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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 사퇴/이유/사임/재산/감독/결혼/아들 정리

by 생생생존정보 2020.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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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 감독이 프로농구 LG에서 물러났다 

2020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 사퇴하기로 결정이 난것이다. 

 

성적의 부진으로 이러한 결정이 된것으로 보이는데 현주엽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알아보았다. 

1. 프로필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였고 前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


전성기 때는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렸고, KBL에서 포인트 포워드라는 포지션을 정립한 사나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상과 불운으로 인해 제 기량을 다 펴지 못하고 은퇴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별명은 매직 히포. 그러나 감독으로써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대표적 사례.

이름

현주엽
玄周燁 / Ju-Yeop Hyun

출생

1975년 7월 27일 (4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본관

연주 현씨

학교

서울도성초등학교(졸업)
휘문중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학 / 학사)

신체

195cm |체중 139kg

직업

농구선수(파워 포워드/ 은퇴)
농구감독

종교

불교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1번 (SK)

병역

상무 농구단 (2001~2003)

소속

선수

 청주 SK 나이츠 (1998~1999)
 광주/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 (1999~2003)
 부산 KTF 매직윙스 (2003~2005)
 창원 LG 세이커스 (2005~2009)

감독

 창원 LG 세이커스 (2017~2020)

해설자

 (2014~2017/ 농구 해설위원)

2. 선수시절

어머니는 국가대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 농구선수인 홍성화. 정작 현주엽은 이 사실을 처음 농구에 입문한 중학교 1학년 때 알았다고 한다. 즉, 농구선수의 피를 타고는 났지만 시작은 늦은 편. 거기다 당시에는 살이 많이 쪘던 상태라 휘문중학교 1, 2학년때는 존재감 없이 팀내에서 연습만 하고 있었다. 이때 현주엽과 같이 구석에서 연습만 하던 1년 선배가 바로 위장 전학야구를 하다가 농구로 갓 전향한 서장훈이었다. 이 둘은 농구선수로 기본기를 다지고 폭풍성장하면서 동시에 잠재력이 폭발했고 휘문고는 무적이 되었다. 서장훈이 졸업한 후에도 현주엽은 휘문고를 혼자 이끌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두 사람이 절친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선수로서 서로 간의 라이벌 의식은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대의 현주엽 영입 과정은 정말 간단했다. "너, 연세대 가면 서장훈 그늘에 가린다." 이 말 한 마디에 현주엽은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고, 이후 둘은 대학 시절 내내 치열하게 격돌했다. 그러나 승자는 간발의 차이로 항상 우승을 차지했던 서장훈이었다. 서장훈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등과 호흡을 맞추어서 2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에 성공하지만, 현주엽과 전희철, 양희승, 신기성, 김병철이 포진한 고려대는 끝내 농구대잔치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다

전역 후에는 코리아텐더로 돌아가서 KTF에 인수된 뒤에도 역시 '포인트 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이미 현주엽의 무릎 상태는 좋지 않아 이미 연골이 닳아버린 상황이었고, 외국인 선수들과 부대껴야 하는 4번 자리에서 투쟁할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시스트에 주력하는 포인트포워드는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함이었다. 그리고 현주엽은 불행히도 점차 어정쩡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FA로 풀리기 직전인 2004-05 시즌 평균 14.2득점, 어시스트 7.8개를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PO에서도 평균 23점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어시스트와 PO 활약에 주목했지 점점 줄어드는 평균 득점에는 주목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런 활약으로 현주엽의 FA 가치는 높아졌고, 이를 주목한 것은 포워드에 환장하던 신선우 감독이었다. 즉시 FA로 질러서 현주엽을 영입했는데, 결국 무릎이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젊은 때처럼 힘과 탄력으로 외국인 선수들과 맞짱을 뜰 수도 없었고, 패스에 주력하기에는 그의 무릎 역시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냉정하게 말해 LG에서 먹튀로 전락했다. 보상 선수로 KTF로 간 송영진이 알에서 껍질을 깨면서 성장한 것에 비하면 LG의 손해.


그래도 LG의 전력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팀에 있던 첫 해를 빼고 나머지 3년 동안 모두 PO에 올랐다. 가장 전력이 좋았던 것은 2006-07 시즌. 그러나 이 해 KTF와의 4강 PO에서 폭행 사태로 외국인 선수 퍼비스 파스코가 영구제명되면서 졸지에 외국인 선수 한 명만으로 경기를 치른 LG는 결국 패하고 만다. 현주엽의 프로 선수 커리어 동안 가장 챔피언결정전에 가까웠던 순간이 이때였다. 이후 현주엽은 은퇴할 때까지 프로와 아마가 함께 뛰던 시절의 농구대잔치와 KBL을 통틀어서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은퇴했다.


무릎이 좋지 않던 현주엽은 2009년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재활 도중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한다. 그래서 2009년 6월 24일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화려했던 현주엽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끝맺음이 너무도 허망했다. 그래도 아시안게임에서 국가 대표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얻은 게 현주엽에게는 선수로서 누린 최고의 영광이자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3. 은퇴 이후

선수 생활 당시에도 여러 염문이 많았다. 연예인과 염문 자체는 상관없는데, 이게 자기 관리 소홀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자세한 이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검색창에 현주엽을 치면 알아서 알게 된다. 어쨌든 결혼이 또래보다 좀 늦은 편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가 은퇴하기 전에도 결혼은 못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팬들도 있었다.


일반인과 2007년에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내외에도 어수선했던 고려대 농구부 감독 취임설이 돌기도 했으나 일선 지도자에는 딱히 마음을 두지 않은 듯.2010년 7월 스포츠의학, 재활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아마도 자신의 부상과 재활 실패가 정말로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문제는 은퇴하고 모아둔 돈을 펀드 매니저에게 모두 맡겼다가 이걸 다 날려먹는 피해를 본 것. 그리고 이 때 날아간 돈이 무려 17억이다. 결국 주변과 연락도 모두 끊어지고, 대외 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두문불출 그 사이 열린 OB 연고전이나, KBL 15주년 기념 올스타에 모두 선정되었지만 전부 다 불참했다.

 

4. 감독

BL 프로농구의 명장이었던 김진 감독과 구단 역대 최장수인 6년 이후 인연을 포기한 은퇴했던 친정팀인 LG에서 창원 LG 세이커스의 7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08-09 시즌 은퇴 이후 8년만의 복귀였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 감독의 시대에 환영을 하기도 했으나 프로와 대학에서 모두 경험조차 없는 왕초보에 대해 경기력이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심지어 프로 코치경험은 없었고 대학에서도 감독은 둘째쳐도 코치를 맡지도 않았다.


2017년 4월 27일 자신보다 선배였던 갑작스레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재계약에 실패한 전 동부 프로미 감독이었던 김영만을 수석코치로 불렀고 서동철 감독을 보좌했던 전 KB 스타즈 코치 출신이자 팀의 창단멤버 겸 주장 출신 센터인 박재헌을 선배이지만 코치로 부르더니 전자라이벌인 서울 삼성 썬더스 출신의 05-06 KBL 파이널 MVP였던 1년 후배인 강혁을 코치진으로 합류시켰다

 

5. 이슈 및 사건

2013년 7월 10일,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은퇴하고 모아둔 돈을 중·고교 및 대학 동창인 황 모 씨로부터 소개받은 삼성선물의 펀드 매니저 이 모 씨에게 모두 맡겼다가 날려먹었다. 지인 박 모 씨 소개로 돈을 투자했는데, 박씨와 이씨가 짜고 다른데 쓸 돈을 막기 위해서 현주엽을 이용했다고 한다.


2012년 5월 12일 삼성선물을 상대로 한 17억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삼성선물에서 8억 7천만원을 돌려받았다고 하나, 전 재산의 30%만 남기고 몽땅 날아간 상황...


위 손해배상 민사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박씨로부터 고소를 당해 2014년 10월 1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으나, 2015년 12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와 별도로 황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2014년 5월 패소했으며, 이로 인해 황씨로부터 무고 혐의로 고소를 당해 2015년 10월 22일 무고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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