


타고난 파이터 기질과 뛰어난 제공권 장악 능력을 가졌으며, 내구성도 좋아 꾸준히 국가대표팀의 한 자리를 도맡았다. 당시 국대급 미드필더로 거론되던 윤정환, 고종수 등은 부상이나 전술 상의 문제 탓에 국대에서 실제 활약하는 일이 드물었다. 더군다나 그의 투지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는데, 히딩크호 시절 전반전에 코 부상을 입었고 후반전을 뛰면서 코에 다시 충격을 강하게 입을 경우 생명에도 지장이 갈 수 있는 부상이라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상철은 후반전도 뛰겠다고 강변하면서 출장해 골을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투지를 보였다.


그 외에도 갑작스런 부상으로 국대 라인업에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최우선으로 땜빵이 가능한(...) 고마운 자원이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네덜란드전 5-0 대패로 차범근 감독이 경질당하고 김평석 감독 대행이 지휘하던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홍명보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전, 악으로 깡으로 뛰다가 기어이 하석주의 크로스를 받아 1-1 동점을 만드는 골을 넣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골로 벨기에는 예선 탈락. 그리고 20년 후 한국은 또 다시 물귀신을 재현했다


위키백과에 등재되어 있는 그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양쪽 윙백, 센터백(...). 한마디로 골키퍼 빼고는 안 뛰어 본 포지션이 없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A매치 경기에서 소화한 경험이 있으며 K리그 역사를 통틀어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에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2명 중 하나다.

다른 한 명은 삼손 김주성. 탁월한 하드웨어와 그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킥력, 거기에 덧붙여 뛰어난 임기응변, 경기의 맥을 짚는 능력과 위치 선정 등이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언제나 자기 몫을 해내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가 바로 유상철이었다.


1998 시즌 울산 현대에서 23경기 15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력을 과시했으며, 득점왕을 수상하고 베스트 11에는 미드필더로 들어갔다.

 

3. 국가대표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일본과의 8강전에서 동점골을 기록해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이후 대표팀의 주전급으로 성장하여 붙박이 선수로 자리잡았다.


K리그 시절 이장관, 김대수 등과 폭력 사태, 그리고 대표팀에서 득점력이 있는 선수에게 으레 따라붙는 별명 홈런왕(...)등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 않았으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승점 1점을 가져오는 벨기에전 동점골로 한국의 체면을 살려놓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계기로 일약 재조명받게 되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전 한국 축구인들과 팬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 축구는 체력과 정신력은 좋지만 기술이 별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문에 브라질 유학이나 게임 메이커 같은 단어에 목을 맸다. 반면 히딩크는 부임 이후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수준급인데, 체력과 정신력이 엉망이다"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했다.


사실 유상철은 요즘 대표팀 선수들에 비하자면 낯이 뜨거울 정도로 볼 터치 및 드리블 능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장점들- 앞서 언급했던 탁월한 하드웨어와 시야, 위치선정 능력으로 중원을 장악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대표선수들 중에서는 김남일, 박지성, 송종국 등과 함께 히딩크 축구에 가장 최적화된 선수 중 하나였다. 결국 "유럽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자"는 고정관념을 깨고 "대등한 힘으로 맞서싸운다"는 히딩크 축구의 핵심 멤버로 맹활약했다.


끝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대회 BEST 11에 선발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축구 평론가 앤드류 워쇼는 유럽축구연맹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유상철은 이번 월드컵에 참여한 수비형 미드필더 중 최고다. 그의 침착성과 탁월한 볼 배급 능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라 평가했다. 그것도 모자라 "세계 축구팬들은 그의 등 번호(6)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홍명보, 황선홍이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고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부임 이후 국가대표팀 주장이 되었다. K리그에서 공격수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당시 득점난에 시달리던 코엘류호에 안정환과 같이 투톱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 8강에 올랐고, 2005년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출장했다. 내심 독일 월드컵 출전도 기대했으나 2005년 후반기부터 이어진 왼쪽 무릎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2006년 은퇴하게 된다.

 

4. 감독생활

1) 2014~2017 울산대학교 감독

울산대학교에 부임하자마자 2014년, 2015년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2015년 전국체육대회 남자 축구 대학부에서 준우승, 2년 뒤 제48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단국대학교를 상대로 또 다시 준우승을 거뒀다. 유상철이 울산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총 4번의 준우승을 맛보게 됐다. 유상철은 결국 대한민국 축구계의 콩라인에 가입했다.특히 추계대학축구연맹전 결승전 직후 인터뷰에서 '굿이라도 해야 하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전남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김현석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2) 2018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18 시즌을 앞두고 14경기 연속 무승으로 겨우 클래식에 잔류당한 전남이 노상래 감독을 경질하고 유상철을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대략 5년만에 프로 팀 감독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한편 대전 시티즌 7대 감독이였던 김인완이 전력강화실장으로 전남에 소속이 되어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한 팀의 전임 감독과 후임 감독이 같은 한 팀에 소속되어 있는 상황 역시 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3) 2019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4. 췌장암 투병 및 근황

췌장암 투병 중인 유상철 감독의 근황이 전해지며 네티즌들의 뜨거운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1일 오후 방송된 JTBC '뭉쳐야 찬다'에 출연한 유상철은 췌장암 투병 사실을 고백한 이후 약 6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유상철은 지난해 소속팀인 인천유나이티드의 K리그1 잔류가 확정된 이후 췌장암 치료를 위해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후 약 6개월 만에 등장한 유상철은 "계속 치료 받고 있고, 많이 호전됐다"며 현재 몸 상태를 설명했다.

또한 유상철은 많은 이들의 응원 덕분에 치료를 잘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유상철이 '뭉쳐야 찬다'를 통해 근황을 전하며 네티즌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췌장암으로 인천을 떠난 유상철은 현재 인천유나이티의 명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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